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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un 07. 2020

6살 아이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놀이 친구니까.

FEAT. 같이 놀고 싶은 아이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몇 달전 한 유치원 엄마가 쓴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아이가 다른 유치원에 전학을 갔는데 아이가 이전의 유치원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한다. 이런 편지를 보내 미안하지만 혹시 같이 놀 수 있는 아이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손으로 쓴 편지였고 마지막에는 전화번호와 함께 이런 편지를 받고 불쾌하였다면 미안하다는 짧은 멘트가 있었다. 이 편지를 쓰기 위해 꽤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런 편지를 쓴 것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절절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사정이 있어 연락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아이가 멋진 놀이친구를 찾았기를 바랐다.




시대가 변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는 거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일회용 기저귀와 물티슈와 자동건조기가 있었으니까. 수도꼭지를 틀면 뜨거운 물이 콸콸 나왔으니까. 아이가 먹을 거 입힐 거 마련하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새벽이면 문 앞에 도착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보내주는 장난감만 해도 서랍장을 가득 채운다. 찬장에는 아이가 먹을 온갖 사탕과 젤리가 가득 차있다. 아이가 원할 때마다 유튜브를 볼 수 있는 태블릿 피씨와 핸드폰, 컴퓨터가 집 안 이곳저곳에 널려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로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6살 아이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놀이친구다.


나는 외동딸을 키우고 있고, 맞벌이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아이를 키우며 가장 어렵게 느끼는 것은 아이가 놀이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 놀이친구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 우선 내 주변 친구 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기적적으로 이 조건들을 충족한다고 할지라도  거리가 너무 멀거나,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최근까지 함께 자주 놀던 어린이집 친구 하나는 둘째가 태어난 이후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아이의 유치원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부킹을 한다. 나는 동네 키즈카페와 놀이터에서 만난 다른 아이들에게 우리 같이 놀자고 이야기를 한다.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성공률은 40% 정도 되는 거 같다. 이렇게라도 놀이 친구를 만나면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한번 부킹이 성사한 이상 나는 아이들이 놀다가 살짝 흰자를 보이며 탈진할 때까지 놀아준다. 이렇게 한번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가서 샤워를 시키면 아이는 유튜브 같은 것을 찾지 않는다. 아이는 혼자서 레고로 동물원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며 노는 얌전한 아이가 된다. 나와 아이 모두가 서로의 영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목욕까지 완벽하게 끝난 아이가 얌전히 그림을 그리는 옆에서 읽는 책은 척추가 저릿할 정도로 맛있다.


어제는 날이 더웠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자주 가던 키즈카페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2~3명 모아서 놀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술래잡기', '도둑과 경찰' 놀이를 했다. 아이와 1:1로 놀아주는 것은 어렵지만 4:1, 5:1이 되면 별로 어렵지 않다. 나는 양 떼를 모는 양치기처럼 아이들이 쉬지 않고 달리면서 깔깔대도록 만들 수 있다. 모든 놀이는 무한 질주 버전으로 진행된다.

 

때때로 어떤 아이가 다리를 비비 꼬며 벽에 붙어 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놀이가 재미있어 가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타임"을 외치고 아이에게 화장실에 갔다 와도 놀이는 멈추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아이는 조르르 달려가서 볼일을 보고 와서 다시 놀이에 합류한다. 그럴 때면 내가 좀 핫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몇 명 모아서 놀이를 하고 있으면 넉살 좋은 아이들은 와서 같이 놀아도 되는지 물어본다. 나는 "당연하지. 어서 와"라고 이야기한다. 낯을 가리는 아이들은 멀찍이서 구경을 하고 있는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이리 와서 같이 놀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도 조르르 달려와서 같이 논다. 아이들이 서로 친해지는 시간은 경이로울 정도다. 36살 남자가 6살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Yes"다. 싸구려 슬러쉬를 먹으며 우리는 다 함께 뛰어 논다. 마법 같은 순간이다.

 

그러나 키즈카페에서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지불된 시간이 종료되고 엄마 아빠가 부르면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때때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내게로 와서 같이 놀아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그럴 때면 나는 "천만에요. 아이가 참 착하네요."라고 이야기한다.

 



노란색 옷을 입은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멀찍이서 우리가 놀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이리 와서 같이 놀자."라고 이야기했을 때 아이의 온몸이 기쁨으로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는 깡충깡충 뛰면서 놀이의 무리 속으로 들어왔다. 물론 나도 기쁨을 느꼈다. 고작 "같이 놀자"는 말을 함으로써 누군가에게 이 정도의 기쁨을 주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그때 우리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한 질주 버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란 옷의 아이가 전혀 놀이의 룰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의 아이들이 룰을 설명해 주어도 소용없었다. 6~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훨씬 더 어린아이들도 이해하는 룰 - 술레가 뒤돌아보면 움직이면 안 된다는 룰을 이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상관은 없었다. 아이는 계속 즐거워하며 뛰어다녔고 놀이에 깍두기 한두 명이 낀다고 해서 재미가 반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란 옷을 입은 아이가 합류하고 20분쯤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거칠게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공풀에 아이를 넣더니 옆에 앉아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아이는 움직이는 화면에 공을 던지며 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의 온몸에 넘쳐나던 기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나는 왜 아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그날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놀이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 아빠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리 착하게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워낙 위험한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CCTV가 40개는 설치되어 있을 그 키즈카페에서 아이를 마음껏 뛰어놀게 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이 아이는 어디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어디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배울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노란 옷을 입은 아이의 아빠가 너무도 적대적이었으므로 나는 감히 그 아이에게 같이 놀자는 말을 다시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놀이친구는 다른 방법으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FEAT. 놀이친구 찾아요.
 6~8살의 놀이친구 찾습니다. 경기도 안양에 살고 있어요. 매주 토/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키즈카페나 공원/ 놀이터에서 무한질주 놀이를 하려고 합니다. 키즈카페 입장료 외 당연히 별도 비용은 없고요. 마음 편히 오셔서 아이 노는 모습 보시다가 돌아가시면 돼요. 아이가 노는 동안 책 보시거나 글 쓰셔도 됩니다. 밴드를 하나 만들어서 운영할 생각이고요. 언제든지 메일 주세요.

sandcocktail@gmail.com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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