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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Sep 21. 2021

무성영화의 배우가 되다

무성영화시대 스타 김연실 2편


생계를 책임진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많지 않았다. 세상을 뜬 오빠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배우가 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연실은 단성사에서 변사로 일하던 오빠의 친구 중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곰곰이 생각했다. 가장 먼저 생각난 인물이 오빠와 막역하게 지냈던 카메라맨 이필우였다. 이필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카메라맨으로 단성사에서 제작한 <장화홍련전>(1924)과 <쌍옥루>(1925) 등의 영화를 촬영한 인물이었다. 이필우를 찾아간 김연실은 배우가 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친구의 동생까지 책임지기는 난감한 일이라 생각한 이필우는 소개장을 써 줄 테니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은 영화, <아리랑>을 만든 나운규에게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이때 나운규는 <아리랑>을 제작한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을 나와 자신의 이름을 딴 나운규프로덕션을 조직해 막 독립한 상태였다. 그의 거처를 몰랐던 김연실은 오빠가 일하던 단성사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나운규의 거처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단성사에 도착한 김연실은 자신을 변사 김학근의 여동생이라고 소개하고 나운규를 만나게 해달라고 막무가내로 부탁했다. 묘령의 여인이 등장하여 극장 안팎이 소란해졌다. 단성사의 직원들은 배우가 되겠다는 김연실의 외모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소개장을 두고 가면 전해주겠다고 했다. 


금방이라도 배우가 될 것 같았으나 단성사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동생을 돌봐야 하는 김연실은 우여곡절 끝에 작은 회사에 입사하여 돈을 벌기 시작했다. 며칠 후 김연실이 일하는 곳으로 단성사 주인 박승필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나운규가 찾아왔다.


김연실은 일을 하던 중에 누군가 자기를 찾고 있다는 전갈을 받고 사무실로 불려갔다. 사무실 안에 들어섰을 때 낯선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단성사 주인 박승필과 영화배우 나운규였다. 김연실은 한쪽 구석에 쭈뼛이 서서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박승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직장 주인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김연실에게 “여기서 일하는 것은 장래성이 없으니 이 분을 따라 영화배우가 되라.”고 일러주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무료한 표정을 한 나운규는 주소를 적어 주며 내일부터 이곳으로 출근하라고 이야기하며 자리를 떴다.


다음날 마음이 설렌 김연실은 창신동의 나운규프로덕션으로 출근했다. 당시 나운규프로덕션은 꽤 규모 있는 한옥을 빌려 쓰고 있었다. 대문을 조심스레 열고 뜰 안으로 들어섰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큰 집안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김연실은 한쪽 구석에 앉아 누군가라도 나오기를 기다렸다.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방문이 조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잠에서 깬 듯 보였다.


밖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에 잠이 깬 이는 영화배우 주삼손이었다. 그는 문을 살짝 열고 묘령의 여인을 슬쩍 훔쳐봤다. 그리고서는 함께 잠을 자던 윤봉춘을 깨웠다.


“저길 봐, 예쁜 여학생이 정원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어.”


윤봉춘도 문틈으로 노래를 부르는 여인을 확인했다. 그녀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리로 좀 데리고 오게나.”


윤봉춘은 주삼손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 사이 옷을 챙겨 입은 윤봉춘은 문을 열고 짐짓 노인 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건네며 문밖으로 나왔다. 


“여학생이 새벽같이 노래를 불러서 남의 잠을 깨우다니.”


그간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느라 심심했다는 듯, 김연실은 당황한 기색 없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절 배우로 뽑아주세요.”


장난기가 동한 윤봉춘은 노래를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김연실은 마른기침을 하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고서는 영화의 주제가인 듯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고 있던 나운규프로덕션의 단원들은 김연실의 노랫소리에 문을 열고 귀를 기울였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와 탄성이 터졌다. 인상적인 신고식을 마친 김연실은 나운규프로덕션에 입사했다.


이즈음 나운규는 <잘 있거라>라는 제목의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김연실에게도 배역이 돌아갔다. 나운규는 영화를 촬영해본 적이 없는 김연실에게 연기를 가르치기 위해 영화관으로 데리고 갔다. 둘이 함께 관람한 영화는 <카츄샤>였다. 


영화를 보고 나온 후 나운규는 김연실에게 무엇을 느꼈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김연실은 카츄사가 네프류도프가 탄 기차를 보며 이별하는 장면과 카츄샤가 내쫓기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했다. 


“카츄샤가 불쌍해서 울기만 했어요.”


김연실의 마지막 말에 미소를 지으며 한동안 말없이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던 나운규는 입술을 뗐다. 


“그 영화에서 제일 미운 놈이 누구이던가?”


“술집에서 카츄샤를 농락하던 뚱뚱보가 제일 미웠어요.”


“왜 네프류도프가 밉지 않고 뚱뚱보가 밉지?”


“뚱뚱보는 돈을 가지고 농락하기 때문에 미워요.”


나운규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나운규프로덕션에 들어간 김연실은 첫 번째 영화 <잘 있거라>에서 홍련 역을 맡게 된다. 그녀의 데뷔작이었다. 


어느 빈민촌에서 지주의 네 번째 첩으로 팔려가는 장면을 연기할 때였다. 김연실은 감정에 몰입하여 촬영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그치지 않고 울었다. 나운규는 촬영을 중지시켰다. 김연실이 감정을 추스르고 나자 나운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연실이가 지금 운 것은 누구나가 다 울 수 있는 것을 울었소. 그러나 연실이가 지금 카메라 앞에서 울어야 할 것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우는가를 똑똑히 알고 목적성이 있게 울어야 하오.”


