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람들에게 이웃이란?

by 백작가

세미 디태치트인 우리 집과 벽을 같이 쓰고 있는 바로 옆 이웃은 팜 할머니와 피터 할아버지 부부. 앞 집은 데이비드와 메를린 부부, 우리집과 정원만 붙어 있는 왼쪽 집에는 존 할아버지가 산다.


길 건너 오른쪽 편에도 파란색 골프 승용차를 타는 금슬 좋은 60대 초반의 부부가 산다.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이웃인 양 반갑게 인사를 한다.


왼쪽으로 두 집 건너, 세 집 건너 이웃 아주머니도 우리 집 택배를 맡아주시는가 하면, 길에서 만나면 “이제 정착 다 하셨어요?”라고 살갑게 물어보시곤 했다.


내가 살았던 플리머스의 페버럴이란 동네는 오래 거주한 분들이 많다. 30년 정도가 평균인 듯. 팜 할머니 부부는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39년째 살고 있다. 데이비드 할아버지는 40년 됐고, 존 할아버지도 40년이 됐다.


이러다 보니 서로 결혼기념일, 생일, 출신학교 등 속속들이 모르는 게 없다. 오래도록 이웃으로 살아온 덕분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국인들은 이웃에게 관심이 많다.


하루는 정원에서 옆 집 팜 할머니를 만났다.(두 집 사이에 벽이 낮기 때문에 정원으로 나가면 서로 볼 수 있다) 할머니는 “정원에 빨래 건조대를 왜 안 쓰는 거야? 전에 살던 사람은 잘 쓰던데... 고장 났어?”라고 물어보셨다.


내가 펴지기는 하는데 고정이 안된다고 했더니 “어제 집주인 왔다 가던데 말하지 그랬어?”라고 했다. 나는 좀 놀랐다. 우리 집주인이 다녀간 걸 어떻게 알았을까. 잠깐 왔다 갔을 뿐이고 할머니와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좀 살아보니 이 곳 영국에서는 이웃에 대해 관심이 무척 많다. 기본적으로 주택가 길에 사람이 별로 안 다니기도 하지만 관심이 많으니 사소한 것까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이사 온 첫 주 내가 집을 나서려는데 앞 집 데이비드 할아버지가 인사를 하더니 우리 집 쪽으로 왔다.

영국 생활 중 도움을 많이 주신 앞 집 데이비드 할아버지. ⓒ 백작가


분리수거하는 요령과 쓰레기 수거 날짜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데이비드 할아버지는 초면인 나에게 일반 쓰레기는 매주 목요일, 재활용 쓰레기는 격주마다 목요일로 하고, 문 앞 2m쯤 쓰레기통을 내놓으면 된다며 재활용엔 어떤 것을 버릴 수 있다고 아주 자세히 알려주었다.


다음 주 목요일 아침 8시까지도 내가 쓰레기 통을 내놓지 않자, 할아버지께서 못 미더웠는지 손수 우리 집 쓰레기 통을 내놔주셨다. 옆 집에 팜 할머니는 우리가 이사 온 후 매일 정원의 빨래 건조대가 신경 쓰이셨나 보다.

영국집 야외 빨래 건조대(오른쪽). 고장나 펴지지 않던 것을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고쳐주었다. ⓒ 백작가

습기가 많은 영국 날씨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해만 나면 빨래를 밖에 말리는 데 우리가 건조대를 안 쓰는 게 눈에 거슬린 것이다. 결국 앞집 데이비드 할아버지랑 같이 와서 고쳐주셨다. 일흔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말이다.


이스터 홀리데이(부활절 휴가) 때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갔다. 코츠월드에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스티브로부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휴가에서 벌써 돌아왔냐?”라고 물었다. 휴가에서 돌아왔을 날짜가 아닌데 우리 집 현관 창문이 활짝 열려있다는 것이다.


난 깜짝 놀라서 일단 창문을 좀 밖에서라도 밀어서 닫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웃이 된 지 두 달도 채 안된 외국인에게 베푸는 다소 과도한(?) 친절에 처음엔 좀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익숙해지니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았다.


혹자는 내가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보편적인 영국 사람들은 이웃을 마치 가족이나 친척같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휴가로 집을 비울 때면 이웃에게 자기 집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나도 그런 부탁을 받은 적이 있고, 부탁을 해본 적도 있다. 낯선 땅에서 처음 생활하며 난 영국 이웃들의 도움이 참 많이 받았다. 전기세 내는 것부터 쓰레기 분리수거, 병원 가기, 공구 빌리기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그들의 도움으로 잘 생활할 수 있었다.


앞 집 데이비드 할아버지는 영국을 떠나는 날까지 도움을 줬다. 처분에 애를 먹고 있던 소파를 중고로 팔아주었다. 산더미처럼 나온 재활용쓰레기를 차로 20분 거리인 재활용쓰레기 수거장에 두 번이나 왕복하며 날라주었다. 월세 만기 날짜와 귀국하는 날짜가 안 맞아 집을 비워줘야 했을 때 이민가방으로 열개나 되는 짐을 맡아주었다.


마지막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 데이비드 할아버지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국까지 안전하게 가고, 한국 가서는 잘 지내나 궁금하니 꼭 연락줘라'라고.


서울 생활만 해온 우리 가족은 처음엔 영국 동네 이웃들의 관심과 도움이 다소 어색하고 신기했다.


서울 생활로 다시 돌아온 요즘, 친절한 영국 동네 이웃들의 미소가 가끔 그립다.

영국을 떠나올 때 아들 친구인 찰리네가 보내준 작별 카드. ⓒ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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