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꺼내 본 고백

by 김비주

나는 나의 삶이 세상에서 참 멀어진 삶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곧게 피어나는 수련의 자태처럼 고고했다는 걸.
너무 세속에 물들어지는 걸 용서하지 않았던 천성이
발을 딛고 두 주먹 쥐고 뛰어온 삶을 우주로 퍼 올렸다는 걸.

어머니는 살아계실 때 늘 말했다.
너무도 정침 해서 헌 것도 새것으로 만들어내는
내 삶의 방식이 늘 새것을 갖지 않고도 빛나게 해서
새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어머니는 미리 아셨다.
내게 오면 아주 오래된 것들도 반짝인다.
그걸로 인해 늘 빈한한 내가 풍성하게 보였다는.
실제로 삶은 봄날의 반짝이는 페이지들을 많이 갖고 있었다.
추락하는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나는
30년, 심지어 40년이 넘는 겉 윗도리도,
내 결혼 생각과 같이 하는 반짝이고 예쁜 잔들과 그릇, 이불 홑청까지도 말끔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함께 한다.
거기에는 응원했던 이들의 안목이 담긴 생각들이
아직도 빛나는 삶의 일부가 되어서 풍요롭게 빛나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이른 아침, 새벽이 문을 열자
밀리의 서재에서 꺼내온 김애란의 소설은 이 사실을
직시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달려라, 아비》 책에서 읽어낸 두 편의 단편 소설이
내 지나간 삶을 송두리째 소환했다.
<스카이 콩콩>, <달려라, 아비> 두 편을 읽으면서 진짜
많이 웃었다.
너무도 절실한 문장과 재치 있는 생각, 기가 막힌 생활이
배어 있어서.
'어쩜 이렇게' 갈 수 있을까 삶은 이런 건데.
왜 내가 겉돌았는지 이해가 갔다.

난, 늘 그랬다.
나를 추락시키는 모든 것들에게 저항하며 살았다.
너무 많은 식욕, 질투, 경쟁심까지 배제하고 살았다.
오직 자신이 향하고자 하는 생존을 넘어선 생활, 지끄러지지 않는 태도와 당당함을 얻기 위해서 모든 날을
쏟아부었다.
그래서인지 늘 생각과 생활은 정리되어 있어야 했고
많은 시간을 나를 고양시키는 데 있었다.
잘 절제된 소비, 적당한 미적 감각, 헝클어지지 않는 인성
이건 너무나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다.

다행히 먹는 것에 목숨 걸지 않는 남자와 비슷한 식성까지도.
사는 것도.
아침을 준비하지 않은지 오래됐다.
생식으로 아침을 먹는 남편을 두어서.
도서관을 순례하는 남편과 오랫동안 각 자의 방식대로
삶을 잘 공유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생활 속으로 타락도 하지만, 생은 퍼올리는 우주로의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산 것 같다.

2025.6.8

모처럼 이른 아침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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