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먹고 싶다고 해서 (내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렌지를 잔뜩 사다 놨었다.
그래서 제법 오래 우리 집 냉장고에는 늘 오렌지가 있었는데,
나는 한 번도 나만을 위해서 (내가 먹기 위해서)
오렌지를 깐 적이 없었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러서는 새삼 놀랐다.
생각해 보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애들 오면 간식으로 줄 겸 같이 까먹지 뭐 하고 귀찮다고 미뤘더라.
그래서 오늘은 둘째 하원 전에,
혼자 오렌지 하나를 까서 다 먹었다.
내 아빠는 늘 우리를 위해 자몽을 까주셨다.
(자몽은 오렌지보다 까기 어렵다.)
내피까지 벗겨 속살만 먹기 좋게.
생각해 보면 과일을 깎아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사랑의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나를 위해 오렌지를 깠다.
아빠도 오늘은 아빠를 위해 자몽을 깠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온전한 자몽 하나를 다 드셨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이렇게나 사랑한다고 말해주듯이.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