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이제 다 괜찮다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 절에서의 크리스마스


매년 찾아오는 그 날을 조용히 건너뛰겠거니 싶었다.

절에서만 지내다 보니 연말을 앞둔 겨울을 지나고 있노라고 달력을 통해 확인할 뿐 체감하긴 어려웠다.

바깥 날씨는 얼마나 매서운지, 얼마나 화려한 조명들이 도시를 비추고 있을지, 얼마나 반짝이는 트리가 거리를 메우고 있을지를 느끼긴 어려웠으니까.

내가 굳이 챙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세상이 알아서 요란하게 알려주던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올해는 평소와 다르게 여느 보통날로 여기려 했지만 때가 되니 한 생각이 올라왔다.

‘지금쯤이면 다들 시끌벅적하게 보내고 있겠구나.’

모르긴 몰라도 종교와 관계없이 이날만큼은 누구나 설레고 들뜨는 날이니까.

어디서 뭘 하든 대부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서울에 올라오기 전엔 항상 친구들과 이 시간을 함께 했다.

평소엔 자주 못 만나더라도 이 날 만큼은 함께한다는 무언의 약속이 줄곧 지켜져 왔다.

그러다 그 약속이 말없이 사라지게 된 건 내가 서울로 옮겨오면서부터였다.


‘작년엔 내가 어떻게 보냈더라?’


그러고 보니 작년 크리스마스엔 직장 동료들과 이 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할 그 자리….

그 시간 역시 우리는 함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같이 보는 데도 크리스마스 마저 함께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땐 일터가 꿈터라 여기며 동료들이 가족이고 친구였는데, 늘 함께였는데…….’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지만 일 년 사이 이렇게 바뀔 줄은 정말 몰랐다.

같이 땀 흘리고 즐거워하며 모든 것을 함께 하던 이들과 작별하게 될 거라는 것도, 크리스마스를 절에서 보내게 될 거라는 것도…….

이런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올 때쯤 어디선가 보살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에서 우리도 파티해요.”


절에서 지낸다고는 하지만 바깥 분위기를 모르는 건 아닐 터, 센스 있는 보살님께서 절에서 보낼 우리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오셨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맘껏 살린 예쁜 케이크와 양파, 마늘 토핑이 빠진 절 스타일의 새로운 피자를 들고서.


우리는 케이크에다 초를 켜서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오신채가 빠진 특별한 피자를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웃음꽃이 피어나며 우리만의 스타일로 이 시간을 즐겼다.

세상에서 가장 차분하고 평온한 파티를.


절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것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색다른 피자를 먹게 된 것도, 얼마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이들과 소중한 인연으로 이 시간을 즐기게 된 것 모두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올해만큼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또 있을까?

평생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라는 따스한 추억이 내게 선물로 찾아왔다.




# 괜찮다, 이제 다 괜찮다


그동안 간간이 오는 연락에만 짧게 답할 뿐 외부와 연락을 끊고 살았다. 걸려온 전화에도 답하지 않았다.

내 근황을 궁금히 여겨 이것저것에 답하다 보면 이야기가 길어질 테고, 또 궁금하지 않은 주변 소식까지 접하다 보면 마음이 번잡해질까 봐서.

의도한 대로 외부와의 접촉을 멀리하고 절에서 기도하고 수행하며 지내다 보니 마음이 많이 안정되고 정화되었다.


처음에 나를 지배하던 분노, 억울함, 배신감과 같은 감정들이 절을 하며 많이 씻겨 내려갔고, 그 이후 수행과 기도를 하며 감정의 찌꺼기들이 정리되었다.

지금은 ‘내가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했지? 왜 그런 감정에 휩싸였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의 감정들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만 하다.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헤매었던 내 마음을 나의 내면으로 향하게 한 시간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는 가운데 내게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또렷이 관찰하고 또 관찰했다.

그렇게 내면을 향해 마음을 깊숙이 모으다 보니 지금까지 내게 일어난 일들이 이해가 모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더 명징해졌다.

