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다른 친구와 약속이 취소가 되면 그 비는 시간에 나와 약속을 잡는 친구가 있다.
어쩔 땐, 나랑 놀다가 몇 시간 뒤에는 다른 친구를 만날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친구나 이성에게 상처를 받은 일이 있으면 그럴 때마다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자기 고민만 주구 창창 털어놓기만 한다. 그런데 나는 친구와 꽤나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마음도 잘 맞고 취미도 비슷해 놀 때마다 재밌고 시간 가는 줄 몰라서 나는 우리 사이가 정말 괜찮은 친한 친구 사이인 줄 알았다. 그래서 무슨 행동을 해도 그 아이의 편에 서서 들어주고, 모든 좋은 게 생기면 나누고 싶었고, 시간이 나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랑 놀려고 잡은 약속인 줄 알고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러 가서 구경도 하고 밥도 먹으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실은 다른 친구가 전 날 약속을 취소한 스케줄이었고, 힘든 마음이 있을 때마다 만나 나에게 본인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으니 정말 가까운 사이 같아 진심으로 내 일처럼 걱정하고 같이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몇 시간을 이야기하고 헤어지고 나면 한동안은 연락이 뚝 끊기고 만나자는 말도 먼저 하지 않았다.
카톡 프사를 보면 생일, 여름휴가, 크리스마스 같은 기쁘고 좋은 날에는 항상 다른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프사에는 그들과 함께한 사진만 올라올 뿐, 나랑 같이 찍은 사진은 올린 적이 없었다. 나에게 서운하다며 속상함을 털어놓은 그 고민의 주인공인 친구와는 해외여행을 같이 다녀왔고, 남자 친구랑 정말 이번에는 헤어질 거라더니 얼마 전 기념일에 커플링을 맞추고 잘만 사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깨닫게 된 건, 나는 이 친구에게 차선책 같은 친구였다는 거다. 언제든 연락을 받아주고, 만나자고 하면 무조건 달려 나오고, 어떤 모습이어도 자기를 예뻐하고 최고라 해주는 편한 친구일 뿐, 본인이 좋아하고 인생에 가까이 두고 싶은 중요한 친구는 아니었다는 거다.
어떤 한 포인트로 이 관계를 확 깨닫게 되는 순간, 약간의 충격과 마음의 스크레치가 났다. 그런데도 그 친구와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렇게 관계가 이어나갈 수 있는 건, 이야기가 잘 통한다는 것도 있고, 서로 아는 지인들이 매우 많고, 나에게 얼마 남지 않은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고 지낸 시간만큼 그 사람의 성격과 삶을 많이 알고 있어서기도 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척 하지만 안으로는 얼마나 여리고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인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아픔이 있었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친하게 지냈던 추억과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섞여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할 수가 없다.(그게 그 친구의 매력일까?)
상대방은 아직도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만날 때마다 웃으며 다음 약속을 기약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친구가 잘 되길 바라지만, 이제 나에게도 그 친구가 내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사람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내 인생에서 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친구를 우선으로 아끼고 더 챙기게 됐다. 이제 더 이상 좋은 것을 봤을 때 먼저 생각나지도, 달이 크고 밝다며 연락을 하지도, 고민이 있어도 만나자고 하지 않는다. 씁쓸하지만 당연하게도 우리의 관계는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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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해당 글은 책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책 내용은 따로 만든 <살 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브런치 북에서 미리 감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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