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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l 22. 2020

진짜 커다랗고 중요한 것들

작고 사소한 질문에서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것

체감 상 아이가 “엄마”보다 더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체감이 아니고 실제로도 그러한 것 같다.) 그건 바로, “이건 뭐지?”다. 처음에 발음이 유창하지 않을 때는 “이거 무야?”로 시작했다. “이거 무야?” 던 “이건 뭐지?” 던 대답은 어른의 몫이다. 질문은 아이가 하지만 고민은 내가 한다. 


아이의 질문에는 늘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어야 한데서 짧게라도 늘 대답을 해주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면 평생 고민해보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에서 멈춰서게 될 때가 있다. 생각보다 (자주) 내가 ‘그것’의 정확한 이름을 모를 때가 있는데, (무엇인지는 알지만 뭐라 불러보지 않은 것들) 예를 들면 플라스틱 병뚜껑을 열고나면 병에 붙어있게 되는 플라스틱 고리 같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름은 알지만 ‘버전’이 여러 가지라 뭐라고 알려줘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도 있다. 아이는 불이 켜진 조명을 가리키며 무어냐고 물을 때가 많은데, 그걸 조명이라 할지, 전등이라 할지, 불이라 할지 (우리는 주로 “불 꺼”라고 하지 않는가) 순간 고민이 된다. 비슷한 예로는 “개냐, 강아지냐, 멍멍이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있다. 그 밖에도 내가 진짜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대부분 동식물 혹은 곤충의 이름이다. 결국은  뭉뚱그려 ‘풀’ 혹은 ‘벌레’라고 하는데 가끔은 그 방대함이 미안하다. (딱 봐도 생김새가 너무 다른데 다 풀이고 다 벌레라니;;;) 게다가 어쩔 땐 저것을 풀이라고 해야 하나 나무라고 해야 하나 고민되는 경우도 있다. 새삼 나의 무지함에 놀란다. 


결국은 그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그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한 번 쯤은 고민하고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아이의 질문이다. 즉, 아이의 이 끊임없는 질문들은 나조차도 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하루는 길을 가는 중에 아이가 갑자기 쪼그려 앉는 것이었다. 모퉁이에 잡초가 무성했다. 그 잡초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이건 뭐지?”라고 말하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그게 뭐라고”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소름이 돋았다. 아이의 시선과 나의 시선은 어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아이의 시선은 따뜻했다. 작은 것 그리고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줄 줄 알았다. 별 것 아닌 것에도 무한한 호기심을 발현하는 것이 아이였다. 그에 반해 나의 시선은 차가웠다. 내 갈 길만 갈 뿐 무언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이 없으니 '호기심‘이라는 것도 여간해선 생기지 않는다. 나의 시선은 높고 (물리적으로도 그러하다.) 아이의 시선은 낮았지만, 더 섬세하고 더 풍성했다.


아이는 가만있다가도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 뭐지?” “비행기 슈~~~” “짹짹이!!” 나에게는 들리지 않던 소리였는데 아이의 질문 덕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길을 가다가도 개미나 작은 풀들을 가리키며 구경을 한다. “개미!” “개미!” 그리고 작은 나뭇잎을 주어다가 “나뭇잎!”하더니 제자리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나도 따라 한참동안 개미를 구경하고, 새삼스레 그 풀잎의 이름이 궁금하다. 집 안에 굴러다니는 작은 부스러기를 소중히 주어서 “이건 뭐지?”하며 내게로 가져온다. 대부분 “쓰레기”라고 답하며 버려버리지만, 가끔은 작은 것도 무시해버리지 않는 그 시선이 감탄스럽다.


아이 덕분에 나의 오감이 살아난다.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낀다‘. 


내가 늘 살던 동네라 한때는 매일 지나다니던 개천에서, 물고기를 구경하겠다는 아이 덕에 유심히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바닥 색과 비슷해서 찾기 힘든 물고기들을 유심히 바라보다 다슬기들이 잔뜩 산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다슬기들이 지나다닌 길이 개천 바닥에 꼬불꼬불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고, 나무에서 떨어진 송충이들이 물 위에서 꼬물대면 물고기들이 톡톡 건드려본다는 것도 알았다. 새삼 내가 이 황홀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살았나 싶다. 매일 그 자리에 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작디작은 개미와 들풀들을 한참이고 구경하고, 새소리와 매미소리를 듣는다. 혼자였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것들을 아이가 계속해서 무어냐고 물어봐주어 놓치지 않고 산다. 


사실 그 무수한 질문들은 너무나 사소해서 귀찮고 너무나 반복적이라 성가시지만, 아이는 나에게 또 다른 ‘눈’과 ‘귀’를 선사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를 붙잡아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너무 앞만 보고 가지마”, “너무 높은 곳만 바라보며 애태우지마”, “잠깐 멈춰 서서 이 작은 것들을 바라봐봐, 사실은 이런게 진짜 세상이야. 이게 진짜 커다랗고 중요한 것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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