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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각커피 Dec 01. 2020

한 발자국을 더 뛰게 하는 힘.

달리기 어플이 나를 울렸다.






내가 이번에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건, 우연히도 뛰기 좋은 조건이 한꺼번에 갖춰져서였다.


몇 달 동안 계속되던 태풍과 장마가 조금 누그러질 즘 생각 없이 추천상품으로 나온 저가 무선 이어폰을 샀는데 또 그때쯤, 우연히 달리기 어플이 있다는 걸 본 이후로 더위와 장마로 실내에만 처박혀 있던 내가 문득문득 한 번쯤은 미칠 듯이 헉헉거리며 뛰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는 걸 깨닫은 거다. 홀린 듯 주말에 처음 집 근처 공원 운동장에 나가 어플을 깔고 이어폰을 끼고 뛰어 봤다.


상상 속에 뛰는 모습의 나는 높이 묶은 머리를 휘날리며 멋지게 땅을 박차고 팔도 힘껏 휘두르며 멋지고 경쾌하게 앞으로 뛰어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얼굴과 목은 땀이 범벅이었고 머리는 뛸 때마다 좌우로 흔들이며 내려와 높게 묶은 게 엄청 거슬렸다. 슬로모션이 걸린 것처럼 느리게 뛰는 게 내 최선이었는데 그마저도 발목이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더위와 습기에 숨이 차서 쓰고 있는 마스크를 당장이라도 땅바닥에 벗어던져버리고 싶었다. 계속 쪄온 살들은 땅을 구르는 박자에 맞춰 격렬히 흔들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분명 그날 혼자 뛰었다면, 그렇게 숨이 차고 머리가 핑 도는 그 순간, 바로 포기했을 것 같다. 운동을 잘하는 손가락 유형, 발목 유형 서진이 한창 sns를 돌아다닐 때 난 운동 못하는 유형이었으니까 역시 나는 운동은 무리야! 제기랄 때려치워! 하며.


그런데 헉헉대는 내 몸뚱이에 놀라 포기할 찰나, 끼고 있는 이어폰에서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 뛰는 첫 시간이 제일 힘들 겁니다. 달리기를 시작한 여러분 정말 멋있습니다.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힘내세요! ”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 나 생각 난 뉘앙스로 쓴 문장이다.)


‘내가 이 1분도 못 뛰다니!!’ 하는 열 받음이 추가된 ‘오기’와, 트레이너의 말을 들으며 뛰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기니, 다음 뛰기부터는 미리 발목 스트레칭을 하고 옷도 편한 운동복으로 갖춰 입고는 뛰어보기 시작했다.


1,2주 차에는 땀이 너무 많이나 눈을 뜰 수도 없을 정도였다. 중간중간 손에 묶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가며 뛰었고, 비가 오는 날은 운동장에 사람이 없을 테니, 방수팩에 핸드폰을 챙겨 비 오는 운동장을 뛰었다. 뛸 때마다 어떻게 된 게 단 한 번도 뛰는 게 쉬웠던 적이 없이 계속 힘들었다. 그런데 이것도 못 참으면 정말 이런 내가 싫어질 거 같았다. 그래서 걷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뛰는 걸 멈추지 않고 어지러울 땐 눈을 감고, 그만두고 싶을 땐 어금니를 악물고, 포기하고 싶을 땐 손에 손톱자국이 생기도록 주먹을 쥐고 끝까지 뛰어봤다.


중간에 남들이 보면 ‘돼지 같은 년이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모습이 흉할까 걱정했지만 또 귀신같은 이어폰 트레이너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마세요.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세요.”


라며 나를 다독여 주는 게 아닌가? 그렇게 일주일에 3회씩. 8주 차 24회 뛰기를 2회 더 뛰어서 26회 차에 ‘쉬지 않고 30분 달리기’를 성공했다. 카운트 다운 소리가 들리고 완료되었다는 음성을 들은 그때의 쾌감이란! 정말 짜릿했다.


그때 나에게는 ‘30분 달리기’가 단순히 운동만의 의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계속 나아지지 않은 내 현실이 아닌 척해봤지만 답답했고, 달리기를 통해 내가 뛰어넘지 못하는 이 바보 같은 나를 내가 한번 넘어보고 싶었다.


뛰어보니 우선은 뛰는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지 않아 좋았다. 몸에서 열이 오르고 땀이 난 뒤에 신기하게 눈 앞 시야가 굉장히 뚜렷해지고 선명해져서 뇌가 맑아지는 느낌 들었고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이 너무 지치고 흔들릴 때, 뛰는 동안은 트레이너가 당신은 할 수 있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꼭 인생에 지쳐가는 나를 다독여 주는 것 같아서 뛰면서 코 끝이 찡해져 훌쩍이며 달린 게 사실.. 여러 번 된다.



"힘드시죠? 지금까지 달렸던 수많은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 너무 잘해왔습니다.

자 모든 트레이닝을 마친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너무 뿌듯하지 않습니까?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여기서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도전은 소중한 것이고 실패는 여러분을 더욱 강하게 할 것입니다."

(앱 음성에서 정리해 적음.)


누구도 해주지 않은 격려와 칭찬을 들으니 정말 힘이 났다. 이번은 진짜 못할 것 같다가도 절반을 뛰었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하면 이 절반은 못 뛰겠냐 싶어 또 한 발을 더 내딛는다.


반려견을 훈련시킬 때도 훈련의 포인트는 견주가 ‘원하는 행동’을 할 때 그 즉시 바로 칭찬을 해주고 작은 간식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잘못된 행동에 화를 내고, 야단을 쳐도 잘한 행동에 칭찬 한 번 해준 것보다 효과가 미미하다. 그런데 왜 사람인 나는 왜 항상 칭찬이 부족했고 응원이 부족했나 모르겠다. 기억 속 나는 항상 어딘가 부족한 아이 었고, 부모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칭찬하기보다는 포기하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어릴 때도, 지금도, 칭찬 좀 해주지, 잘했다고 좀 해주지.. 나는 내가 이렇게 칭찬과 응원을 좋아하고 말 한마디에 달라질 수 있는 사람인지 지금 알았다.


눈으로 아무리 좋은 글을 읽고, 아무리 내가 나 자신에게  ‘00아, 너 할 수 있어, 잘해왔어.’ 혼자 토닥거려도 그건 '생각'으로만 했을 뿐이다. 다른 사람한테 이런 칭찬과 위로는 들어 본 적이 없던 나에게 직접적으로 귀에 들려주는 이 녹음된 말은 정말 감동이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발자국을  나아가게 하는  사실 별거 없구나.

칭찬과 응원 그걸로도 충분히  힘은 나는 거였는데.

   



종종 살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어느 날이 있어요.

그런 날들의 소소한 단편을 올립니다.


*참고로 절대 달리기 어플 광고비를 받거나 어플 광고목적으로 올린 글이 아닙니다.*

그냥 성공한 제가 기분이 좋아 신나서 그리고 쓴 글이에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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