김연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어진 지주에게 농락당하는 장면을 촬영 할 때에도 나운규는 촬영을 멈췄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전에 카츄샤를 보았을 때 돈으로 카츄샤를 농락하려는 것이 제일 밉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때 느낀 그런 심정으로 대항해 보오.”


나운규와 함께 <카츄샤>를 보고 나눴던 이야기들이 뇌리를 스쳤다. 돌아보니 자신의 연기가 마치 지주에게 앙탈부리는 듯해 보였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카메라에 섰다. 김연실은 나운규의 지도 밑에서 제대로 된 배우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1927년 10월 12일 시작된 촬영은 금방 끝났다. 개봉은 11월 5일 단성사에서 이루어졌다. <잘 있거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순녀(전옥 분)는 가난한 박정송(주삼손 분)과 사랑하는 사이이다. 부호 민범식(이금룡 분)은 집세를 받으러 갔다가 황선달(박정섭 분)의 딸 순녀의 미모에 반한다. 민범식은 황선달에게 500원을 빌려주고 이를 빌미로 순녀를 첩으로 만들려 한다. 민범식의 첩 홍련(김연실 분)은 민범식이 순녀를 또 다른 첩으로 만들려는 것을 눈치채고 정송과 함께 살던 경호(나운규 분)에게 500원을 주어 황선달의 빚을 갚도록 한다. 그러나 경호는 돈을 훔쳤다는 혐의로 감옥에 간다. 시간이 흘러 감옥에서 나온 경호는 정송이 민범식의 살해범이라는 혐의로 감옥에 갔고 거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또한 민범식의 재산 관리인이던 정두현(이경선 분)이 민범식의 재산을 상속받고 순녀까지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호는 이 모든 계획을 세운 정두현을 찾아가 격투를 벌인다. 결국 경호는 정두현을 죽이지만 그 역시 정두현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


<잘 있거라>에서 김연실은 민범식의 첩 홍련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진한 인상을 남겼다. 훗날 김연실은 영화예술계에서 목숨을 걸고 성공하여 동생을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카메라 앞에 섰다고 이야기 했다. 카메라 밖에서는 고개도 변변히 들지 못하고 수줍어했지만 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부끄러움을 잊고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펼쳤다. 영화계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예상은 딱 들어맞아서 개봉 후 사람들은 “코가 달싹 들린 듯한 가운데 알 수 없는 비애와 귀염성이 흐르는” 매력을 지닌 그녀를, 그녀가 좋아하던 할리우드 배우 콜린 무어 같다고 했다.


<잘 있거라>에는 김연실보다 한 살 어린 전옥도 출연하였다. 전옥은 같은 해 <낙원을 찾는 무리들>에 출연한 직후 이 영화를 촬영했다. 실상 두 배우 모두 <잘 있거라>가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였다. <잘 있거라>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전옥은 나운규프로덕션의 다음 작품 <옥녀>에서도 주연을 맡게 되지만 김연실은 나운규프로덕션을 떠나야 했다. 김연실이 예상 외로 좋은 연기를 펼치자 단성사에서는 자신들이 관여하고 있는 영화에 그녀를 출연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김연실은 나운규프로덕션에서 단성사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당시 단성사에서는 영화를 직접 제작하지 않았지만 방계회사인 금강키네마를 통해 영화제작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낙화유수>를 흥행에 성공시킨 금강키네마에서는 다음 작품으로 서광키네마와 손잡고 <삼걸인>을 영화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영화는 단성사 변사 출신으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던 김영환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담당한 작품이었다. 주연은 금강키네마의 전작 <낙화유수>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던 이원용과 복혜숙에게 돌아갔다. 김연실 역시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아 출신인 세 명이 공장 직공으로 일하다가 부당한 해고를 당하고 걸인이 되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중 남해의 어떤 마을에 닿는다. 이곳에서 사랑을 하게 되지만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어 결국은 세 명 모두 억울하게 죽게 된다.


<삼걸인>은 검열에서 제목을 바꾸라는 지시로 인해 제목을 <세 동무>로 바꾸어 1928년 5월 6일 개봉되었다. 흥행에 성공한 <낙화유수>의 후속작이라는 점에 대한 기대도 있었겠지만 검열에서 제목을 바꾸라는 수난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관객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그 결과 이 영화의 주제가인 <세 동무>가 크게 히트했을 정도로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벼락영감의 딸 복실 역을 연기한 김연실의 인기는 더욱 높아갔다. 그녀를 연모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이즈음 잊지 못할 사건이 발생한다. 유도선수 출신으로 <낙화유수>와 <세 동무>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이원용과 함께 어울리던 김팔지라는 청년이 있었다. 양화점을 하던 그 청년은 김연실에 푹 빠져 틈만 나면 새로운 구두를 만들어 김연실에게 선물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김연실이 동생과 힘들게 사는 걸 알고 집을 구해 함께 살게 되고 이를 기회로 주변 영화인들은 김팔지와 김연실을 연결시켜주려 했다. 하지만 김연실은 이를 거절하고 김팔지의 집에서 나오게 된다.


짝사랑에 실패하게 된 김팔지는 김연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위험한 스턴트 장면들을 대신 연기하며 존재감을 보이려 애썼다. <세 동무>를 촬영하던 어느 날 2층 발코니에서 격투 중 떨어지는 장면을 대신 연기하기로 한 김팔지는 받치고 있던 포대기가 찢어지면서 그만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결국 그는 그때 얻은 사고로 인해 영화계를 떠나 평생 고생하다가 일찍 세상을 뜨고 만다.


https://www.youtube.com/watch?v=dbBfVd-CS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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