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우리에게 가장 나은 이별이래

by 연상은

이사를 하고 나서 마음이 많이 안정이 됐다. 열매와 같이 있던 집을 떠나는 건 마음 아팠지만 떠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다른 시작을 하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서는 우리를 그냥 신혼부부라고 안다.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열매를 나비동산에 데려다주고 나서 우리에게 나비는 특별해졌다. 어디선가 흰나비는 그리운 사람이 영혼으로 나타나는 거라는데 신기하게 흰나비가 눈에 자주 띄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는 꽃들이 많아서 그 주변에 항상 나비들이 있다. 열매가 곁에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열매를 보내고 나서 신을 많이 원망했다. 소원을 이뤄주는 게 신은 아니지만 임신하고 매일매일 성모상 앞에 가서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게 해달라고 그랬는데. 우리 산책 코스의 마지막은 늘 성당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하다니 참 너무하다 싶었다. 난 모든 일에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근데 이건 아니지. 심오한 뜻이 있을 리 없고 있어도 이런 방법으론 안되지. 자식을 건드리는 건 그 어떤 것이라도 안되지... 성당에 가면 아픈 기억들이 살아나서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열매를 보내고 나는 맨날 울었다. 일이 없는 날은 그저 혼자 집에서 열매 사진을 보거나 열매 생각을 하며 맨날 맨날 울었다. 빨리 다시 만나고 싶은데 또 상처를 받기는 싫으니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오는 아기가 꼭 열매여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우선 열매를 다시 만나야 될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소파에 혼자 앉아있는데 문득 몇 년 전 재미로 본 사주가 떠올랐다. 그때 분명 내게 23년에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었는데... 애를 낳고 후회하면서 다시 찾아오지 말라했었는데. 근데 사주 하나 때문에 임신 계획을 미룰 수는 없었다. 결국 그 사람 말대로 되어버렸네. 통화를 하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하고 나니 ”내가 23년은 안된다고 했을 텐데... 너무 안 좋은데... “

“네.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되었어요.”

“종교 있어요?”

“천주교였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절두산이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 터가 좋으니 가서 연미사 드리세요. 그럼 아기도 엄마도 아빠도 편해질 거야. “

그때까지만 해도 갈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어서 “힘들죠. 근데 이 이별이 그나마 가장 나은 이별이었어. 같이 살았으면 더 힘든 이별을 했을 거야. “


가장 나은 이별. 신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우리 아기도, 우리도 더는 힘들지 말라고 여기까지 인연을 정해주셨나 보다. 사주로 종교로 이별을 해석한다는 게 누군가에겐 터무니없는 일이겠지만 이별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 이렇게라도 해야 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얼마 뒤 미사에 참여했다. 참... 신기하게 몇 달 만에 간 그날 하필 말씀이 어린 딸이 죽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소녀는 결국 살았지만. 그리고 미사 맨 마지막에는 ‘가서 열매를 맺어라.’라는 문장이 가슴을 울렸다.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우리에겐 특별하니까. 오랜만에 간 미사에서 우리 이야기가 나오니까...


절에 가서 영가등도 달았다. 열매만 잘 있게 해 준다면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이별을 하니 점점 집착이 사라졌다. 다시 오는 아기가 꼭 열매가 아니더라도 열매 동생이라도, 열매랑 연결되어 있는 아기니 그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힘일까. 이제야 아기를 다시 만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뉴욕에 가서까지 초를 켜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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