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하려 하지 말기

episode 1.

by 상희

첫 번째 사례, 첫 번째 회기, 첫 내담자. 그 어떤 상담자에게도 그랬듯 내게도 첫 내담자가 있었다.


나의 첫 내담자는 아주 작은 체구의 대학생이었다.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꼭 한 번쯤은 상담을 받아보고 싶었다는 그녀는 선한 인상에 옷차림이 단정했고,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 눈빛은 그대로 나를 뚫고 지나갔다. 맑은 시선 속 호기심에 순간 흠칫 놀란다. 나름 포커페이스의 달인이었던 나는 단정한 미소를 지었다.


"OO씨, 상담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셨나요?"


무사히 말했으나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랬다, 사실 여기까진 준비된 멘트였다. 나는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를 물어보는 개방형 질문으로 시작하면 좋다는 슈퍼바이저의 조언을 착실히 따랐다. 하지만 이제부턴 그 어떤 대본도 없는 실제 상황이었고, 완전히 자유 형식으로 진행해야 하는 연극에 상담자의 역할로 던져졌다. 이론만 배우고 실전 경험은 전무한 수련생이, 이렇게 상담에 던져져도 되는 걸까? 이러한 나의 내면 속 불안을 내담자가 눈치채지 못했길 바랐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들을 할 시간에 내담자에게 집중해야지!' 하는 꾸중의 목소리도 들렸다. 여러 마음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을 때, 내담자는 기다렸다는 듯 상담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제가 사실 이제 2학년이 되었는데도 학교 안에서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려워요. 동기들이랑 간단하게 대화하거나 그러는 건 괜찮은데, 친하다고 할 만한 관계는 딱히 없는 것 같아서.. "


"... 그렇군요. 어떤 점에서 친구들이랑 사귀는 게 어렵나요?"


"고등학교 때랑 달리 매일 붙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과목도 다르게 들으니까 만날 시간 자체가 적은 느낌이랄까요..? 고등학교 때는 처음엔 어색하게 지내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친해지는 것 같았는데, 대학교는 너무 다른 것 같아요."


그 말과 함께 내담자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내담자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지켜본다. 대학 내의 대인관계 어려움이 내담자에게 고민되는 지점인 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있을 때 외롭고.. 그럼에도 친구를 만드는 동기들을 보면서 소외감을 느껴요."


나만 학교에서 외로운 걸까? 하곤 화기애애하게 웃는 동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담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면서 입이 달싹거렸다. 대인관계에 고민이 많아 보이는 내담자에게 '상담자'로서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었는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어떤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Q. 아직 2학년이니까 친구 관계를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할까?

A. 그렇기엔 내담자의 어려움을 내가 그냥 단정할 순 없지. 2학년이면 친구 관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어? 없지!


Q. 그렇담 상담자도 대학 시절 때 대인관계에서 고민이 많았다고 운을 띄워보는 건? 라포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A. 그게 네 얘기지 내담자 얘기야? 상담은 내담자를 위한 시간이잖아! 라포 형성에 도움이 될 거라는 보장도 없어.


내담자에게 물을 틈도 없이 내가 다 답해버렸다. 그렇게 여러 고민들이 쏜살같이 튀어나와 답을 얻고 들어가길 어느덧, 난 그제야 내가 5초 넘게 침묵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상담에서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건 안 좋아요'

순간 슈퍼바이저의 또 다른 조언이 뇌리를 스쳤다. 급하게 말을 바꿨다.


"... 떠오르는 상황이 있나요?"


그 뒤부터 첫 회기의 50분이 지나갈 때까지 시험 보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며 질문을 하고, 답을 듣고, 다시 질문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 관계가 어땠나요?', '관계에서 보통 어떤 점이 어렵게 느껴져요?', '지금은 대학 내에서 그래도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나요?' 등등. 입은 쉬지 않았음에도 이 질문 괜히 했나? 다른 사항을 물었어야 했을까? 머릿속엔 물음표가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시계를 흘깃 봤을 때 이젠 마무리해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알았다. 마지막 멘트를 던지며 첫 회기를 그렇게 종료했다.


"그 뒤에 대해선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나눠보도록 해요. 다음 주는 언제가 편한가요?"



오답노트: 첫 회기의 상담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상담이 아니더라도, 여러분은 타인의 고민을 들어줄 때 어떻게 하는 편인가? 친구와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잔뜩 지친 표정으로 친구가 들어오더니 '요즘 나 고민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서두를 던졌다고 상상해 보자. 그럴 때 여러분이라면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


유행했던 T와 F의 논쟁처럼, 어떤 이는 질문을 쏟아내며 그 사람의 고민을 이해하고자 노력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함께 울어주며 감정을 나누고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질문을 왕창 쏟아내는 방법을 택했다. '상담자'이기 때문에, 수련생이었던 나는 내담자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야 나는 내담자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내담자는 다양한 각도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바라볼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수많은 질문을 던졌음에도 내가 던진 질문들이 그 순간에 내담자에게 도움이 됐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고등학교 친구 관계, 관계에서 느껴지는 어려운 점 등의 수없이 쏟아내는 질문들에 답하며, 관계에 어려움이 있던 내담자는 지금 이 상황이 안전하다고 느꼈을까?

따라서 나의 오답노트는 다음과 같다.


질문은 열심히 했는데... 내담자의 말을 듣기는 했니?


상담자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일까? 아니면 '경청해 주는 사람'일까?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이라는 것을 자주 잊는다. 첫 상담에서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내담자의 어려움을 꿰뚫는 '뛰어난 질문'을 생각해 내느라 지금 눈앞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뛰어난 질문자가 되고자 했기에, 당연스레 대화에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지를 잊은 채 귀를 닫았다. 내담자는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 내 앞에 앉은 것이다. 그 마음을 먼저 바라봐줘야 하며, 이를 위해선 온 힘을 다해 귀를 열어야 한다.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에 앞서는 건, 우선 그 사람과 함께 있어주는 것임을 기억하자.

나는 네가 들려줄 이야기에 아주 관심이 많고, 너의 어려움을 들어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이를 타인이 느끼기 위해선, 그 어떤 질문과 조언보다도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의 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두 귀를 먼저 사용하는 것.

두 귀를 먼저 사용하여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리고 그 뒤에 경청하며 자연스레 떠올랐던 궁금증들을 질문해 나가자.


자꾸만 질문으로 입이 달싹이는 스스로에게 되뇐다.


'그만 말하려고 하고, 제대로 듣는 것 먼저!'

'무슨 말을 하려 하지 마, 경청이 먼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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