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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Mar 20. 2022

식물의 소리를 들은 적 있나요?

식물과의 첫 만남


식물과 나의 첫 만남 


요즘 젊은 친구들은 취직과 동시에 독립을 꿈꾼다고 하던데, 살면서 줄곧 엄마 품을 떠나지 않았던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첫 독립을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져 본 내 집. 한동안 집을 정리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친정에 가지 않았다. 하루는 얼굴 까먹겠다는 엄마의 푸념에 큰맘 먹고 평일 휴가를 내고 친정에 갔다.

평생을 살았던 익숙한 공간이 그날따라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거실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다가 베란다 가득 줄지어선 화분들에 시선이 멈추었다. 엄마가 애지중지 키우는 화초들이었다. 평소 식물에 관심이 없던 나는 속으로 '이렇게나 많았었나?'하고 생각했다. 그날따라 자꾸만 화분에 시선이 갔다.

 

그러던 중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 화분에서 꺾인 초록색 줄기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주워 들어 쓰레기통에 버리려는 찰나, 등 뒤에서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돼! 그거 버리지 마!"

어리둥절한 내게 엄마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부러진 줄기를 흙에 심기만 하면 뿌리가 생기고, 다시 예쁘게 살아난다는 거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내친김에 빈 화분과 흙을 조금 얻어 신혼집으로 가지고 왔고, 엄마가 시킨 대로 흙에 살포시 꼽아 두었다. 그리고는 적당한 곳에 올려 둔 채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주말 우연히 화분을 들여다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전히 볼품없는 줄기 옆에 작은 작은 알갱이들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니 모체를 꼭 닮은 작고 여린 새순이 두어 개 올라와 있었다. 내친김에 검지 손가락으로 흙을 조금 파 보았다. 그러자 그곳엔 정말로 건강한 뿌리가 가득 차 있었다.


그날 난생처음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 작은 생명체를 향한 고맙고 기특한 마음이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고작 바닥에 떨어진 줄기를 주워 빈 화분에 흙을 채우고 심어 두었을 뿐인데, 나의 사소하고 작은 친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뿌리를 내렸을 모습을 떠올리자 기특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나와 식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식물의 소리를 들은 적 있나요?


누구에게나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식물과의 사랑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친구에게 선물 받은 화분에서 사랑이 시작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잡지를 보다가 유행하는 플랜테리어에 반해 식물을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나의 경우 식물과의 첫 만남이 비록 온전한 모습과 상태는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만남 또한 꽤 특별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날, 식물이 내게 먼저 말을 걸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자주 생각한다. 여기 나를 좀 보라고. 어서 그 손으로 나를 집어 들어 보라고. 부러진 채 바닥에 누워 있는 힘껏 외쳤을 모습을 상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나의 의지가 아닌, 반대로 식물이 나를 선택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식물의 소리를 듣는 일을 어렵지 않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만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자. 사무실 창가에 오랫동안 방치된 화분에서, 버스정류장 근처 꽃집에 줄지어진 화분들에게서도 우리는 식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 소리를 듣는다면 외면하지 말고 다정한 손길을 내밀어 보자. 당신이 베푼 따스한 친절로부터, 그동안 경험해 본 적 없는 싱그럽고 경이로운 순간들이 마구 피어날 것이다.



* 플랜테리어(Planterior): 'plant(식물)'와 'interior(인테리어)'의 합성어로, 식물이나 화분을 활용한 실내 인테리어



글.그림: 꽃개미(김세경)

회사원이며 작가.

8년째 식물을 키웁니다. 잘 죽입니다.

http://instagram.com/sammyk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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