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슬픈 글만 써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백 편을 써도 슬픈 마음만 쓸 수 있을 만큼 너무 괴로운 시간이었어요. 쓰면서도 아팠습니다. 오늘부터는 사랑이를 만나게 되는 내용입니다.
하루빨리 아기를 가지고 싶다가도 문득 심해처럼 어두운 불안함이 올라오기도 하고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내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봐야지. 드디어 아팠던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새해가 되자마자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다. 첫째 아기가 그렇게 됐다고 말하자 부검을 안 했냐고 물으신다. 사인을 정확히 알려면 했어야 한다고. 부검... 을 했어야 했나. 병원에서 물어보긴 했나.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할 거냐고 물어봤어도 안 했을 것 같다. 태어나서 힘들었는데 더 아프게 할 순 없지... 다음 아기를 만나는데 조금 도움이 될 순 있겠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곱게 예쁜 모습으로 놀고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런 마음이라고, 빨리 임신을 하고 싶다고 말하니 최소한 10개월은 쉬어야 한다고 하신다. 너무 먼 시간이라 힘들다고 하니 사실 그것도 빠른 거라며 무리하지 말라고 하신다. 임신이 목표가 아니라 건강한 아기를 만나길 원한다면 충분히 쉬라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마음이 급할 때 서둘러서 일을 종종 그르치는 난데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리고 새해가 되었다. 23년은 열매의 임신부터 출산, 이별로 꽉 차있었는데 24년은 우리 부부에게 어떤 한 해가 될까. 아주 편한 마음으로 다시 임신을 할 수 있는 열 달을 기다렸다. 해외를 많이 다녔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도 아기나 유모차만 보면 마음이 내려앉고는 했다. 남편이 회사에 가고 혼자 집에서 느끼는 적막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일도 빠르게 복귀했다. 방송을 이제 영영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방송 밖에 없어서... 그리고 어쨌든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그것도 좋았다. 내 방송 영상에 좋은 댓글이 달릴 때마다 ‘아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이었지.’하고 자존감도 서서히 회복했다. (내 시선에서는) 남들에게 당연해 보이는 임신과 출산이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어서 많이 위축되었을 때라 칭찬이 더 와닿았다.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계속 보는 사람들에게는 내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그러지 못했다. 아기 잘 크고 있냐며 몇 개월이냐고 물을 때마다 웃으며 몇 개월이라고 잘 크고 있다고 대답해 줬다. 그럴 때마다 가슴은 찢어졌지만...
그리고 한 여름, 난 다시 임신을 했다. 태명을 어떻게 지을까 하다가 열매 동생, 열동이로 지었다. 열매 동생일까 열매일까 궁금하다. 낳아봐야 알 것만 같다. 열매 임신 동안은 단 하나의 이벤트도 없었는데 열동이는 조금씩 긴장하게 만들었다.
7주 차에 초음파를 보러 갔는데 선생님이 ‘혹시 집안에 쌍둥이가 있나요?’ 하셨다.
‘아니요. 전혀 없는데요.. 왜요?’ 하니
‘난황이 두 개 같아서요. 아기집은 하나라 일란성쌍둥이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요.’ 하신다.
쌍둥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열매가 동생을 데리고 한 번에 왔나. 신기하다. 어떻게 될까. 다음 진료만 기다렸다.
‘아 아니네요. 분명 난황이 두 개였는데 지금은 하나예요.‘
우선 내게는 안정적인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쌍둥이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매가 동생을 데려다준 것 같다. 그래서 난황 두 개를 보여주며 자기 잘 있다고 내가 데려다주는 거라고 알려준 거 아닐까? 기특한 우리 딸.
열매의 첫 번째 기일에는 내가 임신을 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다시 온 아기가 열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다른 아기 같기도 하고 그랬나 보다.
+힘든 누군가에게 보내는 글
당장 더는 못 살 것 같아도 조금만, 정말 조금만 버티다 보면 살게 되는 날이 오긴 하더라고요. 얼른 어두운 시간이 지나가고 일상을 보내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