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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Jun 03. 2021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마음에 힘을 빼는 주문






요즘은 누군가 직업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어쩌다 보니 주중엔 회사에 가고, 주말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N 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우연히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 그 계기였다. 처음엔 그저 하루하루의 재미있던 에피소드를 그림일기 형식으로 SNS에 업로드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에 여러 번 소개되고 구독자 수도 늘어나면서 본격적인 취미 생활로 발전하게 됐다.


그러던 중 출판사로부터 그림일기를 책으로 만들어 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출간 제안은 유명한 작가 들이나 받는 건 줄 알았는데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그런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듬해엔 정말로 그림 에세이를 출간했고, 대형서점에 진열된 내 책을 실제로 보게 되자 이제는 그림일기 작업이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닌 것 같아 책임감도 느꼈다.


이런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저 편하게 일상을 기록했던 일에 전에 없던 여러 가지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 틀리는 맞춤법도 완벽해야 할 것 같고 더 멋진 문장을 구사하려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덮어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작가답게’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작업 자체가 피곤하게 느껴졌다.

꾸준히 연재하던 그림일기가 뜸해지자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제 책 냈으니 그림일기는 안 그리나 봐?”라는 질문을 받았고, 그 말을 들으니 또 잠시라도 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억지로 연재를 이어가다 보니 전처럼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마음의 힘을 빼는 주문

하려고 마음먹은 일을 누군가 재촉하는 순간 하기 싫어지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것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의무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를 괴롭히던 수많은 ‘해야 한다’가 있다. 문제는 이런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압박이 생겨 부정적 태도로 방어하게 되는 것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저자 하완은 그림을 잘 그리는 요령이란 다름 아닌 손에 힘을 빼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잘하고 싶고 틀리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손에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그림을 망치게 되고, 반대로 어차피 망친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가벼운 마음을 갖게 돼 더 잘 그릴 수 있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힘부터 빼고 볼 일이다. 부담감, 의무감, 책임감은 내려놓고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야만 같은 일도 즐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그날 이후 생각날 때마다 ‘해야 한다’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로 바꾸는 연습을 한다. 아침 출근길이 버거운 날이면 조용히 “출근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회사에서 성과나 승진에 대한 압박이 있을라 치면 ‘잘 못해도, 승진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힘이 잔뜩 들어가 경직된 마음을 몽글몽글한 상태로 만들고 나면 신기하게도 전보다 유연한 마음으로 더 즐겁게 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느 순간부터는 공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 대신 매일 자기 전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공황장애, 빨리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 어느 회사원의 공황장애 극복 에세이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에 수록된 글/그림입니다.

책 정보 바로가기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1504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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