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그나이트 Sep 28. 2016

[소설] 61. 끝이 없는 이야기

Chapter 4. 끝이 없는 이야기 (1)

“어! 맥주 다 마셨네. 다음에 뭐 시킬지 결정했어?”


현욱이가 물었다.


“응, 카스.”


“카스? 왜? 맛있다면서 수제로 시켜.”


“됐어. 이제 맛 차이도 모르겠어. 술은 그냥 카스나 하이트가 제일이야. 그냥 싼 거 맘 편하게 마실래.”


“그려 그럼. 나는 콜라 마실래. 피자엔 맥주보다 콜라가 더 맛난다.”


현욱은 맥주와 콜라를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보니, 피자가 별로 안 남았고, 많이 식어 있었다.


“그러 보고니 안주가 없네, 괜히 시켰나? 취소하고 2차 갈까?”


현욱이 말했다.


“귀찮게 뭘 또 어딜 가. 그냥 뭘 더 시켜. 테이블 치우고 다시 깔면, 그게 2차야.”


“아이고, 이 귀차니스트는 여전하구나. 그래도 예전에는 2차 가자고 하면, 새로운 안주랑 술 마실 생각에 벌떡 일어나더니, 이젠 2차 가는 것도 귀찮아? 너 그러다 돼지 된다.”


“흥! 먹다 보니 그 술이 그 술이고, 그 안주가 그 안주야. 이 가게 안주 다 먹은 것도 아닌데 뭘 굳이 옮겨 다녀 귀찮게. 살이야 빼면 되는 거고, 메뉴판이나 달라고 하자. 생각난 김에 우리 메뉴판 공부하면서 안주시키자.”    

둘은 머리를 맞대고 메뉴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민영이는 최근에 시험공부도 이렇게 열심히 한 적 없다고 할 정도로 꼼꼼히 메뉴판을 보았다.

결국, 튀김 세트와 피자 2조각을 추가로 주문했다.


“근데, 넌 이렇게 먹고 살이 안 찌네? 다이어트하는 거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왜 안 해? 한 끼 잘 먹으면 2~3일은 소식하면서 조절하고, 술 먹은 다음 날에는 주스만 먹으면서 버티기도 하고, 때마다 다 신경 쓰면서, 운동도 꾸준히 하잖아. 주 3회 이상은 헬스장 간다고.”


“그 정도는 누구나 하는 거 아냐?”


“오빠도 안 하잖아. 이 정도면 엄청 신경 쓰고 관리하는 거야. 대부분 이 정도도 안 해. 말로만 하지. 나는 언니랑 엄마랑 계속 이 정도의 다이어트는 생활화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하는 것뿐이고.”


“그렇구나. 하긴 나도 요새 배가 나와서 좀 고민되긴 해. 정말 아저씨 될까 봐. 다이어트해야겠지?”


“겉으로 봐서는 모르겠는데.”


“그래? 어디 한 번 까 볼까? 심사받게?”


“풋! 뭐야. 정말 아저씨 같이. 그리고 배 나온 거 나한테 심사받아 뭐하게. 웃겨. 애인 만들어서 그쪽에게 관리받으셔요.”


“하하하. 그래야겠지.”


민영이는 즐거웠다. 어떤 농담을 해도 핑퐁핑퐁 받아 칠 수 있는, 추억으로 다져진 친구가 정말 좋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내일 학원 오픈이라면서, 이렇게 늦게까지 있어도 돼?”


“괜찮아. 말이 오픈이지, 사실 한 달 전부터 수업은 하고 있었어. 내가 공부방으로 수업하던 애들 데리고 시작하는 거라. 이미 수업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지. 내일부터는 신입생 5명 들어오는데, 그 애들은 박 선생이 데리고 수업할 거고, 상담 선생님이 따로 있고, 다들 믿을 만한 선생들이라 괜찮아. 딱히 개원이라고 할 건 없어.”


“오... 직원도 있는 거야?”


“직원 두 명에 동업자 한 명.”


“동업자?”


“응, 박선생이라고 꽤 오래 알던 동료 강사야. 돈도 조금 보태면서 여러 가지로 수익 쉐어하기로 하고 같이 시작하는 거야. 그 선생도 다음 달에 공부방 정리하면서 학생 10명은 데리고 오기로 했지.”


“여자?”


“응.”


“흐응......”


“왜?”


“애매하지 않아? 반씩 동업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분 투자면 오빠랑 창수 오빠처럼 애매해질 가능성이 너무 많잖아. 게다가 여자면, 나중에 결혼하거나 할 때, 복잡해지는 거 아니야? 보통 결혼하고 그러면 손 떼기 마련이니까.”


현욱이는 안경을 고쳐 쓰는 박선생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게다가 독신주의자이기에 민영이의 걱정이 다 쓸데없이 생각되며, 혹시 민영이가 박선생을 신경 쓰나 하는 생각에 민영이의 걱정이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글쎄,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좀 더 일찍 너랑 상의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걱정되네.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까 내가 좀 더 조심할게.”


“그래.”


