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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r 31. 2021

헤르만 헤세 시 「행복해진다는 것」 「흰 구름」 「책」

헤르만 헤세의 시 「행복해진다는 것」 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 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라고 말이다.



삶이 고단하고 무기력해지고 힘에 겨울 때 이 시를 떠올렸다. 인생에서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그냥 그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면 좀 가벼워졌다. 때로는 그렇게 어느 순간 떠오르는 한 문장의 글귀로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행복해진다는 것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 속에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살아오면서 헤르만 헤세의 시나 짤막한 문장에 영향을 받아왔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막상 읽을 때에는 그저 그렇기도 하고 아무 때나 막 찌르르하면서 마음에 와닿는 것은 아닌데, 문득 어느 순간 갑자기 '아니, 이런 말이?!'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읽어두었다가 필요한 어느 순간에 훅 떠올리며며 내 마음에 와닿는다.



사실 책이든 영화든 어느 것이든 내 마음에 와닿는 순간이 따로 있다. 그 시간을 잘 잡아내야 한다. 특히 헤르만 헤세의 글들이 그랬다. 『데미안』도 내게는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헤르만 헤세의 글들을 모아보아야겠다.



이 책을 다시 꺼내든 것은 부록으로 '영혼의 시 100선'이 수록되어 있어서다.



흰 구름






오! 보라. 잃어버린 아름다운 노래의



나직한 멜로디처럼



구름은 다시



푸른 하늘 멀리로 떠간다.





긴 방랑의 여정에서



나그네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구름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해나 바다나 바람과 같은



하얀 것. 정처 없는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고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누이들이며 천사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떠한 책도



너에게 행복을 베풀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남모르게 너를



너 자신 속으로 돌아가게 한다.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네 자신 속에 있다.



해와 달과 별이



네가 찾던 그 빛은



네 자신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갖가지 책에서



네가 찾던 지혜가



페이지마다에서 지금 빛을 발한다.



이제는 지혜가 네 것이기 때문에.




역시나, 헤르만 헤세의 시도 이미 오래된 책 속에 함께 있었으니, 오늘에야 꺼내들며 이 책을 잠에서 깨운다.



초판발행일이 1984년 6월 20일인데, 1987년 8월 20일에 3쇄발행을 한 책이다. 책값은 3,000원. 독일어 원문과 함께 실려있는 이 책이 3년 만에 3쇄라니! 그리고 이 책의 머리말에 이런 글이 있다.


독일에서는 시인이란 이름으로 어떤 작가도 불려지고 있다. 즉, 시인(Dichter)이란 말은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이나 희곡 등 모든 문학 작품의 창작에 관계하는 사람들을 널리 포괄한 말인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서 어떤 작가든지 그 본질이 무엇보다도 "시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사실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독일 문학에서 시, 특히 서정시가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 그리고 시인이며 소설가 또는 희곡 작가인 문호로 괴테, 실러, 시토름, 마이어, 릴케, 헤세 등 대부분의 사람을 꼽을 수 있다.

(출처: 『독일명시선』 머리말 중에서)


이 책에는 독일의 명시 중 가능한 한 낭독이나 암송에 적합한 시 119편을 가려 엮었다는 것이다. 그중에 헤세의 시도 있으니 찾아보았다. 해석이 약간 다르니 이 책에서 번역된 버전으로도 올려봐야겠다.





흰 구름





오 보라, 흰 구름은 다시금



잊혀진 아름다운 노래의



희미론 멜로디와 같이



푸른 하늘 저쪽으로 흘러 간다!





기나긴 여로에서



유랑의 슬픔과 기쁨을



모두 맛보지 않은 사람은



저 구름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나는 태양이나 바다와 바람처럼



하얀 것, 정처 없는 것을 사랑하노니,



그것은 고향을 떠난 유랑인의



자매이며 천사이기 때문이다.







*헤세는 철두철미한 자유인이었다. 그는 뒷날 나찌스 정권이 들어서자 조국 독일을 버리고 스위스로 귀화하였다.









이 세상의 온갖 책도



네게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니,



하지만 책은 모르는 새에



너로 네 자신 속에 돌아가게 한다.





네 자신 속에 네가 필요로 하는 일체가 있나니



태양도 별도 그리고 달도 있나니



네가 찾던 빛은



네 자신 속에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네가 오랜 동안



만 권의 책에서 추구한 지혜는



지금 어느 페이지에서나 빛나고 있나니 -



그것은 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행복' 하면 헤르만 헤세가 먼저 떠오르기도 했고, '책' 하면 이 시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동안 짤막하게만 떠올려보았지만 이번 기회에 전문을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글 속에 녹아들어 있는 시인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특히 "시인(Dichter)이란 말은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이나 희곡 등 모든 문학 작품의 창작에 관계하는 사람들을 널리 포괄한 말인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서 어떤 작가든지 그 본질이 무엇보다도 "시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말이기도 하다."라는 설명을 보며, '아, 그래서 헤르만 헤세의 시도 많구나.' 생각해본다. 오늘은 존재의 기쁨을 누리며 3월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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