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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ul 11. 2019

점심시간에 글을 쓰면 좋은 것들

부서 인원이 줄었다. 덕분에 나는 혼밥을 하고 글을 쓴다. 호사스럽다.

1타임 점심시간은 11시 15분에 시작된다. 시간이 되면 나는 6층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는데 15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5층 대회의실 의자에 누워 10분 정도 눈을 붙인다. 그리고 남은 30분 동안 글을 쓴다. 그러면 55분이 지난다. 그리고 남은 5분 동안 양치를 하고 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으면 딱 한 시간이다. 그러면 내 옆의 2타임 식사 직원이 식사를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고 교대가 완료된다.


이 알찬 점심시간이 내 하루의 낙이다. 작년에는 이런 호사가 허락되지 않았다. 올해부터 이런 점심시간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직원 감축 때문이다. 작년까지 5명이었던 우리 부서 인원이 3명으로 줄었다. 작년에는 2~3명이 함께 밥을 먹고 회사 앞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고 변변찮은 잡담이나 하다가 사무실로 들어오면 그냥 점심시간이 끝나버렸던 것이다. 이제는 인원이 없어서 혼자 밥을 먹어야 하고 그 덕분에 점심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인원이 보충될 리도 없으니 앞으로 이 호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불이 꺼진 거대한 대회의실에서 나는 다른 사람을 흉보는 글을 쓰거나, 제 멋에 겨워 지껄여대는 에세이를 쓰거나, 재테크에 대한 글을 쓴다. 30분이라는 시간은 무언가 완성도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자유롭고 즐겁다. 점심시간에는 시간제한이 있으므로 문장이나 띄어쓰기, 멋들어진 표현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더 경쾌하게 키보드를 두드려 댈 수 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쓸 때면 피아노라도 치는 기분이다.

나는 이곳에서 카누를 마시며 글을 쓴다. 종이컵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은 사무실에 내려갔다 다시 나오지 못할까 봐 컵을 가지러 사무실에 돌아갈 수 없었다.

예전에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렇다. 나도 할 엘로드의 책을 읽었었다. 세 달 정도 새벽에 글을 썼는데 한번 중간에 흐름이 끊길 때마다 다시 그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술자리 한번, 야근 한번, 몸살 한 번이면 가까스로 만들어낸 새벽 글쓰기 루틴은 한방에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것 - 그것이 내게 죄책감이고 스스로를 평가절하하게 하는 요소였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지 못했으므로 글을 쓰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고, 가까스로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면서도 왜 나는 좀체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며, 잠에서 깨는 것 하나를 의지를 가지고 하지 못하는지에 대하여 나를 책망하는 글을 쓰면서 시간을 낭비하곤 했다. 글을 쓰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특히 전날 운동을 격하게 한 날이면 더욱 그러했다. 새벽에 일어날 때마다 조각조각 나있는 몸을 한 조각 한 조각 끼워 맞추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 틈새로 커피를 콸콸 쏟아부어야 겨우 키보드를 건드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까스로 글을 쓰는 중에도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깬 아이가 내 무릎으로 기어올라 잠드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고양이처럼 귀여웠지만 아이를 안은채 키보드를 두드릴 수 없었다. 다시 침대에 데려다 놓아도 귀신처럼 알고 다시 깨어 내 무릎으로 기어올라와 잠들었다. 


점심에 글을 쓰는 일상을 만드는 것은 그보다 훨씬 쉽다. 새벽에 잠에서 깨기 위해 발버둥 칠 필요도 없고, 새벽에 깨지 못했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아이가 듣고 깰까 봐 조심조심 커피 물을 끓일 필요도 없다. 그냥 내려가서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르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한 다음 글을 쓰면 된다. 쓰고 싶은 내용을 휘갈겨 놓은 수첩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훨씬 더 쉽게 글쓰기 일상과 루틴을 만들 수 있다. 중간에 이러한 일상이 깨지더라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다음날부터 바로 다시 글쓰기 일상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점심시간에 글쓰기의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업무시간 잡생각 찬스다. 나는 대체로 1시부터 3시까지 데이터 작업을 많이 한다. 방대한 작업이지만 눈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하므로 작업을 하면서도 딴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점심시간에 즐겁게 글을 쓴 날이면 굳이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점심시간에 쓰다가 접어둔 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멍하니 데이터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꽤 자주 내가 쓰고 있는 주제에 대해 꽤 괜찮은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곤 한다. 마치 산책을 하거나, 운전을 하면서 좋은 영감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업무 중 잡생각은 산책이나 운동과 다르게 바로 그 자리에서 아이디어를 기록를 할 수 있으므로 더 좋다. 나는 재빨리 업무 다이어리에 그 내용을 휘갈겨 놓는다. 내일 그곳에서 다시 즐겁게 글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잡생각 찬스에 휘갈겨 써놓은 아이디어들

덕분에 오늘 하루도 잘먹고 즐겁게 글을 썼습니다.




며칠 전에 “재테크로 부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포스팅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요즘 제 목표는 2주일에 하나씩 글을 올리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맞추기 위해 2주일 데드라인 시점에서 너무 급하게 글을 올렸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보니 글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다시 한번 손보고 재등재해보았습니다. 해당 포스트를 다시 읽어주신다면 많이 기쁠 것 같습니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B형 은행원'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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