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입니다 Apr 18. 2022

'마음이 아프다'라 말하기 어려워하는 어설픈 어른이지만


후회 없는 삶을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후회 없는 삶보다 사랑이 있고 아픔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삶의 방향이 변하는 듯하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려 하다 보면 자연스레 사랑이 있는 삶을 하게 된다고 믿는다. 후회하지 않겠다며 '올바름'만 좇던 나의 삶은 생각보다 많이 외롭고, 고단하며, 갈등과 외로움을 만나야만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올바름을 좇던 나의 행동들이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불러일으키거나 나 자신의 행복수준을 더 낫게 만들지는 않았 점도 많았다. 또는 올바름을 좇았던 나의 마음이 외로움에 얼룩져 서럽게 울고 있을 때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나를 매일 같이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풍요롭게 만들지는 않았으니까. 이런 노력들이 스스로를 진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인간의 외로움은 누군가를 찾게 만든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이런 행동과 방향을 지지해 주는 사람, 사랑해 주는 사람. 그러다가 만난 사람들도 가까이서 보게 되면 서로 맞지 않는 마음, 오해에 할퀴고 또 쉽게 슬프게 만들며 지겨움을 느끼게, 피곤하게 만든다. 오해에서 비롯되거나, 작은 말에서 비롯된, 혹은 다 들추어내지 않은 마음에서 태어난 일그러진 틀로 상대를잘못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아픔들.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기는 나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기보다 쉬울지 모르겠다. 나 자신이 덜 아프게, 덜 슬프게,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들도록 도와주기만 해도 이 세상에 속한 '나 자신'을 먼저 행복하게 만든 일이니, 그게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든 일의 일부가 아닐까. 그로써 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지.


이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군대에서는 그런 문화가 있었다. 병사 중 가장 계급이 높은 분대장(병사 중 유일하게 '명령권'을 갖고 있다.)은 자기 분대의 후임병들을 한 명씩 일대일로 부른다. 그 뒤 한 명씩 '오늘 괜찮았느냐'라고 안부를 묻는다. (근래 떴던 영화 'DP'와는 조금 다른 맥락일 수 있다. 군대에서는 그저 말년 병장이나 최고참이 후임들을 괴롭히는 역할의 설정으로만 나오니까. 국방부 입장에서는 굉장히 답답할 것도 같다.) 다행히 군대에서는 이렇게 한 명 한 명 불러내어 눈을 마주하고 마음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한 명 한 명, 고된 생활 속에서 마음이 흔들린 청년들을 추슬러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너 괜찮니'라고 묻는 문화는 마음이 괴로워 어쩔 줄 모르던 후임들이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을 준다. 흙 투성이의 거친 군화발만 연상되는 거친 공간이라 여겨지는 '군대'에도 이런 따스한 문화가 있다.  


공동체에서는 사회적 자산(신뢰, 배려, 존중 등)가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고, 배려가 있고, 존중이 있는 공동체가 비로소 돈도 끌어올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얼마나 그런 것들을 내가 잘 만들어내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공동체의 멤버로서, 과연 내가 그런 자산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이 사회적 자산을 잘 활용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혼자서 조용히 나에게 속삭여봐야 할 일이다. '외롭지 00아', '내가 너를 더 알아주고 사랑해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너의 삶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런 삶을 네가 누리지 못하게 서투른 모습으로 대해 미안해',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줄게.', '이 세상이 너를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네 마음에 관심이 없더라도, 나는 네 마음을 들여다봐줄 테니 걱정하지 마.' '앞으로 많은 일들이 잘될 거야.', '천천히 조금씩 해나가보자.', '너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라는 말들로 내 안의 곪아 터진 마음들을 살펴봐야할 일이다. 그랬을 때 사람은 다시 설 수 있을테니.


그런 공동체에서, 내가 먼저 문화를 만들어나갈 일이다. '괜찮아?'라고 먼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 내가 아픔을 느껴서 슬프더라도, 이를 다른 이가 겪게 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어쨌든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속삭이고, 이 고된 삶의 여정을 재밌고 즐겁게 만들어나가기 위해 애를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모두가 비슷하게 아픔과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을 테니. 각자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아닌, 내가 받은 상처와 아픔에서 배운 교훈을 다른 사람들을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기 위해 애쓸 일. 그랬을 때 풍요는 그들에게도 쌓이겠지만 내게도 돌아오리라 믿는다. 그로써 후회 없는 삶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게 곧 사랑이고 행복이라 생각한다. 한 개인이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되는 건 이 같은 마음, 나를 살리는 일에서 더 나아가 남까지 살리는 일로 확장되어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퍼머컬처 농장에서 얻는 메리트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