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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by 김비주



어떤 사람은 물 같아서 손으로 잡기 전에

흘러내리기도 하지

흘러내린 그 물에 얼굴이 비치면

저 먼 나라에서 잠깐 다니러 온

마알간 복숭아 같은 사람


올여름은 신들이

땀에 절인 편지들을 구깃구깃

흘러내리던 마음들 사이로 태양은 곤두섰고

시를 쓰는 일이

바람 잡는 일이 되어

서편 별이 이울 때까지

바람의 끝에 매달려 바람을 그린다



2024.10.8


산다는 건 모든 것과의 관계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과의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올여름은 몹시도 더워서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수년간 하루도 놓치지 않고 했던 여름 산책을 접고

더위와 마주치는 게 두려운 나이가 되어서 칩거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3년, 또다시 오는 폭염이 안으로만 들어오게 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자연과의 만남도 녹록지 않은 여름이었다.


사람과의 관계도 늘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나는 늘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많이 만나진 않는다. 사람을 만나고 깊은 속을

내주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물같이 환한 사람, 너무도 말개서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는 곱고 순정한 사람을 그리워한다.

손으로 잡기도 전에 흘러내릴, 그런 사람은 어쩌면 선물인 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 상처들을 자연에 위로받기도 한다.

늘 변함없이 같은 모습으로 속내를 보이며 위로를 하는 자연이

많은 위안이 된다.


올해는 여름의 더위도 사람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이 만만치 않음이 자각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시를 쓰는 일이 또 다른 수행의 행위이자

마음을 다잡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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