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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권 Oct 19. 2021

상처를 준 사람은 없다

작은 것 하나에 상처 받고 움츠러드는 내가 싫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같으면 웃어넘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지만, 나는 그게 잘 안되어 더 힘듭니다. 여기에서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정말 상처를 받기만 했는지입니다. 사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기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데요. 이상하게도 상처를 받기는 했지만, 상처를 줬다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의 잘은 말실수가 상대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면, 그저 듣기 위주로 대화를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대화의 기본은 말하고 듣고 공감하는 것이라면, 관계의 확장 영역에서는 듣어주고 이해해주는 건 필수 사항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듣기만 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자신의 말을 해야만 하고, 상대를 이해시키려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욕심인 것 같습니다. 

Photo by@paris_shin


욕심이 아니더라도, 결국 나를 중심으로 펼쳐놓은 이야기는 상대의 아픔을 더 자극하게 되기도 합니다. 아픈 마음은 상처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보듬어야 하는데, 압박을 가하면 아픔은 고통이 되겠죠. 김현수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신과 의사에게 정작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은 안 오고, 그 사람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만 병원에 온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작 정상적인 사람일수록 상처 받을 확률은 높게 됩니다. 내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기보다는 정당성을 주장하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하지만'으로 사과의 말을 끝내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는 얘깁니다. 미안한 건 맞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해줘 라고 하는 말고 똑같습니다.


 즉, 사과는 알고보면 사과가 아니고, 듣는 사람의 상처가 덧나기 시작합니다. 관계에서 중심은 당연히 내가 되어야 합니다. 다만, 내가 상처를 안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도 상처를 안고 있다는 걸 알야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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