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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Feb 21. 2020

아무것도 안 하고 쉴 때 더 우울해

알았으니까 다시 시작이야.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었다'라는 것에도 종류가 있다.


나에게 집에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하루 종일 자거나 일어나면 멍 때리며 그냥 누워있으면서 틀어져 있는 볼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시청하는 것이다.  


집순이로 무기력에 대한 글을 쓰면서 중간중간 생활이 무너질 때마다 내 글을 나도 다시 보며 정신을 차리곤 했다. 방 환기도 한 번 시키고,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가 보이면 청소기도 한 번 밀어주고. 아 참! 오늘 약을 빼먹었네! 하면서.


그런데 요즘 하는 일의 특성상 하루 종일 쉬는 것 같으면서도 작업은 해야 하고, 일이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 쉴 수는 없는.. 휴일 없는 휴일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이번 설 연휴는 나에게 자체 휴가를 줬다. 정말 큰 맘먹고 일에 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리라!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혼자 소소하게 놀 거리를 하루에 한 가지씩을 정해 놓았더랬다. 첫째 날은 하루 종일 만화카페에 죽치고 앉아 그동안 못 봤던 만화책을 정주행 할 거고 간식도 사 먹어 볼 계획이었고, 둘째 날은 번화가에 나가 아이쇼핑도 하고 코인 노래방에서 3천 원 치 부를 노래도 선곡해 두었다. 근데 하필이면 휴일 첫날, 생리 시작에 생리통과 어지러움이 같이 찾아왔다. 계획이고 나발이고 그냥 무작정 퍼져 버렸다.


그렇게 누워있다 일어나서 먹었다 다시 누워서 얼렁뚱땅 하루를 보내고 휴일 마지막 날 느끼는 허무함과 우울감이란... 천상 집순이인 나지만 이제야 집에서 내가 어떨 때 우울한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나의 ‘건강한 집순이’ 생활은 아무리 집에 있어도 깨끗이 씻고, 먹은 건 치우고, 머문 자리는 정리하는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일들은 해야 하고, 누워 있는 시간보다 앉아있거나 움직이며 생활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위 내용들을 해야 무기력해 지거나 우울해지지 않다. 그게 내가 나에게 '오늘 완전 그냥 쉬어보자'라고 부여한 시간이라도 말이다.


자신이 집순이, 집돌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나는 어떤 유형인가에 대해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집에서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야 컨디션이 회복되는 사람인지, (이런 경우는 보통 평상시에 바쁘고 사람 관계에 에너지를 많이 써서 휴일 며칠이라도 가만히 쉬어 기력을 보충해야 하는 경우가 많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들을 하면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인지, (이런 경우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장기간이거나 에너지를 소비하는 스케줄이 없어 집에서 에너지 소비와 일상생활을 유지해 아 하는 경우가 많음) 판단을 해야 건강한 집순이, 집돌이로 살아갈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줄리안 로터가 말한 ‘통제 위치’(locus of control)라는 개념에서 자신을 둘러싼 사건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내재론자(internals)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줄리안 로터는 자신의 삶이나 행동, 미래를 스스로 통제한다고 믿을수록 더 행복하고 성공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내가 가진 시간이라도 그냥 두고 흘려보내는 것보다 스스로가 계획하고 통제할수록 그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고 행복감은 올라간다.


이제 내 시간의 주도권은 내가 갖기로 했다. 이번 일요일에는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지 않고 조금 일찍 일어나 이불과 침대커버를 털고, 책상에 흘렸던 라면 자국을 발견하고 책상을 닦았다. 바닥에 먼지도 구석구석 닦고,  오랜만에 가볍게 옷을 걸치고 노래를 들으며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느 순간 생활이 또 엉망진창이 되었다면, 다시 소소한 것부터 바꿔나가 봐야겠다. 포기는 하지 말자.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나를 시작하면 된다. 나 다시 또 시작할 수 있어.




종종 살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어느 날이 있어요.

그런 날들의 소소한 단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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