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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Sep 20. 2021

멍때리기

'멍때리기'도 하나의 생존 기술로 자리 잡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멍때리다' 영어로 brain fade 즉, 뇌를 희미한 상태로 놔두는 걸 말하는데, 우리는 학교 에서 뇌다 희미한 상태에 놓이는 일을 겪을 수 있었다. 책상에 앉아 수학선생님의 침 튀기는 설명을 듣고도 "너가 나와서 이 문제 풀어봐"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세상 날벼락이 떨어진 것과도 같은 충격에 휩싸인 것이 일종의 멍해지는 심리 상태이다. 이렇게 타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멍'은 멍을 때리는 게 아니라 멍해지는 느낌이라는 상당히 외부 요소에 의해 발생하는 심리 상태다.


그런 멍이 이제는 스스로 강제하는 상태에서의 관리되는 멍이 되었으니 이것을 "멍을 때렸다"라고 표현한다.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멍은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멈춰버리는 일종의 휴식시간이 되는데, 외부 충격에 의한 멍은 일순간에 수만 가지의 연산이 작용하면서 기능 과부하로 인해서 더 이상 작용하지 않고 인간의 자연 기능에 의해 잠시 멍을 때리며 뇌기능에 휴식시간을 부여하는 자연 기능이다.


자연 기능을 뛰어넘어 이제는 자의에 의한 멍을 추구하는 시대이니 새삼 참 재미있다. 나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티며 하루를 보내온 내 정신기능과 뇌세포 상태에 걱정이 앞서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제 조치로서 말이다. 이런 멍때리기는 결코 무지하고 관리능력이 상실한 사회 부적응자의 일상 탈출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중 보편적 언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 높은 영어라는 담벼락을 넘어서기 위해 투자하고 도전하지 않았는가. 사실 영어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언어 이외의 많은 수의 언어는 소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소통의 목적을 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황에 아주 적절한 높낮이의 톤과 공감능력일 것이다. 


음악은 톤과 공감능력에 있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소통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인종과 세상 오만가지의 언어가 존재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소통 가능한 것이 음악 아니겠는가. 그래서 음악은 태초부터 이어져온 생존 영역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음이라는 것은 일종의 언어가 없어도 소리로서 상대에게 내 의중을 전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의사소통 도구이다. 


그래서 그럴까. 동물 간의 소통에도 음은 존재한다. 비록 동물들은 자신이 내는 음의 영역이 인간이 표현하는 음악이라는 것을 모르더라도 그것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동물과 소통을 위한 소통의 일환이라는 건 알고 있다. 바닷속에 고래들의 음악은 긴 여정의 피곤함에서 묻어 나오는 장엄하고 긴 울림으로 남겨지고, 개들의 음악은 슬프거나 즐거움을 인간에게도 전달되는 이성이 담긴 음률이다. 이렇게 동물의 소통에 음악은 그들의 기술로 표현되고 있다.


나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나만을 위한 멍때리기가 음악을 듣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생각을 하며 듣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자신도 모르게 음률에 감정을 맡기고 그저 영혼의 방향이 닿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우리 본심이 음악을 받아들이는 기본적 자세이다. 물론 전문적이거나 음악적 취향이 깊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감상의 영역을 넘어서는 기술적 가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음률을 대하는 능력은 지극히 원초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말하는 음악은 악기에 충격이 가해져 전해지는 음파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귀를 닫고 생각을 멈추고 뇌파의 진동에만 의지해 숨 쉬는 행위 자체도 일종의 음악을 듣는 거와 같이 자신에게 연주하는 음률을 느끼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악기의 소리도 뇌가 숨 쉬는 자체 하나만으로 생각을 멈춰섯을 때도 음악은 우리의 정신을 가다듬게 한다. 이렇게 멍때리기 하나만으로도 고요한 음악으로 자신의 뇌에 휴식을 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생각의 폼을 늘리게 하는 고찰에 영향받는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Photo by@paris_shin. 한상권


"욕심을 내려놓으면 무리를 하지 않고, 무리를 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치지 않고, 건강이 돌아오면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이 밝아지면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헤민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F1 레이서 슈마허는 가속 페달 만큼이나 브레이크 밟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속도를 줄일 줄 모르면 서키트를 벗어나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적당한 위치에서 가속을 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곳에서 속도를 줄여야 한다고 한다. 속도를 줄이는 것도 이제는 멈춤의 시간으로 엔진을 식혀야 할 때다. 사람들이 살면서 힘들어 하는 이유중 하나가 자신이 감당 할 수 없는 속도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적당한 속도를 찾아야 할 때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요즘 국내에서 성활리에 마친 멍때리기 대회를 보면 재미 있기만 하다. 여행지 중에서 인기 있는 곳도 멍때리기 좋은 곳도 여럿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삶이 어느덧 태초의 뇌기능이 성숙하기 이전의 상태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시간의 소중함은 여느 때보다 다양하게 인정받고 있다. 이제는 brain fade가 수학문제를 풀지 못하고 얼어 붙은 내 심리 상태가 아닌 쉬어갈 타이밍에 적당히 쉬어어간다는 시기적절한 요구가 담긴 단어임에는 틀림 없다.


생각의 복잡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각종 전자기기와 휴대폰은 우리의 생각이 해우소라는 이름에 걸맞아야 하는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조차도 생각과 외부의 다른 존재와 대화를 이어나가게 만들고 있다. 정말 쉴세 없이 선택해야 하는 지점에서 오는 피로감은 밤낮과 장소를 가릴 것 없이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 것인가. 나는 휴식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머릿속이 생각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시스템적 압력을 이제는 줄여보길 바랄 뿐이다. 그냥 조용한 곳에 앉아 그냥 넋놓고 앉아있는 시간이 이제는 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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