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또다시 아플지언정

by 새얀 SEYAN

각각의 고민들로 물든 하루들에게 그마저도 제 빛이 있다고, 당신의 색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니라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 함께 나아가자, 손을 내밀었다. 앞에서 이끌겠다는 의미보다는 같이 걸어야 했다. 나도 아직 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벗어나는 것은 불가하지 않을까라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병원에서, 대부분 진료 전 우선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다. 어디까지 감염되었는지, 상한 조직은 없는지 이미 아프게 벌어진 상처를 또 한 번 벌려본다. 그래야 올바른 치료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이다. 직접 스스로의 상처를 벌려서, 감염의 원인을 찾아낼 것이다. 두렵다. 우리는 이미 이 고통을 알고 있다. 아프면 소리를 질러도 좋고, 눈물을 흘려도 좋다.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상처를 확인하는 첫 번째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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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연재하기 위해, 나는 시기별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이후에는 거주지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였다. 장소는 그때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타이핑 속도와, 키보드의 경쾌한 울림이 잦아들었다. 해야 할 이야기들이 손끝에 매달렸다. 한 글자를 쓰고, 등을 기댄다. 또 한 글자를 쓰고, 차분하게 호흡했다. 쌓인 글자 들 밑의 여백이, 이상하게 두려워졌다.

처음 글을 쓸 때의 마음이 사라졌다. 나와 같은 이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온기는 사라지고 살짝씩 한기가 돌았다. 이상하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추워졌다. 나의 이야기 안에서 만난 아이는, 존재하기만 할 뿐 그 형상은 온데간데없었다. 이건 오로지 나의 이야기였다. 나만의 외로운 이야기였다. 수영하는 법을 몰라서, 나는 가라앉고 있었다. 상처 속 깊은 이야기들 속에.


점점 숨이 막혀오는 기분에 고개를 들었다. 무엇을 위해 나는 이 아픔을 들추어내는가. 이것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왜 이런 괴로움을 택한 것일까. 몰아치는 감정에 기운이 빠졌다. 키보드 소리가 사라진 적막이 익숙해질 쯤에, 익숙한 생활의 소음이 새롭게 들렸다. 그러자 무엇인가 머리를 스쳐갔다.

이 행위들이, 이 감정을 또 한 번 겪으려는 이 역설적인 상황이 또다시 가라앉기 위해서, 더 아프지 않으려 상처를 벌린 것임을 문득 깨달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린 손끝을 손바닥으로 안았다. 그것만으로 숨이 돌았다. 지금의 행동과 다른 결의 행동을 하여야 했다. 부엌으로 향해 찬물을 한 잔 마셨다. 내내 한기를 느꼈지만, 이상하게 몸속은 뜨거웠다. 마시던 차 때문이 아니었다. 명치에서 이상한 것이 끓었다. 몸을 투명하게 내려가는 찬기운을 느꼈다. 더욱더 정신이 들었다.

후에 침대로 향하였다. 잘 정돈된 이불 위로 아무렇게나 누웠다. 지금 나는 슬픔에 빠졌다. 모르고 빠진 것이 아님에도 이렇게 힘이 들었다. 힘이 든다면 빼야 한다. 그래야 다시 수면 위로 뜰 수 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만히 호흡했다. 생각에 힘을 뺄 차례였다.

몸에 힘이 들어간 상태였구나, 맞아. 오늘따라 거실이 꽤 추었지. 차가워진 몸을 달랬다.

잘 쓰려고 했나 보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잖아. 무거워진 마음에 힘을 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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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야기를 들어줄게.

고마운 이야기지만, 막상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하고 싶은지, 감추어두고 싶은지도 모를 깊은 말들이 있다.


우리는 지금, 자의로 그 상처들을 절개했다. 잘 아물 것이라 여기며, 혹은 곪을 것을 알며 묻어두었던 지난날의 상처를 말이다. 그 상처는 손을 대기 전부터 곪아 올랐거나, 살짝 찌르기만 해도 무엇인가 새어 나오거나, 생각보다 멀쩡했을 수 있다.



곪은 것을 걷어내고 마주한 당신의 상처는 어떠했는가?

생각보다 깊은 아픔이 느껴져, 저자처럼 상처에 빠져버린 기분이 든다면 우선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기다린다. 순간적으로 격앙된 감정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곧 사라진다. 그 감정과 아픔이 사라지기를, 내 몸이 다시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몸과 생각에 힘을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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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직면하는 당신에게. 얼마나 아플 것인지, 감염이 심할지. 또 만약 그곳에 빠진다면, 이 어느 정도의 깊이일지. 이 아픔을 직면하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늦지 않았다. 당신이 결심한 지금이 당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기이다.

혹시 슬픔에 빠지더라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이 상처를 다시 벌릴 만큼의 용기를 가진 우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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