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던가!
왁자지껄한 파티에서, 맥주 한잔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앗, 저기 왠지 사람 수도 너무 많지 않고, 무난한 분위기로 보이는데?' 먹잇감을 찾은 하이에나처럼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안녕, 반가워. 난 Sam이야."
"어, 안녕, 난 Matt이야." "난 Chloe야"
얼마 안 가 화제가 떨어지면, 나는 여전히 해맑고 온화한 미소를 띠며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는 척 하지만, 내 눈은 주변에 내가 끼어들만한 다른 무리가 있는지 찾기 위해 계속 굴러간다.
MBA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네트워킹. 하루가 멀다 하고 네트워킹을 위해 갔던 수많은 파티에서 나는 그렇게 눈을 떼굴떼굴 굴렸었다.
"Sam!! 드디어 이렇게 만나는구나. 오늘 저녁에 시원하게 한잔 해야지?"
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구글의 팀 동료들과 다 같이 모인 출장 자리. 화상회의로 만나오던 팀원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직접 보게 되어서 그런지, 다들 아침부터 한 잔 걸친 듯한 업된 분위기다. 덩달아 나까지 흥분이 되어 저녁 파티를 앞당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느 조직이든 회사를 다니면 업무로 엮이는 동료들과의 인간관계는 피할 수 없다. 많은 시간을 함께 부대끼면서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인 만큼, 회사 네트워킹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워낙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삼성에서도 종종 업무로 알게 된 동료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갖곤 했었다. 삼성에서는 클라이언트나 현지 법인의 외국인들을 제외하고는 주로 한국인들과 업무를 해왔던 반면, 지금 구글에서 일하는 팀은 나 혼자만 한국인인 상반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구글에서도 이런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구글의 지금 팀에서는 좀 더 글로벌 환경에 놓이다 보니, 나의 말이 문화의 차이로 인해 다른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을지, 표현을 더 조심히 살핀다는 차이 정도. 삼성에서 구글로 오면서 크게 다르게 느꼈던 것은 사람들과 관계를 만드는 방법의 차이였다.
"잘 지냈어? 다짜고짜 미안한데... 나 접촉사고 났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되냐..."
나의 다급한 목소리에 그룹 연수에서 만난 삼성화재에 다니는 동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답을 한다.
"아이고, 사고 났어? 자세히 좀 불러봐 봐."
삼성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로 나는 입사 동기와의 네트워킹을 꼽는다. 십여 년 전의 그 활발함은 아니더라도, 가끔 한 번씩 한둘이라도 얼굴 보면서 사회생활의 위로를 주고받는 그 끈끈함. 경험을 공유하고 동질감을 느끼며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기 네트워크는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게다가 내가 입사했을 때는 삼성그룹이 통합으로 신입 연수를 받아서,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화재나 호텔 신라, 제일기획과 같은 다른 계열사의 동기들과도 자연스럽게 연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것도 삼성에서 얻을 수 있었던 좋은 선물이었다.
"OO님, 1on1 괜찮으세요? 커피 한잔 같이 해요."
삼성과 같은 통합된 기수의 입사 동기 개념이 없는 구글의 네트워킹 기회는 조금 다르다. '1on1'이라 부르는 캐주얼한 1대1 미팅이 그중의 하나인데, 사내의 누구든 대화하고 인사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지난 글에 언급한 것처럼) 공유된 구글 캘린더를 통해 비어 있는 시간에 미팅 초청을 하는 것이다. 구글러들은 이 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다들 열려 있어서 자신이 특별히 바쁘지 않은 한, 만나서 서로 소개도 하고 생각도 나누곤 한다.
'뜬금없이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이 불쑥 얘기하자고 하는 게 안 이상한가?' 입사 초기엔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눈 딱 감고, 직접 만난 적이 없던 아예 업무가 다른 직군의 분께 1on1 미팅 요청을 드려보았다. 그랬더니 재깍 "먼저 인사해줘서 고마워요. 언제든지 좋아요!"라는 인류애가 넘치는 답변이 오는 게 아닌가? 소심하게 쪼그라들었던 마음을 팽팽하게 다림질로 펴주는 듯한 따뜻한 반응에 용기를 얻어, 덕분에 나는 진정한 '구글러'로 한걸음 더 내딛게 되었다. 그래서 강연으로 유명한 분께는 프레젠테이션의 노하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엔지니어 분께 코딩을 배울 수도 있었고, 뮤직 업무를 하는 분과는 음악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업무에만 국한되는 네트워킹이 아니다 보니, 좀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의 연을 만들어가며, 네트워킹이 주는 즐거움을 알아갈 수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계속 대화를 나누다 마치는 한국식 회식'과 '서서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들과 번갈아 가며 대화를 나누는 서구식 파티'와 같이, 내가 겪은 두 회사의 네트워킹 방식은 많이 달랐다. 삼성맨 시절의 나의 인간관계는 입사동기처럼 환경에 따라 주어진 인맥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었던 반면, 구글러가 된 후엔 내가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면서 만들어야만 했다. 둘로 인해 얻어진 관계는 모두 소중한 인연들이지만, 후자를 통해 내가 좀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설사 1on1이라는 시스템이 없다 하더라도, 내가 먼저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 열고 다가간다면, 직장에서 서로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인연들은 훨씬 더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
"Sam, 전에 1on1에서 이쪽 업무 관심 있다고 했었죠? 이번에 포지션 하나 나왔는데, 오고 싶은 생각 있어요? 내가 추천해드릴 수 있어요."
무심코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주신 고마운 분의 연락. 기회는 때때로 선물처럼 찾아온다. 지금 업무와 관련이 없는 인맥이 영원히 관련 없으란 법은 없고, 업무가 아니더라도 인연은 어떻게든 이어진다. 그러니까 용기를 한번 살짝 내보자. 속는 셈 치고.
표제 사진 출처: www.klaviyo.com/blog/6-facebook-and-instagram-seg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