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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린 산천어 Jul 18. 2023

인, 사랑이라는 이름의 엔진(3)

군자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


영화 '트랜스포머'




이인 7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허물은 무리에 따라 제각각이니, 그 무리의 허물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인한 지 인하지 않은지 알 수 있다.”

위령공 9, 

子貢 問爲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

자공이 인을 행하는 것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인(제작자)이 자기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연장을 예리하게 해야 하니, 어떤 나라에 살든 그 나라의 대부 중에 현명한 자를 섬기며, 그 나라의 선비 중에 인자를 벗 삼아야 하네.” 

안연 24

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증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자신의 인을 돕는다.”  


 군자는 서로서로, 소인은 끼리끼리 뭉치는 법입니다. 1919년 3월 1일, 1945년 8월 15일에 뭇 독립지사와 애국지사가 거리에서 모여 휘두르던 태극기와 매년 삼일절, 광복절마다 줄곧 나와 소음공해를 일으키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폭주족의 태극기는 결코 같은 가치를 갖지 않습니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때, 장소, 상황에 따라 전해지는 뜻이 하늘과 땅차이로 벌어지곤 합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집단(, 무리)은 때, 장소, 상황에 얽매입니다. 당장 우리는 늘 같은 시간에 회사에 출근하며, 늘 같은 장소에서 일하고, 늘 같은 상황에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그 순간마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는 같은 소속, 집단이 됩니다.


 집단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집단에 속하냐에 따라 나아가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도 미루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서로에게 마치 목수의 망치와도 같습니다. 집단은 개인에게, 개인은 집단에게 도덕이라는 작품을 빚는 도구가 됩니다. 어진 사람은 둘 중 하나입니다. 옆에서 악을 들이밀어도 덕을 잃지 않는 굳은 정신력의 소유자이거나, 나에게 선을 권하고 인을 도울 사람들로 곁을 미리 꾸며놓거나. 그렇기에 군자는 인을 돕기 위해 사람 간의 소통의 창구인 글과 말(文, 문)로서 벗을 모으고 집단을 꾸립니다.




옹야 24

 宰我問曰 仁者 雖告之曰 井有仁焉 其從之也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 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재아가 여쭈었다. “어진 사람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우물에 사람이 빠졌다.’고 말해주면, 빠진 사람을 살리고자 하여 우물로 따라 들어가겠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그렇게 하겠는가? 군자는 우물까지 가게 할 수는 있으나 빠지게 할 수는 없으며, 이치에 맞는 말로 속일 수는 있으나 터무니없는 말로 속일 수는 없네.”


 인은 사람에게서 슬기를 빼앗고 어리석게 만드는 사랑이 아닙니다. 어진 사람도 사기꾼에게 속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어찌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잘못은 사기꾼에게 있지 어진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아주 약삭빠른 말로 사람을 홀린다면 어진 사람이던 어질지 않은 사람이던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엔진은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을 제공하지만 방향과 속력은 운전대와 액셀에 의해 결정됩니다. 급발진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엔진이 어떻게 스스로 자동차를 벼랑 끝으로 떨어뜨릴 수 있겠어요? 군자는 도로와 가드레일을 구분하지 못할 지혜가 없지 않을뿐더러 설령 실수로 사고가 났다고 엔진 탓을 하지 않습니다.




헌문 7 

子曰 君子而不仁者 有矣夫 未有小人而仁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로서 어질지 못할 수는 있지만, 소인이면서 어진 사람은 없다.”  


 군자는 본디 지배층, 소인은 피지배층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칫 "우리는 군자라서 가끔은 못날 수 있지만, 아랫것들은 잘난 구석 없이 못나기만 하네"같은 건방진 고대 귀족의 한마디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자가 정의하는 도덕에서 군자는 '군자이기에 군자'가 아닌 '군자답기에 군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구절은 꼭 군자라 할지라도 인에게 있어서 완전하지 않으며, 소인이 뜻밖으로 선하게 굴더라고 꼭 인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습니다.


 군자는 인에 한결같지만 소인은 들쭉날쭉합니다. 군자는 인을 편안한 집처럼 생각하고 꼭 사랑하지만, 소인은 인을 거추장스러운 울타리라고 생각해 제멋대로 사랑합니다. 군자는 집에서 늘 있다가 어쩌다 삐져나올 수 있지만, 소인은 바깥에서 뛰놀다 소나기를 피하러 지붕이 있는 곳으로 어찌어찌 들어올 뿐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고,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습니다. 군자는 인에 항성(恒性, 언제나 변하지 않음)을 띄지만 소인은 불인에 타성(惰性, 오랫동안 게으르게 굳어짐)을 띄니 주객이 서로 다릅니다.




위령공 8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뜻이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지 않고, 몸을 죽여가며 인을 이룬다.” 


