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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Feb 17. 2020

한 달에 한 번, 방구석 미용실을 오픈합니다.

바닥치는 통장 잔고에 느는 건 손재주뿐.
















엄마는 지난해 미용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처음 엄마 머리를 잘라 주었을 때는, 엄마도 나도 불안한 마음에 조금씩 한참 정성을 들여 조심스레 잘랐다. 조금만 잘랐을 뿐인데 엄마는 머리가 훨씬 가볍다며, 동네 미용실만 가도 만 원을 받는데 만 원 아꼈다며 정말 좋아했다.


그 뒤로 우리 집은 한 달에 한 번, 거실에 돗자리를 펼치고 그 가운데 간이의자를 올려 작은 미용실을 오픈한다. 선물세트 보자기를 엄마 목에 두르고 참 빗과 다이소 미용가위를 준비하면 영업 시작이다. 이제는 나도 몇 번 자르다 보니 엄마에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찾게 되었는데, 둥글고 통통한 얼굴을 커버하기 위해 귀 옆머리는 길게 남겨두고, 뒤통수의 위쪽이 봉긋해 보이도록 위 쪽으로 갈수록 좀 더 짧게 잘라 띄워준다. 완전 눈대중 미용사가 따로 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르고 나면 크게 이상하지 않다. 미용 까막눈인 내가 봤을 땐 정말 미용실 머리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 년 동안 내가 엄마 머리를 자르는 동안 엄마의 머리 스타일을 지적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고, 딸이 잘랐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라 자빠진단다. 미용 일을 했던 아주머니조차도. 그 말에 으쓱해 자꾸만 가위를 들게 되니, 정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걸까?


이 이야길 하면 나는 어딜 가도 효녀가 된다. 하지만 항상 효녀로 사는 건 아니고 요즘 말하는 ‘효년’짓도 종종 하는데, 화장품은 엄마에게 “요즘 누가 아줌마 화장품 써~ 요즘 로드숍에서도 얼마나 좋은 제품이 많이 나오는데~” 라는 말로 꼬셔 나도 같이 쓸 수 있는 기초 제품을 사게 하고 화장품을 같이 쓴다. 그것도 눈치가 보이면 화장품 살 때 샘플을 많이 달라고 해서 샘플을 쓴다. 글로 쓰고 나니 구질구질해 보이는데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보고 자란 게 이런 아끼는 습관들이니 나도 뭔가 이렇게 아끼는 게 자연스럽다. 


엄마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버스를 타더라도 시내버스를 타면 200원이 더 든다며 마을버스가 올 때까지 시내버스를 4대를 보내며 악착같이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미용실에 만원 쓰는 것도 아깝다며 딸에게 야매 미용을 받으며 열심히 돈을 아끼는 엄마의 절약 습관이, 어쩔 땐 아직도 용돈 한 푼 제대로 주지 못한 내 잘못인 거 같아 속상하고 죄송하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머리 잘라달라고 할 때 군말 없이 정성을 다해 잘라드리고 다리 좀 주물러달라고 할 때 주물러 드리고,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드리는 것뿐이다. (나 스스로는 이런 걸 '몸으로 때우는 효도'라고 정의한다. 돈이 없으니 몸으로라도 효도하자.)


새로 시작한 일로 인해 내고 있는 여러 지출 항목 덕분에 미용비는 나에겐 사치가 되었다. 내 머리는 앞머리만 내가 조금씩 자르고 긴 머리는 그냥 깔끔하게 묶는다. 화장품은 수분크림과 내 두피 전용 샴푸를 사는 게 전부다. 솔직히 요즘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좀.. 심하다.. 이렇게까지 아끼며 살아야 되나 싶을 ‘절약 마지노선’까지 도달한 느낌이 든다. 앞으로 조금씩 나아질 거란 희망은 있지만 지금 당장 조금의 처량함과 불안감,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얼마전에 티비에서 서장훈이 대출을 받아 욜로생활을 하는 20대 고민남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지금 네(고민남)가 돈이 없어도 젊음을 핑계로 이해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네가 50대가 돼서도 지금처럼 대출을 받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간다면 결국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을 거야. 모두가 널 피할지도 몰라. 난 15년 동안 프로농구선수를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았어. 내가 가장 행복한 게 뭔지 알아?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된다는 것. 그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 한 줄 몰라.”


지금 삶을 견디는 나에게 참 힘이 되고 더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는 말이었다. 틀린 말 하나 없다. 지금 안 힘들면 앞으로 더 힘들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더 많은 ‘아직은 젊음’에 감사한다. 열심히 살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있음에, 힘을 낸다. 물려 받은 것 없고 큰 기술도 없이 그저 저축만 하며 악착같이 살아온 부모님의 삶의 방식으로 어찌 되었건 감사하게도 난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을 졸업했고, 이렇게 부모님 집에 빌붙어 살 수도 있는 거니 작은 거 하나도 아끼며 궁상떨며 산다고 생각되는 부모님의 노후가 나보다 더 탄탄하다. 그러니 ‘지금 나’를 초라해 하지 말자. 이 고비를 넘겨 정말 나중에는 여유롭게 늘어져서 “엄마~ 오랜만에 나한테 머리 잘라볼래?” 하며 재미 삼아 엄마 머리카락을 잘라드리고 싶다. 




종종 살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어느 날이 있어요.

그런 날들의 소소한 단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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