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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Jun 14. 2021

벗어나려고 너무 애쓰지 말 것

공황장애와 마음챙김명상


   

     

     

      

     

     


 선생님, 저 운동을 좀 해볼까 봐요. 헬스나 필라테스 같은 거요.

선생님 평소에도 운동을 하시나요?

 아니요, 전혀요.

선생님 그런데 갑자기 왜 운동을 하려고 하시나요?

 그냥… 공황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선생님 하지 마세요, 지금은 안 돼요.


하루는 내가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하자 선생님이 말렸다.

내 딴에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한 결심이었다. 보통 건강이 안 좋을 땐 운동을 떠올리곤 하니까. 그런데 공황 증상으로 힘이 들 땐 무리한 운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갑작스런 신체 운동으로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오히려 불안을 촉발해 또다시 공황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 공황 증상에 도움이 될 운동은 없을까요?

선생님 신체적인 운동보다는 명상이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명상이라고요?

선생님 네, 단전호흡도 좋고요. 요즘은 직접 센터에 가지 않고도 유튜브나 어플로도 쉽게 접할 수 있어요. 원하신다면 동료 의사들한테 정보를 알아봐 드릴게요.


신체 운동을 대신해 추천받은 건 명상과 단전호흡이었다. 문득 항상 황토색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던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녀는 단전호흡이 취미라고 했다. 덕분에 매일 아침 조회 시간이면 우리는 강제로 눈을 질끈 감고 몇 분간 앉아 있어야 했는데, 그 짧은 시간이 그렇게 지루하고 좀이 쑤시는 게 아니었다. 나는 몰래 실눈을 뜨고 옆자리 친구와 키득거리거나 주변 친구들의 표정을 살피며 장난을 치곤 했다. 담임 선생님이 개설한 방과 후 단전호흡 교실에 신청자가 한 명도 없어 폐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 세상에 그런 이상한 걸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상한 걸 내가 하게 될 줄이야.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명상과 단전호흡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추구하는 바가 다른 것 같았다. 나는 샘플 영상을 조금씩 살펴본 후에 여러 가지 명상 중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해보기로 했다. 이걸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빨리 뭐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마음챙김 명상과 알아차림

마음챙김 명상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림으로써 통찰과 지혜를 얻는 명상법이다. 여기서 ‘마음챙김’은 매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을, ‘알아차림’은 대상에 주의를 집중해 있는 그대로를 관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황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내가 어땠는지 생각해봤다. 처음엔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 벗어날 방법을 찾아 헤맸다.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을 들고 극복 사례를 검색했고(그러나 찾지 못했다), 진료실에서는 수시로 완치될 수 있는 거냐며 질문을 퍼부었다(그러나 확답을 받지 못했다). 가슴이 조금만 두근거려도 공황이 시작될까 두려워했고, 예기불안이 오면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증상이 있던 날이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인터넷에 극복 사례를 검색하며 이 증상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찾고 실망하는 일을 반복했다. 원치 않는 불행한 일을 겪으면 사람은 이렇게 된다.


우리는 항상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고통스러운 것에서 벗어나는 데만 집중한다. 그렇다고 당장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를 괴롭히는 불편한 생각과 느낌을 어떻게 하면 완전히 사라지게 할지에 온 신경을 쏟다 보면, 그것은 보란 듯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더 큰 고통을 주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 마음챙김 명상이라는 것은 그런 고통을 거부하지도 피하려 하지도 말라고 가르치니 말이다. 그저 가만히 알아차린다는 건 어떤 걸까?


처음엔 그저 증상이 있을 때마다 당장 어찌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억지로 따라 했던 행위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명상이 의도하는 ‘알아차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알아차린다는 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며, 어떤 거부나 편견의 감정 없이 현재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때론 현재를 거부함으로써 고통이 시작되는 거니까.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어디선가 봤던 이 말을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 ‘고통에서 회피하려 하지 않고 명확하게 깨어 맞이하면 고통은 단지 고통일 뿐이다’라는 그 의미를 말이다. 지금 이 순간도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는 여러분에게 내가 알게 된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억지로 벗어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부하고 밀어내는 감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는 것임을. 힘들겠지만 속는 셈 치고 이렇게 생각해보자. ‘또 공황이 오고 있구나.’ ‘내가 지금 불안해하고 있구나.’

모든 괴로운 순간은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그러니 다 괜찮다.




글/그림: 김세경(꽃개미)

※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에 수록된 글/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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