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 하나에도 상처받고 움츠러드는 내가 싫을 때가 있다. 누군가 같으면 웃어넘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지만, 나는 그게 잘 안되어 더 힘들다. 여기에서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정말 상처를 받기만 했는지 이다. 사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기만 했다는 것. 이상하게도 상처를 받기는 했지만, 상처를 줬다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말실수가 상대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면, 그저 경청 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화의 기본이 말하고 듣고 공감하는 것이라면, 관계의 확장 영역에서는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건 필수 사항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듣기만 한다는 게 정말 어렵지 않는가. 자신의 말만 하고, 상대를 이해시키려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욕심인 것 같다.
욕심이 아니더라도, 결국 나를 중심으로 펼쳐놓은 이야기는 상대의 아픔을 더 자극하기도 한다. 아픈 마음은 상처가 있어서 그렇다고. 보듬어야 하는데 압박을 가하면 아픔은 고통이 되지 않을까. 김현수 작가는 책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정작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은 안 오고, 그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만 병원에 온다”라고 말했다. 아이러니 하지만.
정작 정상적인 사람일수록 상처받을 확률은 높다. 내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기보다는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라고 시작하지만 “하지만”으로 사과의 말을 끝내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는 얘기. 미안한 건 맞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해 줘라고 하는 그런 뻔뻔한 말이다.
즉, 사과는 알고 보면 사과가 아니고, 듣는 사람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 관계에서 중심은 당연히 내가 되어야 하지만 내가 상처를 안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도 상처를 품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하지만 잘 안 된다.
아픔과 상처투성이인 사람은 일반적인 특징 하나가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심리상태는, 착하다는 것. 물론 내 생각이 옳음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통은 그런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고 믿음으로 기다리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약삽하고 때 묻은 계산뿐인 경우가 많은데, 한편으로는 마음을 쓴 만큼 기대가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오랫동안 남아 있는 상처다.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지만 유독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은 이제 만성이 되어 버린다. 어머니의 손목이 시리고 저려서 한 번 병원에 간다고 해서 회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는 더 깊숙이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런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지친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상처를 받지 않는 게 더 중요한 인생.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상처를 덜 받기 위한 세 가지가 있다.
1. 너무 많은 걸 해주려고 하지 말자. 특히 마음이 여리거나 착한 사람일수록 이 부분이 어려울 수 있다. 내가 무언가를 더 해주면 해주었지, 머릿속으로 할까 말까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없이 해주고 싶은 보호자 본능이 이에 해당한다.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2. 단호한 거절은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사람이 부탁을 들어줄 때는 자신의 한계치를 알고 적어도 감내 가능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마음의 부채도 없는데, 거절하면 왠지 죄지은 듯 하겠지만 지금의 거리를 두는 게 그나마 인간관계를 최소한이나마 유지할 수 있는 길일 수 있다.
3.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하지 말자. 우리는 가끔 내가 신경을 쓰고 도와준 사람에게 그만큼의 도움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호의적이고 내 생각만큼 나를 신경 써주지 않는다. 보통의 경우 내가 그 사람에게는 거쳐가는 하나의 징검다리일 뿐 나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착하다는 용어의 정확한 해석을 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본다면 ‘손해’를 껴안고 사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는 정성을 쏟았지만 알고 보니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거나, 모든 사건의 결말을 내 탓으로만 돌리는 그런 여린 마음이다. 물론 생각은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분명한 공통점 하나는 우리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이것 하나만이라도 벗어나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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