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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Nov 08. 2021

액자

사진을 찍을 때, 액자에 맞춰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풍경과 그림에 따라서 액자를 맞춰 넣는 것이니 사진이라는 주인공의 자유로움을 액자의 틀에 한정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물 사진이던 풍경 사진이던 사진이 주는 감각에 따라서 액자의 형태도 맞춰질 수 있다. 다양한 액자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한때는 방황했고, 지방대생에, 사업해서 전 재산 말아먹고, 회사를 다닌다지만 수입은 그리 크지도 않고, 글을 쓰고 있지만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했다. 사람과의 관계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누군가의 기준에는 멋지게 성공하지는 못한 그저 그런 한 사람의 뒷모습만 그려진다. 그래도 한 가정을 꾸리고 주말이면 삼겹살 파티를 할 수 있는 정도의 행복은 누리고 살아가고 있다. 완벽한 성공이 없다고 한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이 행복임을 배워가고 있는 정도.


Photo by@paris_shin


그런 나를 업신 여기는 사람이 늘어났다. 성공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은 나는 대중과 소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계산적이지 못하고, 이유 없이 착해지거나 말하기보다는 들어주는 일상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럴까,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고 윤택한 외모와 언변, 특히 많은 재산이 있음을 작게나마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구분을 그어진 듯, 나를 우습게 생각하는 게 행동과 말투로 이어진다.


굉장히 기분이 상하지만 평정심을 찾아야만 하는 내가 더욱 힘들다. 가끔은 처량해지기도 하고, 축 처진 어깨에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을 볼 때도 있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좌절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소외감일 수도 있는 이 감정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이런 마음이 드는 내가 이상한 걸까. 그런 사람과 집단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면 좋겠지만, 사람을 멀리한다는 게 더 두려운 것 같다.


삶이 힘들지만 삶의 자세만큼은 변하고 싶지가 않았는데, 세상은 내가 그들의 기준과 잣대에 맞춰야 한다고 강요하는 듯하다. 나는 그저 나로 살고 싶을 뿐인데, 그거로 서로만 인정받아도 괜찮은데. 비슷한 틀 속에 나라는 객채를 압박해온다.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나를 흔들게 할지라도 나는 흔들리고 싶지도, 그리고 멈춰 서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게 쉽지가 않아 더욱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남들만큼 잘 살고 있는지 비교하게 되는 게 사람이고, 지금의 아픔이 누구나 겪고 또 이겨 나가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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