안주가 나왔다. 민영이는 맥주를 하나 더 시켰다. 뜨끈한 안주에, 갓 따른 시원한 맥주를 마시려는 것이다.


“참, 지은이는 잘 지내지?”


“잘 지내는 것 같더라. 둘째 가지려고 한다는데.”


“그렇구나.”


“지은이랑 이제는 아예 연락 안 하는 거야?”


“응, 중간중간 생각은 났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됐네.”


“지은이가 니 이야기하면서 안타까워하더라고. 나 때문에 친구 잃었다고 나쁜 놈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됐네. 헤헤. 미안. 뭐 근데 오빠 때문인가. 지은이가 창수 오빠랑 결혼해서 그런 거지. 쳇. 난 솔직히 창수 오빠 그냥 그렇거든. 사람이 우아함이 없잖아. 무식하고, 거칠고, 그나마 의리 있고, 조강지처 챙기는 점 그거 때문에 그냥저냥 두고 본거야. 그런데 지은이가 창수 오빠랑 결혼까지 하니까. 결국 둘이 똑같네 싶더라. 지은이도 사랑도 있겠지만, 속물근성 있구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나랑 너무 다른 세계로 간 것 같아서. 모르겠어. 나는 결혼 못하고 친구는 결혼하고 애도 낳고 그래서 배 아파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 후후후.”


“뭐, 나이 먹고 내 공간이 확실해지면, 주변이랑 거리를 두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애정이 식거나. 사람에게 실망한 거랑은 또 다르다고 생각해. 그냥 나무가 자라면서 기둥이 넓어지면서 본인의 자리가 많이 필요해지는 것 같은 거 뭐 그런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나는 부모님이 이혼해서 그런지, 뭐라고 해도 둘이 애정을 가지고 한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것 하나로 참 좋아 보여. 창수도 남들이 보기엔 아슬해 보여도, 어쨌든 본인의 기준으로는 바람 절대 안 폈고, 지은이는 또 그 기준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남들이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치.”


민영이가 맥주를 마시고, 감자튀김을 먹었다. 적당히 식은 감자튀김이 짭조름, 고소했다.


“우리 넷이 대학 다니면서 술 마시고, 놀고 할 때가 좋긴 좋았어. 그때는 좋은 시절인 지 몰랐지만. 다시 돌아가면 알까? 그때가 좋다는 것을. 그리고 열심히 사랑하고, 공부하고, 좀 제대로 살까?”

현욱이가 감자튀김으로 소금을 헤집으며 말했다.


“글쎄. 그래 봤자. 똑같겠지. 사람이 변하냐? 그때의 나나, 지금의 나나 똑같은데. 돌아가도 똑같이 연애하고, 놀고, 별생각 없이 그렇게 보낼걸. 그게 ‘나’ 니까.”


민영이는 이번에는 피자를 들어 한 입 베어 물면서 말했다.


민영이가 남은 맥주를 한 입에 떨어 꿀꺽 마셨다.


“잘 먹네. 여기 잘 왔네. 한 잔 더 시킬까?”


민영이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생각난 듯 시계를 보았다.


“오빠, 지금 11시야. 어머나, 시간이 너무 빨리 갔어.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일어나야겠다.”


“벌써? 난 한 9시 30분이나 10시 정도로 생각했는데. 시간 진짜 빨리 가네.”


“더 마시고 싶은데,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이만 일어나자.”


“그래, 그러자.”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영이는 화장실에 가고, 현욱은 계산을 했다.


택시를 잡으러 둘은 잠시 걸었다. 일요일 늦은 저녁, 길가는 한산했고, 바람은 미적거리며 귓볼을 간지럽혔다. 

술 취한 사람이 지나갔다. 현욱은 자연스레 민영이 어깨를 잡아 길 안쪽으로 보내며, 민영이를 보호했다. 그리고 바로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


민영이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현욱이 소매를 잡아 현욱이도 멈추게 했다.


“오빠. 나 할 말 있어.”


“응? 뭔데?”


길을 걷던 현욱이가 의아한 듯 민영이를 내려봤다. 민영이가 현욱이의 눈을 피하면서 말을 꺼냈다.


“미안해. 그때, 미안했어. 헤어지자고 말도 못 하고, 비겁한 모습으로 상처를 줘서 미안해. 그땐 짧은 생각에 그렇게 안 하면 못 헤어질 것 같았어. 몇 번이나 헤어지자고 말만 했지, 진짜 헤어지질 못했으니까. 그래서 그랬는데...... 정말 짧은 생각이었어. 정말 미안해.”


현욱은,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힘들게 말하는 민영이를 내려다보았다. 현욱은 손을 올려 민영이의 어깨에 올리려다, 귀엽다는 듯, 민영이의 머리를 마구 흩트려놓으며 ‘헤헤헤’ 웃었다. 민영이가 고개를 들고 현욱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말이야. 나는 기억도 안나. 네 잘못 아니야. 널 그렇게 만든 내가 잘못이지. 가자. 늦었어. 데려다줄게.”    

현욱이가 뒤를 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엉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민영이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오빠, 무서워 같이 가자’ 하면서 종종종 뛰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60. 끝이 없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