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C급이 있어야 A급도
'모델'이라고 하면 마른 몸매, 도도한 눈빛, 런웨이를 걷는 우아한 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런데, 요즘 케이블 TV 대출광고에서 기존 '모델'의 이미지를 깨는 모델들이
통통한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비키니를 입고 말한다.
어쩌라고
기존의 모델과는 다른 모델들을 '플러스(plus) 모델'이라고 한다.
'빅사이즈 모델'까지는 들어봤었는데 이들을 부르는 용어가 바뀌었나 보다.
안타깝게도 사람 몸의 특징과 체형은 본인이 선택할 수 없다.
유전형질(비만 형질), 성격 형질(활동성) 다양한 이유로 체형은 달라진다.
날씬한 사람이 있고 뚱뚱한 사람도 있다.
키가 큰 사람이 있고 키가 작은 사람도 있다.
예쁜 사람이 있고 못생긴 사람도 있다.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면 좋은 것만 선택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은 것을.
세상에는 많은 기준과 컷오프가 있다.
사람은 다양하지만 세상은 모든 사람을 다 포용하지는 못한다.
사회적 활동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모든 단계마다 '기준'이 제시되고
'컷오프 라인'이 적용된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수학 능력이라는 입학 기준이 있고,
대학에서 졸업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규정한 이수 학점 수료, 영어 시험 점수,
필수 교과 이수와 같은 복잡한 졸업 기준이 있다.
업무에 따라 다르지만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과 일정 이상의 평균 학점,
경우에 따라 동아리 활동이나 인턴 증명, 자격 또는 면허 보유 여부 또는 회사 자체 실시하는 시험 점수 등
기준이 있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서류 단계조차 통과하지 못한다.
최근 삼성에 입사한 신입 직원의 입사 기념 웰컴 키트가 인기다.
2016년 입사자부터 삼성은 '황금 명함'을 지급한다.
금장 명함에는 삼성전자 로고, 사원 이름, 근무 부서가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입사자 이름이 박힌 금빛 명함, 대형 꽃다발, SVP(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 수료 축하 기념품,
최고경영자(CEO)의 편지는 그동안 입사 준비를 했던 신입사원뿐만 아니라 부모님께도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꿀만한 가치를 제공한다.
우스개 소리로 소기업은 회사 로고가 인쇄된 다이어리 하나와 모나미 볼펜 한 자루, 중기업은 종합 필기구 세트,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은 꽃바구니나 과일 세트를 입사 기념으로 제공했었는데 지금은 젊은 직원들이 인스타에 올릴만한 제품들로 구성들이 바뀌었다. CEO가 보내는 편지를 동봉한 것은 신의 한 수다.
대학이나 회사만 기준이 있을까?
연애를 할 때도 상대방의 기준이 있고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신혼집을 마련하고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이 있어야 한다.
'벌어먹고 살 수는 있는가',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헤어지지 않고 우리 아들(우리 딸)과 아이 낳고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를 기준 항목으로
보는 것은 예비 사위, 예비 며느리를 보는 어른들의 기준일 거다.
이 기준을 '걸러내기', 영어로는 '필터링(filtering)'이라고 한다.
필터링을 통과하면 기준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고 합격 확률이 높아진다.
'필터링(filtering)'은 기본이다.
그렇다면 기준에 미달하면 패배자이고 탈락자인가?
이 질문을 하고 싶다.
기준을 통과했다고 미래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기준은 확률적으로
좋은 미래 결과를 예측하고자 하는 것일 뿐.
인턴 평가 점수가 높다고 회사 생활을 잘할까?
전공 평점이 높다고 전공을 잘할까?
토익 점수가 높을수록 외국인과 영어로 이야기를 잘 나눌까?
예비 시부모님이나 예비 장인 장모님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서 결혼하면 이혼 안 할까?
도도한 눈빛을 갖고 마른 몸매를 가졌다고 좋은 모델인가?
그렇지 않다.
프로 운동팀에도 1군이 있으면 2군이 있다.
실력이 안되면 1군에서 2군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어느 순간 실력을 발휘하면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A급이 있으면 B급도 있고, C급도 있다.
급만 나뉘어있을 뿐 모두 같은 일을 한다.
'기준'을 넘지 못했다고 절망할 필요 없다.
명문대를 나온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남의 회사를 위해 일하다 나이 들어 은퇴하거나 명퇴하는 일반적인 삶은 똑같다.
나이 들면 노안이 오고 패기 넘치고 최신 교육을 받은 젊은 후배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주고 서서히 소위 한 물 간 꼰대가 되는 게 우리 삶이다.
젊어서 잘 나가지 못했던 사람은 없다.
나이 들면 모두 같이 하향 평준화가 된다.
익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는 건 어떨까.
오늘 라거 맥주 25리터 발효를 오늘 시작한다.
10월 중반 지나서 내 생일에 지인들을 공방에 불러서 맥주 한 잔 하는
그 시간이 벌써 기다려진다.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