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작은 방에 갇혀 지냈어. 낯선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때때로는 쾅쾅거리며 위협하는 행동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환경이었고 일상이었으며 당연한 것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친구가 들어왔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해지게 되었어. 그 친구는 나를 툭툭 치더니 그런 이야기를 했어. 어딘가에 깊은 심해로 이어진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고 난 후 돌아온 자는 아무도 없었었다는 흔해빠진 괴담이었지.
그런 생활을 지낸 지 얼마나 됐을까, 한 남자가 나를 손가락질하더니 어느샌가 그의 손에 붙들려서는 작은 방을 떠나 어디론가 가게 되었어. 그는 문을 두드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자가 나타났어. 그녀의 앞에 나를 들이밀어 보여주었고 나는 뻘쭘함에 입맛 벙끗거렸지. 그런 나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짓던 그녀, 이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어.
그녀는 나에게 작은 방을 내주었어. 이전에 지내던 방보다는 더 작고 인테리어도 별로였지만 아무렴 그런 건 상관없었어. 그녀와 지내는 하루하루가 즐거웠거든. 그녀의 하루는 매번 똑같이 울리는 알림에 맞춰 침대에서 일어나서는 나에게 아침을 차려주는 것으로 시작했어. 그리고는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그녀가 들뜬 걸음으로 문을 열면 그때 그 남자가 항상 서있곤 했지. 그렇게 나는 홀로 집에 남겨지고, 하염없이 작은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녀를 기다리곤 했어. 한참이 지나고 빛이 거의 사라질 즈음에 그녀가 들어와서는 나에게 밥을 차려주었어. 그녀는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며 항상 무언가를 중얼거리곤 했었는데 나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내가 그녀의 말을, 그녀가 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했었지.
하루는 그녀가 집에 늦게 들어왔어. 들어오자마자 입구에서 별에 별소리를 다 내더니 침대로 뛰어들어 베개에 얼굴을 박고는 난리도 아니었지. 그러다 문득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그날따라 유난히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어. 그 이후로는 그녀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점점 더 늦어졌어. 언제나 돌아올 때면 그 남자와 함께 돌아왔고, 문 앞에서 배웅만 해주던 그 남자는 어느 날부터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오더니 그녀와 하루 종일 시시덕거리기 시작했어.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 그 남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 그 남자는 그녀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덩달아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어. 많이 서운했지.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는 잠깐 다른 방에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손에 들고서 돌아왔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지. 늘 그랬던 것처럼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그녀는 느린 발걸음으로 문을 열어주었어. 밝은 표정으로 들어온 남자는 여자의 안색을 살피더니 무언가를 계속 물어보는 눈치였어. 그녀는 조심스레 손에 있는 것을 보여주었고 남자는 갑자기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 말수가 적어지더라. 많은 대화가 오가더니 결국은 다시 그녀가 울기 시작했어. 남자는 신발을 신고 돌아가려 했고 여자는 계속해서 붙잡았지만 남자의 거친 밀침에 한 번에 나가떨어져 버렸어. 그렇게 남자는 떠났고,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어.
문득 그녀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어.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더라. 그리고는 나를 작은 구덩이에 밀어 넣었어. 나는 그만두라고 소리쳤어.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무언가를 눌렀어. 이윽고 엄청난 물살과 함께 나는 쓸려내려가고 말았지. 그리고는 계속해서 아주 깊은 물속으로 빠지기 시작했어. 한참을 쓸려 내려가다 보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가득한 곳에 도착하게 되었어.
문득 생각이 나더라. 그 친구가 이야기했던 심해라는 곳이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여기에 오게 되었어."
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물고기들의 뒤편에서 무언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헤엄쳐 나갔어.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 그건 그녀가 일궈낸 놀라운 생명의 시작이자 금세 사그라든 촛불이자 그녀의 죄책감이라는 것을. 물고기들 사이로 곧게 헤엄쳐서는 그에게 지느러미를 내밀었고, 그의 손을 잡고서 함께 헤엄치기 시작했어. 모든 것의 근원이면서도 끝인 심해를 향해서.
아이야, 가자. 나랑 헤엄쳐 나가자. 비록 쉽게 만들어져 하찮게 살다가 버려진 인생일지라도, 너는 그때 존재했으니까. 누군가의 마음속 멍울로 남아 평생을 지내다 눈물로 지워질 운명일지라도, 그들에 의해 선택받았으나 그들의 선택으로 지는 삶일지라도, 삶에 있어 모든 것이 처음이라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어금니가 으스러질 정도로 치가 떨릴지라도. 그것이 세상이고 불공평이자 이기심이며 진실인 것을 탓하며 심해를 향해 헤엄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