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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S Dec 10. 2018

퇴직과 이직, 그리고 인연: 퇴사는 끝이 아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상무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 김 과장 거기 간다고 우리 다 싹 잊어버리는 거 아냐? 하하"

때로는 즐거웠고, 때로는 두려웠던, 익숙한 그 왁자지껄한 수원 모처의 회식자리. 아, 정말? 이게 끝이라고?




"아아아, 사장님 10분만 더 주시면 안 돼요?" 

징그러운 30대 아저씨들이 노래방에서 시간 더 달라고 애교를 부리다가 실패를 하면, 친구 중에 마무리 곡으로 꼭 이 노래를 선곡하는 친구가 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퇴사하고 나서 전 직장을 돌이켜보면 이 노래 가사가 떠오르곤 한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출처: mnet '쇼미 더 머니')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2006년의 어느 날. 즐겨보는 쇼미 더 머니의 쫄깃한 그 합격/불합격 멘트처럼, 메일을 통해 합격 통지를 받았던 그 순간이 생생하다. 지원한 회사는 셀 수 없이 많았는데, 날 받아준 회사를 찾기가 이리 어려울 줄이야. 졸업식 때 못 오실 줄 알았던 엄마를 찾은듯한 그 짜릿함. 


정말 길고 길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초등학교 6년. 억겁의 세월 같았는데, 그게 6년. 그리고 대학은 교환학생 시절까지 다 더해서 계산해도 5년인데,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느 한 곳에 소속되어 있는 일이 인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그 긴 10년 가까이의 세월을 내 첫 직장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보냈다. 20대의 뽀송뽀송하고 앳되었던(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청년은 푸석푸석한 30대 중반의 유부남이 되었고, 내 9년여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했던 삼성전자라는 이름은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면접볼 때도, 퇴사할 때도, 이 문으로...


말로만 많이 들었지, 퇴사라는 걸 경험한 건 처음이었다. 내 의지로 들어갔던 조직, 울타리를 내 의지로 다시 나온다는 게 참 마음이 복잡했다. 사원증, 노트북, 시료 제품 등을 모두 반납하고, 처음 면접 보러 왔을 때의 그 외부인의 모습으로 다시 나가게 되면서,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리셋하는구나 생각했다. 

안녕, 나의 2,30대 사회 초년생 시절이여. 안녕, 나의 첫 직장이여. 안녕, 그 안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여.

잠깐. 이렇게 없던 일처럼 희미한 옛 추억으로 사라져 가고, 그저 내 이력에 한 줄로 남을 뿐인 건가? 


아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한때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었지만, 휴직을 하고 갔던 INSEAD MBA에서도 그랬고, 퇴사 후 이직한 새 직장에서도 내 꼬리표처럼 전 직장의 이름은 계속 따라붙었다. 그리고 나의 강점이자 차별점이 되기도 했다.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류의 소위 '꼰대 화법'을 에지 있게 구사할 수 있게 해주는 엄청난 원동력이 되었고(물론 저렇게 말하진 않는다.), 나의 경험의 브랜드화를 가능하게 했다.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서, 메이커들의 시장 구도는 많이 바뀐 것 같은데, 메이커 경험자의 의견을 알 수 있을까?" 


교수님의 토스에, 클래스메이트들의 시선은 내게로 쏠렸다. MBA 첫 학기, 70명 남짓한 우리 클래스에서 한국인도 나 혼자, 모바일 산업 마케터도 나 혼자, 삼성전자 출신도 나 혼자였다. 나의 친구들에게 난 삼성에서 글로벌 모바일 산업을 주물럭 하다 온 전문가로 포지셔닝되어있었고(내가 꼭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 의견 강한 외국 친구들 사이에서, 이 배경은 나름 내 의견에 공신력을 주는 고마운 나의 무기였다. 

"음, 내가 좀 경험해본 사람으로 얘기하자면.. 블라블라" 

나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 소리에 접어들어도, 급우들의 눈은 반짝반짝. 아, 왠지 희열이 느껴진다. 


"Sam, 내가 이쪽 산업으로 졸업 후에 취업해보려는데, 너 이 제품들 다룬 적 있지? 어떤 식으로 내가 레주메, 인터뷰를 준비해야 될까?" 

학업기간 내내, 아시안과는 잘 섞이지 않던 자존심 센 백인 친구였다. 내 전 직장에서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이런 친구에게 이렇게 내가 도움을 줄 상황이 왔었을까.


교수님 질문에 답할 때의 클래스 분위기(대략 이런 느낌이었다). 내 이야기 좀 듣겠다고 이렇게까지 초롱초롱할 것까지야... (w/ 그리운 나의 MBA 친구들)


구글로 이직한 이후에도 계속 나의 전 직장의 영향은 계속되었다. 

"Sam이 그 산업을 잘 알지 않나요? 이번에 이 쪽으로 제안을 해보려는데, 그 산업의 경험자로서 어떻게 생각해요?" 

"그 회사 쪽에 XXX 알아요? 그분이 이번에 제 업무 카운터파트인데" 

"이 사람 알아요? 우리 팀에 지원했는데, 어떤 사람인지 해서요"

'와, 나 엄청 중요한 사람 된 기분이야!' 

이렇듯 내가 했던 어떤 일은, 그 회사에서 경험한 어떤 일이 되었고, 그 산업, 그런 류의 조직에서의 공유할만한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었다. 그저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생각했던 그 동료, 선후배들은 나의 힘들고도 즐거운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전우이고, 또한 좋은 친구, 멘토, 멘티이기에, 회사를 떠나서도 계속 그들과 삶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새 직장에서 어리바리하며 어려움이 있을 때, 

"김 과장, 그 정도로 우리 회사에서 어리바리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좀만 기다려봐. 조만간 사람 구실 할 거야ㅋㅋ" 라는 욕인 듯 욕 아닌 응원으로, 옛 동료들은 내게 힘을 주었고, 내가 하고 있는 작은 일에도, 재미있어하며 궁금해했다. 


"꺄아! 선배님!!" 

입사 직후, 새로운 파트너사의 주요 담당자와 인사를 하는 날, 문이 열리자마자 들리는 소리. 함께 간 내 매니저가 돌고래 소리 데시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처음이다 보니 긴장해서 각 잡고 있던 나는, 제법 친분이 있던 전 직장 유관부서 후배가 상기된 표정으로 날 반겨주는 상황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새 매니저와 동행한 첫 외부 미팅에서, 나의 존재감이 딱 어필되는 기분 좋은 상황. 세상이 좁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건, 이런 상황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엔 예전 회사에서 대행사 담당자였던 분을 반대로 내가 그 분의 '을'이 되어 만나기도 하는 등골 서늘하면서(?) 즐거운 경험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전에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을지라도, 전 직장이라는 연 아래 더 돈독해진 관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휴, 다행이다.. 나올 때 개판 치지 않아서..' 


왜, 가끔 그런 이야기 있지 않은가. 퇴사하는 날 괴롭히던 상사에 빅엿을 날렸다던가, 동료들한테 돌아이 커밍아웃을 한다던가.. 

우리는 그러지 말자. 사람 인생 모르는 거다.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좁고, 우리의 삶은 계속 돌고 돈다. 그러니 직장도, 사람도 좋은 기억만 예쁘게 담고, 서운하고 안 좋은 기억은 리셋시키는 게, 나한테 결국은 좋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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