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개미 Mar 27. 2022

영자의 이름 찾기

이름을 기억하는 일에 관하여 

  

  


식물 '영자'의 이름 찾기


신혼집은 정오부터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남서향의 5층 집이었다. 엄마 집에서 데려온 식물 줄기와 새순은 기다란 햇살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식물을 키워 본 경험이 없던 나는 이 귀한 생명의 탄생이 신기했고,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더없이 즐겁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문득, 이 식물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단히 근황을 전하고는 슬그머니 식물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엄만 오래전에 들은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마도 '영자'인 것 같다고 했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이름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 이름이 비슷한 식물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어렵지 않게 확인한 진짜 이름은 '영자'가 아닌 '염좌'였다. 그럼 그렇지!


염좌는 잎사귀 모양이 동그란 동전을 닮았다고 해 '돈 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다육식물이다. 별명이 '나무'인 이유는 줄기가 나무처럼 변해서 작은 분재 형태로도 기를 수 있어서다. 식물에 관해 더 알고 싶어진 나는 내친김에 식물의 고향은 어디인지, 어떻게 키우는 것인지를 찾아보았다. 염좌의 고향은 남아프리카로 잎에 수분과 영양을 저장하기 때문에 건조하게 키워야 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식물은 물만 잘 주면 된다는 생각에 매일매일 물을 듬뿍 주곤 했는데, 아차 싶었던 나는 그날로 물주는 일은 멈추었다. 그 대신 집안에 해가 움직이는 방향을 체크해 가장 오랫동안 해를 받을 수 있는 자리로 옮겨 주었다.



식물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  


회사에서 인사교육 담당자로 일 하는 나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자신을 제대로 소개하는 방법을 가르치곤 한다. 특히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명함을 나누며 나의 이름과 소속을 정확하게 밝히고 나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반대로 나 또한 상대방이 팀장인지 실무자인지, 개발자인지 영업사원인지에 따라 그 사람의 역할과 업무 영역이 정확히 드러나, 그에 맞는 대화와 협의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자기소개가 필요한 것은 식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스마트 렌즈'기능을 이용하면 식물의 사진을 찍기만 해도 이름을 찾을 수 있고, 유튜브나 책을 통해서도 손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새로운 식물을 들이면 가장 먼저 식물의 이름 확인 다음, 식물이 좋아하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찾는다.


여전히 잘 죽이는 마음만 앞선 식물 집사지만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처음 식물을 들이면 식물과의 자기소개를 했으면 좋겠다. 특히 식물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기억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고 알려주고 싶다.


오랫동안 식물을 키우면서도 막상 이름을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식물이 식물이지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때 아닌 오지랖이 발한다. 시키지않았는데 그 식물의 이름을 찾아 주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름을 알아야만 식물에 대해 알 수 있고, 필요한 정보들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름을 제대로 아는 것만으로도 식물을 더 잘 키울 수 있다.


이름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우연히 내 품에 들어온 볼품없던 식물 염좌가 소중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염좌의 이름을 찾아주고, 기억하고, 자주 불러주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정다운 이를 대하는 마음으로 다정하게 식물의 이름을 불러면, 정말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어 애정도 깊어지고 유일의 존재가 되고 만다.


문득 유명한 시구절이 생각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고유의 이름을 갖고 불려짐으로써 더욱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것은 모든 관계를 의미 있 시작하는 비결이도 하다.



글.그림: 꽃개미(김세경)

회사원이며 작가.

8년째 식물을 키웁니다. 잘 죽입니다.

http://instagram.com/sammykhim

매거진의 이전글 식물의 소리를 들은 적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