2장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행동
1. 추리와 방향감각을 동원한 골목길 탈출기
물건이 살 일이 생기면 조금 떨어진 마트로 목표를 정하고 항상 갔던 길이 아닌,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길로 무작정 들어가 마트를 향해 걸어가 봤다. 몇 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사이사이 골목은 처음 들어가 보니 완전 다른 시선, 다른 마음으로 세상이 보인다. 머릿속으로는 지도를 그려본다. 내가 알고 있는 길과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길, 큰길로 나가서 마트까지 연결될 길을 상상하며 방향을 정해 걸어 나간다. 해가 어디서 떴었지? 내가 남쪽으로 가고 있는지, 동북쪽으로 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도 생각해본다. 내가 마트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정말 답답할 때까지 핸드폰 속 지도는 잠시 참고 넣어두고, 오로지 내 감각으로만 길을 찾아갔다. 그렇게 촉각을 곤두 새워 내 머리와 눈과 다리로만 길을 빠져나와 마트에 도착할 때의 희열이란! 내가 과거 조금씩 두뇌가 발전해 진화해 온 영장류긴 영장류구나..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원초적으로 생존력을 실감했다. 나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찾아 도착한 내가 엄청 똑똑하고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해서 뿌듯했고 언젠가 어디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갔을 때 길을 찾는 예행연습을 한 것 같아 만족감이 상당했다.
2. 오늘 하루 걸어서 갔다 올 수 있는 최대한 먼 곳 걸어가 보기.
동네 근처 공원이 어떤 게 있나 검색해 내가 몰랐던 작은 공원이 있다면, 근처 공원을 향해 나만의 모험을 떠나본다. 도착해서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공원 산책로를 빙 걸어본다. 그렇게 가까운 공원에 산책이 익숙해졌다면, 이제는 다른 동네의 공원을 지도로 검색해본다.(또는 '산책로'로 검색) 동네마다 큰 공원은 하나씩은 있으니 다른 동네 볼만한 큰 공원을 목표로 잡고 좀 더 큰 모험을 시작한다.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의 공원을 목표로 잡았기 때문에 에코백에 물도 한병 챙겨 넣고 편한 운동화를 신고 번화가를 지나가는 경로라면 옷은 너무 후줄근한 옷이 아닌 편하고 깔끔한 옷을 입고 단단히 준비한 뒤 출발한다. 지도를 보며 길을 확인하고, 노래도 듣고, 팟캐스트도 듣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며 천천히 때론 빠르게 공원으로 가는 길을 즐겨본다.
공원에 도착하면 도착을 찍고 바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여기 공원은 뭐가 있나 관찰하면서 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계절에 맞게 모습을 변하는 식물들이 가득 있었다. 봄에는 가득가득 꽃들이 피고 여름에는 같은 나무에서 푸른 잎이 무성하다. 가을에는 그 잎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산책로 바닥을 가득 물들였고 겨울에는 나무에 눈이 쌓여 장관을 이루고 쌓은 눈에서 새 발자국이 발견되면 그 발자국이 꽤나 귀엽다. 공원에 산책 나온 강아지들도 구경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복작복작 발을 맞춰 걸을 때면 이상한 동질감과 연대감도 느꼈다. 낮이라면 우울증아 날아가라 소원하며 햇볕도 좀 쐬어 주고, 밤이라면 달이 어디에 떴나, 달이 얼마나 기울었나 고개를 들어 달도 한번 찾아본다. 그리고 긴 모험이 끝나면, 고단할 날 위해 근처에 있는 맛집을 미리 알아봤다가 맛있는 간식으로 나에게 선물을 줬다. 1시간 반 넘게 걷다가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성취감에 취해 그쪽 동네 빵 맛집에 들러 빵 한 조각이나 패스트푸드점에 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며 집에 오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3. 아무도 없는 길에서 눈감고 다섯 걸음 걸어보기.
할 일이 없어도 너무 없어 또 무작정 집을 나왔다. 편하게 입고 나와 번화가보다는 그냥 조용히 동네를 돌아다 기고 싶어 한적한 산책길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옆으로는 개천이 흐르고 주변에 갈대와 잡풀만 무성한 그런 조용한 산책길을 걷고 걷다 보니 평일 오후 시간이라 점점 사람 흔적 하나 보이지 않더니 얼마 안 있어 아예 인기척이 사라졌다. 저 멀리 내 눈에 보이는 지평선으로 멀리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아무리 돌아봐도 그 누구도 없는 오롯이 나만 있는 길. 그 길을 잠시 가만히 서있다 듣던 음악을 끄고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는 눈을 감고 걸어봤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딱 다섯 발자국만 앞으로 나가봤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고요할 만큼 조용했던 주변의 소리가 흘러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스럭거리는 갈대 사이의 바람소리와 걸을 때마다 발에서 나는 내 발자국 소리가 뚜렷하게 귀를 타고 들어왔고,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발바닥 바로 앞에 없을지도 몰랐던 땅이 발바닥이 닿을 때까지 발바닥으로 모든 신경이 몰려 발바닥 전체가 찌릿찌릿해 전기가 통하는 기분이었다. 오후의 햇살은 따뜻하면서 흙냄새를 머금었고 개천은 그동안 고여있던 물비린내를 햇살에 조용히 말리고 있었다. 주머니의 핸드폰은 계속된 음악 재생과 쥐고 있던 손의 온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따끈따끈 열을 내고 있었다. 그 다섯 걸음을 걷고 눈을 뜨고 돌어보면 겨우 2미터 남짓 걸었을 뿐이다. 긴장했던 내가 너무 민망할 정도였지만 온 감각이 생생히 다 느껴지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집 근처부터 떠나보는 두근두근 어드벤처
제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음에 또 이런 순간이 오면 다시 꺼내보기 위한 정리 목록이기도 해요.
보시는 분들께 이렇게 해야 돼! 라며 강요하는 정답이 아닙니다.
주제에서 더 잘 아시는 분이나 다른 방법을 갖고 계셨던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