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를 앓던 초기, 한동안 입맛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나조차 신기할 정도로 먹는 것에 흥미를 잃어 끼니마다 밥 반 공기를 넘기는 것도 무척 힘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동료들이 다이어트를 하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몸무게를 재보니 정확히 4킬로그램이 빠져 있었다. 단기간에 빠진 4킬로그램은 금세 표가 났다. 그렇게 식욕을 잃은 것도 모자라 이유 없이 축 처지는 느낌과 영원히 이 공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반복되었다. 현재를 비관하고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 그렇게 난생처음 ‘우울’이 찾아왔다.
선생님, 아무래도 제가 우울한 것 같아요.
진료가 있던 날 가장 먼저 이 말을 꺼냈다. “네, 안 그래도 우울 지수가 평소보다 높다는 말씀을 드리려던 참이었어요.” 내가 우울한 것 같다고 하자 주치의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심지어 자기가 지금 막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라는 거다. (나는 매 진료를 시작하기 전 다양한 검사를 했는데 그중 우울증 검사도 있었다고 했다.) 공황도 모자라 우울이라니 순간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죠? 우울이라뇨….” “괜찮아요, 세경 님. 지금은 충분히 우울하실 수 있어요.”
그는 우선 우울증은 아니라고 확인해주었다. 다만 내가 평소보다 우울한 감정을 많이 느끼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이런 종류의 정신과적 질환을 처음 겪을 땐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울감을 느낄 수 있는데, 전혀 염려할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주치의는 지금 내가 ‘충분히’ 우울할 수 있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 말은 마치 우울한 것이 당연하고 정상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보통 우울은 좋지 않은 것,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대표적인 부정적 감정이 아니던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게 어딘가 모순처럼 느껴지고 잘 이해도 되지 않았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들
그 주 주말엔 남편의 추천으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았다. 평소 우리가 거부해온 부정적인 감정의 필요를 잘 설명해주는 영화였다. 주인공인 열한 살 라일리의 머릿속엔 감정을 지배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가 있고, 그곳엔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라는 다섯 가지 감정이 살고 있다는 재미있는 설정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라일리는 미네소타에서 태어나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해맑은 소녀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을 따라 갑작스레 낯선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고, 전과 다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사실 라일리의 감정은 대부분 ‘기쁨이’에 의해 컨트롤되고 있었다. ‘기쁨이’는 이런 라일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슬픔이’를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슬픔이’의 실수로 라일리의 행복했던 기억이 슬픈 기억으로 변하게 되고, ‘기쁨이’와 ‘슬픔이’가 감정 컨트롤 본부를 이탈하자 라일리의 감정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고 만다. 고백하건대 남편이 우울해하는 내게 이 영화를 추천했을 때 나는 이런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질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단지 기분 전환을 하라고 이 영화를 추천한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고 배우며 산다. 그중 기쁨, 행복, 사랑과 같은 감정은 좋은 것으로, 우울, 슬픔, 불안, 분노와 같은 감정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와 머물면 우리는 빨리 벗어나려고 한다. 영화 초반에 ‘기쁨이’가 ‘슬픔이’를 멀리하고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늘 좋은 감정만 느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닐까?
영화는 힘든 순간을 치유하는 건 ‘기쁨이’가 아닌 ‘슬픔이’라 말한다. 이들은 라일리의 상상 속 친구 빙봉을 만나 함께 감정 컨트롤 본부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빙봉은 아끼던 로켓을 잃어버리고, ‘기쁨이’는 빙봉 옆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애써 즐겁게 하려는 노력을 한다.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긍정적인 말과 함께. 하지만 망연자실한 빙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슬픔이’는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와 빙봉 곁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느릿느릿 말을 이어 나갔다. “로켓이 사라져서 속상하지? 네가 사랑하는 걸 가져가다니. 그래, 슬픈 일이야”라고 말이다. 빙봉은 ‘슬픔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물 대신에 사탕을 뚝뚝 흘리며 울고는 거짓말처럼 기운을 차리고 일어섰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일리를 치유한 건 ‘슬픔이’였다. 힘든 상황을 외면하고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니라, 슬픔을 인정하고 밖으로 표출하고 나서야 슬픔이 해소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을 받았던 행복한 기억은 커다란 슬픔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우울이라는 감정을 거부하고 멀리하려 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했다.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 또 있었다. 우울한 상황에서는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주 당연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잘 살고 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우울하고 처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거나 기쁘게 느껴진다면 그거야말로 심각한 문제 아닌가. 어떤 감정이라도 엉뚱한 상황에서 튀어나온다면(나의 공황처럼) 치료가 필요한 일이지만, 마땅한 때에 작동한다면 그것은 충분하고도 당연한 일이다.
원치 않는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빨리 벗어나는 방법이란 그 감정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내 안에 다양한 감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처럼). 그다음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감정을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괜찮아, 잘 될 거야’라며 억지로 긍정적인 척하는 것보다는, 내 감정을 믿고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닫고 나자 신기하게도 나를 힘들게 했던 우울한 감정은 어느 순간 사라져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이후로도 나는 여전히 자주 불안했고 공황에 빠지기도 했지만, 두 번 다시 우울만큼은 찾아오지 않았다.
혹시 원치 않는 감정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 있다면 영화 속 ‘기쁨이’의 대사 한마디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