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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U Aug 16. 2020

카탈루냐에서 무조건 먹어봐야 하는 와인과 전통 리조또

15일간 서른 도시, 서유럽 대륙을 횡단한 두 남자의 여행기 #10

은이 씨를 숙소 인근에 내려주고 초이 형과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앞에서 상이 형과 합류했는데, 아침에 눈을 뜬 상이 형은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몬주익 광장에 간다던 친구와 동생이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고, 고작 돈 몇 푼을 문틈 사이로 넣어 둔 채 사라졌으니 말이다. 초이 형이 남겨둔 메시지를 보며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남겨둔 돈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우리와 합류했다. 오후 일정에는 예약된 와이너리 투어를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근교에는 세계적으로 꽤나 유명한 와이너리 코도르뉴가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와이너리 입구 앞에 우리의 푸조 308을 주차했다. 에어컨 바람이 빵빵했던 차에서 내리니 어느 때보다 따가운 스페인 햇살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어서 몸을 피신하기 위해 와이너리로 들어갔다. 와이너리 입구에서 만난 첫 건물로 직행하여 로비의 리셉션으로 향했다. 먼저 우리의 예약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예약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영어에 능통한 초이 형이 있었기에 별다른 문제없이 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입담이 좋아 보이는 인솔자를 따라 작은 극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곳에선 15세기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코도르뉴 와이너리의 특징과 역사에 관한 영상을 틀어주었다. 약 20분의 영상 시청이 끝난 뒤에는 다시 인솔자를 따라 드넓은 와이너리 내 시설의 이곳 저곳을 방문하였다. 친절한 영어 설명과 함께 위트 있는 농담으로 투어가 진행됐다. 어두운 극장을 나왔을 때부터 투어객들을 살펴보았는데, 나와 형들을 빼고는 모두 유럽이나 북미에서 온 투어객들 뿐이었다. 아시아인들에게 와이너리는 흔한 여행 코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투어에서 가장 압권이라고 느꼈던 코스는 바로 까브 투어였다. 와이너리 내 까브는 쉬이 끝나지 않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 깊숙한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차마 도보로는 구경할 수 없는 정도라 인솔자가 운전하는 미니 기차에 탑승하여 둘러보았다. 그럼에도 도대체 언제 기차에서 내릴 수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까브는 방대했다. 그리고 까브 곳곳에 오랜 역사동안 코도르뉴에서 생산한 와인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보관되어 있었다. 우리는 까브의 규모에 한 번 놀라고, 인솔자의 운전 실력에 두 번 놀랐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우리는 그저 허탈하게 웃기를 반복했다. 투어 끝에는 코도르뉴의 대표 스파클링 와인을 시음해볼 수 있다. 우리는 와인을 시음하기 위해 또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와이너리 내 와인바였다. 정면에는 코도르뉴의 마크가 크게 박혀 있었고, 인솔자는 투어객 인원 수만큼 스파클링 와인을 준비했다. 단지 시음만을 위해서 크고 모던한 바가 자리해 있다는 게 놀라웠고 그만큼 와인 맛은 배가 됐다.

우리는 시음 후, 샵에서 구매한 스파클링 와인 2병을 손에 들고 와이너리를 빠져나와 푸조308에 올라탔다. 숙소가 있는 바르셀로나가 아닌 아침에 다녀왔던 시체스로 다시 향할 예정이었다. 사실 아까 시체스에서 현지 친구와 점심을 먹었던 초이 형이 저녁을 우리도 함께 먹자고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지인이 맛집을 소개해준다는 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 우리가 시체스에 도착해도 그녀와의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많이 남아 기다릴 곳이 필요했다.


시체스는 해변이 유명한 도시인만큼 해변 라인을 따라 호텔들도 즐비해 있는데 꽤 괜찮아 보이는 호텔 수영장으로 향했다. 배드 뿐 아니라 테이블도 배치되어 있어서 음료나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실제로도 긴 투어 끝에 허기가 져버린 배를 달래기 위해 감바스와 샐러드 그리고 커피를 주문해 함께 먹었다. 우리가 음식을 주문했을 때에는 수영장과 배드에 투숙객들이 꽤 있었으나 저녁 식사 때가 다가오자 점점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쳤을 때에는 수영장에 손님은 우리 밖에 남지 않았다. 내친김에 원 배드를 빌려 장정 셋이서 누워 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간단하게 요기할 수 있는 감자구이와 생굴, 그리고 스파클링 와인 글라스를 주문했다. 톡톡 튀는 스파클링 와인을 한 모금 마시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날 아침만 하더라도 이 호텔 앞 해변 땅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마치 인생 역전이라도 한 기분이 들었다. 이내 바닷가에서 상쾌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배드 품은 매우 포근하여 잠에 들기 적당했다. 30분에서 1시간가량 잠에 들었을까? 훌쩍 다가온 약속 시간에 호텔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어디선가 나타난 빨간 승용차가 아는 채를 하는 것이었다. 차 주인은 바로 우리가 기다리고 있었던 그녀, 말타였다. 말타는 금발의 긴 생머리와 주먹만 한 얼굴을 가진 친구였는데 무엇보다 밝게 웃는 모습이 항상 인상적이었다. 말타는 차에서 어서 따라오라고 신호했고 우리의 푸조 308은 그녀의 차를 뒤쫓아갔다.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시체스에서 멀지 않은 ‘빌라누에바 일라 젤트루’라는 곳이었는데 해저무는 저녁 녘 작은 마을의 일상이 엿보였다. 


