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게 짜 맞추어진 각본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 부정적 감정의 재미난 발견


절에 있으면서 묵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생각과 현재의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재미난 발견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건이 떠올랐는데 화가 나거나 억울한 마음이 올라올 때를 보면 항상 생각이 과거에 가 있었다.

과거에 누군가가 했던 말에 아직 사로잡혀 있거나 그때의 상황에 매몰되어 여전히 그 사람을, 그 상황을 떠올리면 화가 올라오고 억울한 마음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반면, 불안한 감정에 휩싸이거나 두려운 감정이 밀려올 때엔 항상 생각이 미래에 가 있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 겁을 먹거나 좋지 않은 결말을 만들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었다.


예외가 없었다. 딱 들어맞았다.

의식이 지금, 여기, 현재에 머무를 때는 언제나 편안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내 눈앞에 있는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그 어떤 것도 내 행복을 방해하지 못했다.

생각이 과거로 달아나거나 미래로 저 멀리 앞질러 가 있을 때만이 지금 이 순간의 평화를 단번에 무너뜨리곤 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그 감정의 꼬리를 쫓아가 보았을 뿐인데 이전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내 감정의 원인과 그 디테일한 차이를 발견했다.


‘이거 참 재미있네.’


의식을 현재의 순간에 두는 연습을 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재미를 발견했다. 웃음이 난다.


허나 허무한 망상, 환상 속의 재미에 빠져있기보다 중요한 건 현재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거겠지.

우리가 할 일은 과거와 미래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현재로 얼른 시선 돌리는 것에 책임이 있다.

오직 그것 하나뿐!




# 정교하게 짜 맞추어진 각본


‘2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석가모니의 말씀이 어떻게 지금 내게 왔을까?’


불자도 아니었고, 종교에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더군다나 어떠한 불교 경전이 있는지조차 알 리 만무했던 내 손에 법화경이 주어졌다.

그리고 이 책을 30 회독 가까이 읽고 있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도대체 이 책이 왜 내게 왔을까.

스님은 왜 내게 이 책을 읽으라고 하셨을까.


‘시절 인연(時節因緣)’이라 했던가.

분명 이 책이 지금 나에게 온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2회 이상 반복해서 책을 읽는 것이 어려운 요즘 같은 세상에 존재조차 몰랐던 책을 왜 수없이 반복해서 읽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남겨놓은 채 맘 한 구석 답답함을 끌어안고 있다가 오늘로써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왜 절에 오게 되었는지를, 내가 왜 외부와의 접촉 없이 100일의 시간을 가져야 했는지를…….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널뛰는 이 마음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온전히 내면에 집중하고 마음을 성찰함으로써 나와, 내 인연에,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다정해지기 위해서….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소중한 사람들과의 갈등,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통해 이러한 배움이 일어났다.

절에 들어와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되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마치 완벽하게 짜 놓은 각본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시간을 갖지 않고 밖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여전히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없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눈 뜨면 출근하고 밤 되면 퇴근하는,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100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시간에 휘둘려 질질 끌려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100일은 전혀 달랐다.

매일매일이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연습이었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삶에 대한 고마움, 인연에 대한 고마움, 세상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 채운 시간이었다.


지금껏 혼자 감당해 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 외로웠고, 쓸쓸했다.

혼자 이겨내야 하는 세상이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 홀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 도움 덕분에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얼마든지 이겨내고 극복해 낼 힘을 얻은 소중한 시간들이다.


나란 존재에 대해 이해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까지도 얻게 되었으니 어찌 이 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 세상에서 가장 작은 키다리 아저씨


이제 며칠 후면 회향(回向)을 앞두고 있다.

처음에는 100일을 어떻게 보낼까 싶었는데

그 말이 무색할 만큼 100일이 성큼 코 앞에 다가왔다.


절에서 지내면서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인연을 많이 만났다.

아픈 나를 위해 마사지를 해 주고, 추울까 보온 매트와 무릎담요까지 살뜰히 챙겨주셨다.

젊은 사람이 절에 들어와 있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고 나를 추켜세우며 격려도 많이 해 주셨다.

모두들 나를 아끼고 도와주신 덕분에 몸과 마음을 잘 회복할 수 있었다.


내가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려면 나 또한 내 앞의 인연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사실 도와준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많은 분들이 내게 바라는 바 없이 베풀어주신 것처럼 나 또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적인 수행과 노력을 해야겠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 분 한 분을 떠올렸다.

내게 보내주신 따뜻한 눈빛과 부드러운 미소, 함께 나눈 웃음들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다.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배어 나왔다.

고개 숙여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조용히 옆에서 작은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작은 고사리 같은 손에 쥐어든 휴지를 내 손에 말없이 건네주었다.


언제부터 내 모습을 지켜보았던 것일까.

절에서 지내면서 가장 의지가 되었던 사람이 바로 행자님이었다.

나의 소중한 벗이자 작은 스승이었던 행자님….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급히 화장실로 도망치듯 달아나버렸다.

고마움에 대한 벅찬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렇게 한참 눈물을 쏟아내고 20여분이 지났을까.

몇 번의 숨을 고르고 진정시킨 후에야 화장실을 나왔다.


법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한참 동안 나를 위해 기다렸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키다리 아저씨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두 손을 모은 채 작은 어깨너머 가장 넓은 가슴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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