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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y 19. 2021

파블로 네루다 시 「질문의 책」

오늘 나의 눈에 들어온 시가 있다. 바로 파블로 네루다의 시 「질문의 책」이다. 세상 모든 것에 질문하는 자세로 다가가면 심심치 않겠다 생각된다. 어느 순간 그 자세를 잊어서 삶이 무미건조해졌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시는 좀 긴 편이다. 그런데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있으니, 그 질문들을 따라 읽다 보면 나도 그제야 함께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렸을 때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 내 안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같은 질문 말이다. 오늘은 이 시를 감상하고 싶다.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한 번 더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보낸다.





질문의 책



-파블로 네루다






도마뱀은 어디서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구할까





봄은 어디서 그토록 많은



잎사귀들을 얻을까





만일 노란색을 다 써 버리면



우리는 무엇으로 빵을 만들까……





오래된 재는



불 옆을 통과할 때 무슨 말을 할까





아직 흘리지 않은 눈물들은



작은 호수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눈물들은 슬픔을 향해 흘러가는



보이지 않는 강물일까





무수히 많은 흰 치아로



쌀은 누구를 보며 미소지을까





오렌지는 오렌지 나무에서 어떻게



태양을 여러 조각으로 나눌까





나는 무엇을 하려고 이 세상에 왔는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내가 마침내 나 자신을 발견한 곳은



사람들이 나를 잃어버린 곳일까





어렸을 때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 내 안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슬픔일까, 아니면 기억일까





소금은 어디서



그 투명한 모습을 얻을까





석탄은 어디서 잠들었다가



검은 얼굴로 깨어날까





만일 내가 죽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그 시간을 물어야 할까





빗속에 정지해 있는 기차보다



더 슬픈 것이 세상에 있을까





왜 숲은 눈을 기다리기 위해서만



옷을 벗을까





젖먹이 꿀벌은 언제



자신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





소나무는 언제



자신의 향을 퍼뜨리기로 결심했을까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뿌리들은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까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고



거북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딜까



비는 무슨 노래를 되풀이할까



새들은 어디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추측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진다





그동안 '질문' 하면 늘 정해져있는 질문 만을 생각하고 보았던 듯하다. 하지만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서는 답을 알 수 없는 창의적인 질문이 많이 나온다. 어쩌면 어린 시절 우리들이 궁금해했을 법한 질문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어릴 때 그런 질문을 해도 누구 하나 시원하게 답변해 주지 않는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질문조차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마음속 질문을 좀 더 꺼내들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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