말타는 자신이 어릴 적 살던 동네라고 소개해주었고, 마침 이 곳의 전통 문화인 인간 탑 쌓기 행사를 볼 수 있었다. 6월 말경에 볼 수 있는 이 행사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매우 오래된 문화 중 하나라고 했다. 특히, 유네스코에 등록될 정도로 유명한 문화이다. 정말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현지인들이 모여 인간 탑 쌓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말타와 영어로 소통하고 있었던 우리는 “WOW”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행사를 관람했다. 연이어 말타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마을 구석구석으로 안내해주었고, 마침내 말타가 소개해주기로 했던 식당에 도착했다.


이 식당에서는 현지인들이 즐겨먹는다는 카탈루냐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그만큼 식당의 전통과 역사도 매우 깊다고 했다. 말타의 추천으로 먹물리조또와 고르곤피자 등을 주문하여 먹기 시작했는데, 이 식당의 가장 대표 메뉴는 바로 치즈 리조또였다. 오직 이 식당에서 먹어볼 수 있는 음식이라고 했다. 이 메뉴를 주문하면 거대한 호박처럼 생긴 뚝배기가 카트에 실려 나온다. 그 뚝배기 안에는 가열된 치즈가 들어 있는데 직원이 뜨거운 치즈를 휘젓어가며 리조또를 만들어준다. 등장하는 과정마저 꽤나 볼거리가 되는 음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렇게 차례대로 나오는 음식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숙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초이 형과 나는 숙소 주인이 너무 예민한 탓에 어제 밤에 숙소에 들어가지도 않았다고 했다. 초이 형은 지금까지 숙소 중에 가장 최악이라고 말했다. 한참을 안타까운 반응을 보이며 이야기를 듣던 말타는 놀라운 제안을 했다. 집에 게스트 룸이 비는데 우리에게 빌려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 놀라 정말 괜찮은 지 다시 물었고, 흔쾌히 괜찮다고 말하는 말타에게 고맙다며 제안을 받아드렸다. 우리는 천운이라도 따라준 듯이 기뻤고 즐거운 저녁 시간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취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말타의 취미는 각종 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일이라고 했다. 내일은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스카이다이빙도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게스트 룸에 이어 또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혹여 셋 중에 스카이다이빙이 힘들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거절해야만 했으나, 나를 포함하여 두 형 모두 스카이다이빙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들도 있었다. 그러나 스카이다이빙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하루 전이라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니 나중에 확인해보자고 했다. 앞으로 이틀은 큰 계획이 없었던 우리는 말타 덕분에 새로운 계획이 생겼고 맛과 즐거움을 모두 잡은 저녁 식사도 어느새 마무리되어 갔다.


식당을 나서자 어둑어둑한 밤이 찾아와 있었다. 스페인에선 이미 늦은 시간임을 뜻하기도 했다. 우리는 어서 말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땐 온 마을이 이미 잠들어 있었다. 말타는 우리에게 잠깐 기다리라며 노트북을 가지러 갔고, 거실과 부엌을 구경하던 우리는 뒤쪽 베란다에서 잠깐 밤바람을 쐤다.


주변의 불빛이라고 하나 없던 말타네 베란다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서울 하늘에서 찾아보기 힘든 별들이 보였다. 그 찰나에 나는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차분해졌다. 길고 무거운 숨이 척추를 타고 들어왔다가 다시 척추를 타고 내뱉는 느낌으로 한숨을 쉬었다. 근심걱정 때문이 아니라 온전한 고요함 속에 있는 분위기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항상 이맘때면 버스가 끊길 때까지 술을 먹고 선선한 여름 바람을 맞으며 자취방으로 가는 외로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마다 보았던 게 나에겐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유럽에 와있다. 그것도 처음 만난 현지 친구의 집에 와 낯선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스페인에 도착한 지 고작 이틀밖에 안됐는데 말이다. 그와 동시에 지난 대학시절과 사회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어느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처럼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나는 무얼 바라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인지 고민됐다. 그래도 이왕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탈탈 털어 여기까지 왔으니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누려 보기로 했다.


때마침 말타는 노트북을 가지고 내려왔고, 우리 네 사람은 앞마당 테라스의 나무 테이블에 둘러앉아 스카이다이빙 사이트에 접속했다. 말타는 이미 예약되어 있었지만, 우리도 오후 시간에 예약이 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우리 세 사람 모두 예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총무를 책임지고 있는 초이 형의 카드로 시원하게 결제했다. 어서 잠자리에 들어야 했던 밤이었지만, 처음 해보는 스카이다이빙에 벌써부터 설레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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