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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카페인 5. 카페는 가야만 하고, 커피는 마셔야만 한다


 한동안 카페인을 자제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펼쳐졌다. 디카페인으로 커피를 마셔보기도 했고, 커피를 마셔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늘 그런 결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에서 카페인을 끊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가 정말로 커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서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며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카페인을 끊기로 마음먹자마자 불운하게도 약속이 있었다. 약을 처방받았는데, 카페인을 같이 마시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약을 끊었다는 친구 L과는 볼 때마다 매번 카페에서 만난다. 우리는 “이야기 좀 할까?”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커피 한 잔 마실까?” 라고 말하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걸 아주 좋아한다. 또 새로운 카페, 예쁜 카페를 찾으면 그곳을 방문해 사진 좀 찍고 SNS에 올려주어야 비로소 만남다운 만남을 끝낸 기분이 든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세상 사는 이야기 나누는 게 얼마나 행복하게요!

 “그래, 카페에 커피만 파나? 카페에도 카페인 없는 음료가 있을 거야.”

 작은 기대를 가지고 찾은 카페엔 다행히 내 생각대로 카페인 없는 음료가 있었다. 시무룩한 기분으로 내키지 않는 생딸기우유를 마시던 나는 결국 잔을 반도 비우지 못했다. L은 내 속도 모르고 자기가 시킨 커피를 냠냠 맛있게도 마시는데, 목 끝까지 “나 한 입만.” 하는 소리가 올라와서 참느라 힘들었다. 카페에서 다양한 메뉴를 시도해보았는데, 내 입에 맞는 건 홍차, 밀크티, 녹차라떼 정도로 카페인이 아예 없는 선택지는 없었다. 카페인이 없는 경우엔 너무 달아서 도저히 내가 다 마실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나 카페인 안 마시려고 하고 있는데, 카페 말고 다른 데 가면 안 되려나?”

 내 물음에 L도 의도치 않게 심각해졌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만나서 갈 곳이 카페 외에는 딱히 없었던 것이다. 카페는 어디에든 있고, 가격대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장소가 과연 존재한단 말인가? 우리는 카페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코스가 된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를 만나서, 혹은 연인을 만나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만약 괜찮다면 영화 한 편을 보거나 때에 따라 옷이나 구두를 사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을 만나 노는 것이 마치 정해진 객관식 답안지 안에서 몇 가지를 선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새로운 변수를 생각해 내더라도 ‘이색 데이트’라는 이름이 붙는 또 다른 소비의 형태로 이어졌고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었다.

 만남에서 새로운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 적어도 나는 돈을 쓰지 않고는 어떻게 친구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돈이 없을 때는 그걸 이유로 친구를 만나지 못한 적도 있었고, 약속을 일부러 잡지 않은 적도 많았다. 그런 식으로밖에 다른 사람을 만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은 상당히 실망스럽고 슬픈 일이었다.

 “우리에게 그만큼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낼 장소가 부족하고, 또 혼자서 어디에 있기에도 공간이 없는 게 아닐까?”

 나는 L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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