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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Nov 20. 2020

바보 맞고 아는데!

따흐흑! 바보.






 대학을 졸업하고 신입으로 어떤 회사에 취직했을 때, 정말 실수를 많이 했다. 정해진 사수도 없이 입사하는 날 바로 일을 줬는데 학교에서 배운건 실전에는 정말 거의 쓸모가 없었고, 관련 학원도 다녔었는데 해당 업무에 활용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라 아무것도 모르겠고 정말 막막했다. 그 회사의 오래전 일을 그만둔 직원의 전화번호를 어렵게 구해 업무를 물어보고, 예전에 다녔던 학원 선생님께 연락해 업무에 대해 물어봤다. 실례인 건 알지만 내 코가 석자라 누구라도 도움이 된다면 부끄러움도 잊고 도움을 청했다.

 당시 야근은 당연하듯이 했는데 당시에 나는 일을 하면서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다. 당장 마감은 정해졌고, 할 시람은 나뿐이라 이해는 못해도 그냥 하라니까 했다. 그렇게 엉금엉금 기듯이 하루하루를 버텼다. 일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집에 와도 쉬는 것 같지 않았고 잠은 거의 들지 못하고 계속 악몽을 꿨다. 잘 해내고 있는 것처럼 굴었지만 내 실력이 들통날까 봐 상사가 부르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괜히 심장이 내려앉고 겁이 났다.  

 난 내 일을 하기에 너무 정신이 없었고 숨통이 조여오듯 한 마음으로 일을 하느라 당시의 그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분위기를 읽지 못했다. 입사하고 몇 주만에 회사에 있던 자동 커피 머신이 빠지고, 주변 직원들이 한 두 명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는대도 말아다. 회사가 점점 망해 가고 있다는 건 입사한 지 두 달이 돼갈 즘에야 알았다. 사장이 돈을 가지고 날랐다고 한다. 인턴기간이라며 정식 계약서도 쓰지 못했는데, 경력으로 쓸만한 게 없어 이번에는 정말 여기서 일 년은 버텨야 한다고, 그래서 어떻게든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악을 썼는데. 사장이 잠적해 일한 월급도 받지 못하고 다시 취직 준비를 해야 한다니. 참담했다.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구석에 서서 계속 울었다. 취직 준비만 2년째, 나이는 들어가고 일은 잘 해내지도 못했고, 이런 영세한 회사에라도 붙어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끓이며 아등바등한 내가 정말 바보 같았다.


너무 속상해서 친구한테 이 일을 말했다.

"나 진짜 바보 같아.. 한두 명 그만둔다고 그럴 때 이유라도 물어볼걸. 어떻게 들어가도 그런 곳만 들어가지?" 

이 말을 듣더니 친구는 

"이그, 바보. 그러니까 처음부터 잘 좀 알아보고 들어갔어야지." 하며 맞장구쳤다. 


근데 이상하게 ‘바보’라는 말을 다른 사람한테 들으니 마음이 욱하며 화도 나고 더 속상한 거다.

 친구는 내가 했던 말 그대로 맞장구친 것뿐이고 위로해준다고 한 말이었다. 지금 들으면 상처 받지 않았을 말인데 그때 그 말이 아직도 따끔거리며 기억나는 걸 보니, 그땐 정말 속상했나 보다. 그 당시 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의 줄임말)처럼, 상대방에게 듣고 싶었던 위로의 멘트가 있었던 것 같다.

 실력이 모자랐지만, 그래도 넌 그 실력을 극복해보려 열심히 했다고. 회사는 잘못 들어갔지만, 넌 정말 버텨보려 최선을 다했다고. 야반도주에 월급도 안 주고 망해버린 회사가 잘못된 거지 취업난에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던.. 네 간절함이 잘못이 아니라고.

 아무리 내가 그 순간 나를 자책했어도, 자책의 크기만큼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마음속 또 다른 내가 ‘잘못한 나’에게 하는 비난도 용서하게 만들 만큼 나는 나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다.

 내 전부 또는 나의 어떤 부분이 싫다면, 내가 나에게 하는 비난의 생각, 그 말 그대로 누군가가 내 sns 댓글에 남겼다고 상상해본다. 내가 너무 못났고 속상하다가도 발끈 피가 거꾸로 솟는다면 아직 난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이자 아직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종종 살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어느 날이 있어요.

그런 날들의 소소한 단편을 올립니다.






브런치에서 연재한 집순이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오늘도 집순이로 알차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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