 사랑이란 '죽기보다 싫은 것'을 늘려가는 과정입니다. 나라를 몸 바쳐 지킨 군인, 불길로부터 사람을 구하고 죽은 소방관, 자식을 키우기 위해 건강을 돌보지 않은 부모님도 제 몸이 소중하지 않아서 죽기를 바란게 아닙니다. 살기 위해 나 자신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죽기보다 싫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죽기보다 싫은 것이 하나씩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삶에서 없어진다면 삶을 이어나갈 의미가 없어지는 무언가, 무언가를 위해서는 목숨 바쳐 무엇이든 해내리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무언가에 대한 사랑을 가족, 친구, 나라, 세상으로 넓혀나갑니다. 그리고 삶을 구차하게 이어나가기보다는 몸을 죽여 인을 이룹니다.




양화 6 ☆

子張 問仁於孔子 孔子曰 能行五者於天下 爲仁矣 請問之 曰 恭寬信敏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자장이 공자에게 인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으면 인이라 하네.” 자장이 그 내용을 여쭙자, 말씀하셨다. “공손함(恭), 너그러움(寬), 믿음(信), 재빠름(敏), 베풂(惠)이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민심을 얻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의지하고, 재빠르면 공이 있고, 베풀면 사람을 부릴 수 있네.”  


 몸가짐과 말을 삼가고 조심스럽게 하면 공손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남을 공손하게 대하면 먼저 상대를 업신여기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니, 상대도 무턱대고 나를 막대할 수 없습니다. 나의 상대에 대한 존중은 곧 상대의 나에 대한 존중으로 돌아옵니다. 운전을 할 때 제잘못임에도 대뜸 창문을 내리며 팔뚝에 문신을 내보이는 사람은 대접받기는커녕 홀대받기 마련입니다.


 작은 잘못은 눈감고 넘어가며 쌀쌀맞게 대하지 않는다면 너그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그러운 사람은 통이 큰 사람입니다. 너그러움은 사람의 마음을 삽니다. 역시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으로 되돌아옵니다. 어진 사람은 남에게 너무한 잣대를 들이밀며 꼭 지켜라 강요하지 않습니다. 급한 차가 끼어들 틈새를 벌어주고 비상등으로 감사인사를 받는 운전자입니다. 나 자신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에 한 사람에게 모든 게 갖춰져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약속을 꼭 지키고 기대에 맞추기 위해 힘쓴다면 미덥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꼭 이룰 수 있는 말만 하고 말을 하면 꼭 이루기에 믿음과 기대에 배신하지 않습니다. 좁게는 사람과 사람의 약속부터 넓게는 사회적 약속까지 미덥게 하기에 남이 기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무사고 딱지가 붙어있는 택시를 타면 괜스레 마음이 놓이는 것은 미덥기 때문입니다.


 공손한 마음가짐을 늘 지니고 있으며, 너그럽게 행동하고, 미덥게 말하더라도 꼭 재빠르게 움직여 실천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 공손한 표정을 하며 속으로는 버릇없는 생각을 하고, 남이 아니라 나에게만 너그럽고, 나에게만 이익인 약속과 내가 바라는 것만 남이 이뤄주기를 바란다면 인이 아닙니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남에게도 베풀어야 합니다. 베풂을 실천하는 것이 곧 인입니다. 운전면허 장내기능시험에서, 출발신호가 울리고 재빠르게 자동차 앞바퀴를 출발 확인선에 넘기지 못하면 실격처리입니다. 실제 도로 위는 상설 서킷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도로주행시험도 실격입니다.




향당 12, 

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마구간이 불탔는데, 공자께서 조정에서 물러나와 물으셨다. “사람이 다쳤느냐?” 그리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맹자 양혜왕 상 17 

仲尼曰 始作俑者其無後乎 爲其象人而用之也 如之何其使斯民飢而死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처음으로 순장(殉葬)할 때 사용하는 나무 인형인 용(俑)을 만든 자는 그 후손이 없을 것이다.’ 하셨으니, 이는 사람을 본떠서 장례에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백성으로 하여금 굶주려 죽게 한단 말입니까? ” 


 교통사고라도 나면 삼대가 종신 노예 계약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싼 외제차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동차의 가격이 몇억, 몇십억을 호가하더라도 사람 한 명의 목숨보다는 쌉니다. 공자가 살던 시대의 말은 단순한 자동차와 같은 탈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이 이끄는 전쟁용 수레의 개수로 나라의 규모를 정할 정도로 귀한 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불난 마구간에 가서 말이 아닌 사람이 다쳤는지 묻습니다. 사람이 말을 기르는 이유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위해 말을 기르는 것이지 말을 위해 사람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의 목숨이 사람의 목숨보다 귀할 수 없고 귀해서도 안 됩니다. 


 또 장례는 사람의 죽음을 배웅하는 일인데, 이미 죽은 사람에게 마음을 보이고자 산사람을 함께 묻겠다는 건 사랑으로 사랑을 앗아가는 짓입니다. 비록 사람대신 사람을 닮은 인형을 대신 묻겠다 해도 얼마나 꺼림칙한 일인가요? 어떠한 논리로 묻고 파낼 수 있는 여지조차 주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사람을 이롭게 하고, 사랑해야 인입니다. 어떠한 까닭이 있더라도 사람보다 먼저인 게 있을 수 없고, 사람을 해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죽여서 인을 이룬다면 말뿐이더라도 말이라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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