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도 배우지 않는 날이 없었다

33살 직장인, 회사 말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by 신민정

# 경전을 30 회독하고 보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무작정 읽었다.

꼼꼼하게 읽는다고 읽었는데 10 회독을 해도 처음 보는 내용들이 나왔다.

어떨 때는 너무 읽기가 싫었고 지루했다.

책 한 장 넘기기가 만만치 않았던 날도 있었다.

108 회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까마득해서 숨이 턱 막힐 것 같았다.


어느 순간, 그 생각을 내려놓았다.

그저 내가 하는 데까지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처음엔 두 시간 가부좌로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고 집중이 흐트러지기 일쑤였다.

경전을 읽는 이 시간이 매우 길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 경전을 읽은 지 70 여일쯤 되었던가.

지겹게만 느껴졌던 경전이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경전에 쓰인 그 비유가 무엇을 말하는지 그 뜻에 다다르자 깜깜한 동굴에 환한 빛이 들어선 것 같았다.

눈앞을 가리던 자욱하던 안개가 깨끗하게 걷힌 기분이었다.


20 회독을 하고 나니 희미했던 것들이 점점 또렷해져 갔다.

바른 이치와 진리의 말씀에 다다른 듯한 황홀감과 환희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으로 찾아왔다.


그때서야 알았다.

모르는 것들도 의심 없이,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때가 되니 열린다는 것을.


예전의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내가 못하는 것, 하기 싫은 것은 무조건 거부했다.

‘나는 이런 거에 소질 없어. 난 이런 게 안 맞아.’ 하고 그렇게 나의 가능성을 제약하고 제한했다.


그러나 반복을 이기는 힘은 없었다.

아무리 생소하고 어려운 것, 내가 도저히 해내기 어려운 것들도 반복하다 보니 점차 내 안에 스며들었다.

저절로 얻게 되는 순간이 온다.


반야심경을 외우려 한 적도 없는데 지금은 입에서 줄줄 나온다.

전혀 이해가지 않던 책의 내용도 섬광처럼 번득이며 가슴에 닿는 순간을 맞이한다.


조바심만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해낼 지라면 무엇이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반복의 위대한 힘을 경험함으로써 배우게 됐다.

경전 30 회독을 하며 얻게 된 소중한 결실이다.




# 세상의 소리를 닫고 마음의 소리에

문을 여니 비로소 알게 된 것들


전화, 인터넷, SNS를 거의 끊고 살았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들과 멀리하며 지냈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단순한 활동만을 허용하다 보니 내 눈 앞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두게 된다.


지금 내 안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눈 앞에 펼쳐지는 햇살과 화분에 예쁘게 피어난 꽃, 오늘 만나는 인연에만 신경 쓰고 살았다.


그 전엔 누군가와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무심히 흘려보낸 시간들이 많았다.

손 안에든 기계 장치 따위가 뭐라고 내 앞의 인연보다 먼저였다. 서로를 놓치고 살았다.

음악을 들을 땐 음악에 취할 줄 알아야 하고 책을 볼 땐 책에 두 눈과 마음이 가 있어야 하는데 노래를 들으며 책을 보고, 밥을 먹으며 인터넷을 했다.

한 순간도 온전히 그것과 나누지 못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절에 있으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현재에 존재하면 존재할수록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지금 이대로 온전하고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다.


행복을 무엇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그것은 애써 무언가를 채워 넣은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많이 성취하고, 부를 얻고, 명예를 얻는 것이 순간적인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이것이 완전한 행복일 순 없었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에서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감상하는 능력, 현재를 살아가는 힘에 있지 않나 싶다.

지금 내 마음속에 움트고 있는 감정과 느낌을 온전히 알아차리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제대로 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지 않을까.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따로 내게 무언가를 해 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지극히 보낼 수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아끼는 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 단 하루도 배우지 않는 날이 없었다


50,000

21,540

1,000

109


절한 횟수 50,000배,

경전 30 회독 21,540 페이지,

수행 1,000시간,

절에서 지낸 일수 109일.


현실이 지옥 같아서, 불구덩이 속에서 허우적 대는 나를 살리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 절이었다.

들어오기 전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절을 할 거라고, 이렇게나 수없이 경전을 읽고, 오랜 수행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을.


무엇이 나를 이토록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인지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뿐이었다.

아무런 계획은 없었다.

전화와 인터넷, 외부 출입을 잠시 뒤로 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것 말고는.


단지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보냈을 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몸과 마음은 건강해졌다.

반복의 위대한 힘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내가 만나는 인연이나 사건, 상황들이 ‘모두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삶의 고통이나 아픔은 상대나 상황 탓이 아닌 내 ‘생각’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잘못된 허상의 껍질을 벗어던지니 한없이 자유로웠다.

그토록 나를 조여오던 감옥에서 탈출했다고나 할까.


내 눈앞의 모든 인연이 내 스승이었고 위대한 가르침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내가 잘한 일이라면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줄 알았고 매일같이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직 오지 않은 행복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려한다.


천국도, 지옥도 다름 아닌 이곳에 있다.

바로 여기, 내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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