모두 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모든 것이 내 마음의 반영이었다는 것을…….


그것을 깨닫게 되자 미워할 대상이 없고 용서할 상대랄 게 없었다.

생각에 거기까지 미치자 묵은해가 가기 전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죄송했다고, 그리고 감사했다고.


늘 마무리를 중요하게 생각해 온 나인데 직장동료들과 제대로 인사다운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에 늘 마음 한편이 시리고 아팠다.

그래서 한 때 많이 소중하고 감사했던, 한 때 많이 미워하고 원망했던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내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진심. 바로 내 진심을 전하는 것.


또박또박, 꾹꾹 눌러서 천천히 써 내려갔다.

한 글자 한 글자에 내 마음이 실릴 수 있도록….

한 페이지를 가득히 메운 손편지를 메시지로 대신했다.

과연 내 마음이 얼마나 전달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얼마 후 음성메시지가 도착했다. 담담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첫마디를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나의 진심이 전해졌다는 것을, 그들의 진심 또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쌓여있었던, 서로가 전하지 못했던 진심이 통한 듯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주체 없이 흘러내렸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법당에서 한참 동안 많은 눈물을 쏟아내었다.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는 눈물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부처님 앞에 앉았다.

가만히 부처님을 향해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괜찮다. 이제 다 괜찮다.’

살아있는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며 내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법당에서 오직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계셨다.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미소로…….

큰 안도감이 찾아왔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포근함과 아늑함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없이 많은 눈물을 흘려보냈다.


마음속 깊이 오랫동안 해소되지 않았던 갈증이 해갈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어.’

그토록 온화하게 미소 짓던 그 모습을…

내 마음을 다 받아주시는 듯 환하게 웃음 짓던 그 모습을…….




# 기적이 기적을 부르고


“세상에! 우와! 어떻게 이럴 수가!!!”


어젯밤, 살아있는 부처님을 만난 듯한 기적을 체험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오늘도 어김없이 4시 30분이 되자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누웠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법당으로 내려가는데 다른 때보다는 왠지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오전 5시가 되자 새벽 예불이 시작되었다. 목탁이 울리고 칠정례 독송과 함께 절을 올리기 위해 몸을 숙였다.

몸을 일으키는데 너무나 가뿐한 것이 아닌가!

어제까지만 해도 무릎과 다리 통증으로 인해 바른 자세로 절을 하고 일어날 수 없던 상태였다.

다른 사람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절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내가 무릎과 다리 통증 없이 거뜬하게 일어나고 앉을 수 있었다.


도대체 얼마만인 건지, 이런 내 몸 상태에 나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고통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 정말 누가 요술이라도 부린 것 같았다.

‘연골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혈관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지독하게 아팠고 그토록 풀리지 않던 통증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단박에 사라지다니, 정말 기막힐 정도로 놀랄 일이었다.


너무나 기쁜 마음에, 너무나 신이 난 나머지 더 열심히, 더 많이 절을 하게 되었다.

정말 괜찮은 건가 확인하고 싶어서, 통증 없이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워서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절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제의 경험도 신기했는데 어떻게 오늘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마음속 막혀있던 체증이 내려갔기때문 인 걸까? 그래서 몸도 자연스럽게 풀린 것일까.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어제, 뒤늦게나마 편지와 음성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진심 어린 애정과 애틋함을 확인하게 된 순간 막혔던 체증이 쑥 내려간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미워하고 분노했나 싶을 만큼 모든 것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다들 힘들어서 그랬구나. 마음의 문이 닫혀있어서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했던 거구나.’

서로를 이해하는 언어가 달랐을 뿐 나쁜 사람이어서도, 악한 의도를 가지고 했던 말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해주고 다시 웃으며 만날 날을 기약했다.

그동안 매듭짓지 못했던 마무리를 잘 해결함으로써 모든 것이 해소되었다.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니 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몸도 마음도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렇게 나는 본래의 나로 되돌아가고 있다.

keyword
이전 15화꿈이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