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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락재 Oct 24. 2021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2016년 11월, 엄마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임파선까지 전이된 3기였지요. 때마침 그 날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준비해 준 생일 케이크 앞에 선 저는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불행은 잠시도 제가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지요.

엄마의 삶은 무거웠습니다. 등단시인이자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재능많은 여인은 배다른 시동생 둘을 키워내고, 가부장적인 남편과 고집불통 자식 둘을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을 잃어버렸지요. 긴 세월 고생한 보람도 없이 아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를 쳤고, 결혼을 목전에 둔 딸은 사위의 뇌종양 발병을 전해왔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암이 찾아오지 않는 것이 되려 이상할 정도였지요.  자식들의 불행에 못 견디게 괴로워하던 엄마는 정작 본인의 병 앞에서 생각보다 담담했습니다. 그리고 암에 걸린 사람이 우리가 아닌 당신이라 다행이라고 말했지요. 가족을 위해서라면 답답하리만치 희생적인 사람, 그게 우리 엄마였습니다.


평생 고생만 한 우리 엄마가 암이라니,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했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며 어떻게든 엄마를 지키고 말겠다고 마음 먹었지요. 하지만 3개월간 휴직을 신청하고 부모님 댁으로 내려가던 날, 심장 통증으로 힘들어 하던 월리를 두고 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1시간 거리에 월리의 어머니가 계셨지만, 그는 칠순의 노모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불효는 뇌종양과 실명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지요. 차마 심장까지 나쁘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다던 월리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요.


수술 당일, 수술장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은 하염없이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저려와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지요. 험한 일이라면 이미 굳은살이 박일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검사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엄마의 암은 유방암 중에서도 공격적이기로 악명높은 놈이었지요. 그 때부터 우리는 그 놈을 박멸시키기 위한 총력전을 시작했습니다. 국내외 서적과 유튜브를 샅샅이 뒤져가며 암 치유사례를 공부하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안해본 것이 없었지요. 집안에 암환자가 생기면 온 가족이 전문가가 된다던 말처럼,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오로지 암에만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날 무렵, 엄마는 수술 부위 근처에 또다른 멍울이 만져진다고 말했습니다. 결과는 재발이었지요.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는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에 서툰 아빠가 구슬프게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엄마도 예순둘에 병을 얻고 말았다며 애달파했지요. 고민 끝에 엄마는 암환자를 위한 치료기관에 입소했습니다. 집에서는 쉽게 마음이 해이해지기 때문이라 했지만, 실은 가족들에게 더는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겠지요. 병색이 완연한 암환자들 사이에 엄마를 남겨두고 오던 길, 엄마를 사지에 두고 온 것 같아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엄마는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재발의 충격이 컸던 탓에 불안감이 극심해졌고, 암덩어리는 겨우 두세 달 만에 눈에 띄게 커졌습니다. 엄마를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저는 매일 밤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멀쩡히 직장생활을 하고 가끔은 웃기도 하는 내가 죄스러웠지요. 살아가는 것이 나를 죄인으로 만든다던 어느 노랫말이 못 견디게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제게 그런 걸 바랬을 리 없습니다. 아마도 엄마는 제가 당신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않기를, 그저 제 나이에 맞는 보통의 행복을 누리기를 바랬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가엽고 이 상황이 끔찍해서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쓸 뿐이었지요.


나희덕 시인의 '11월'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늦가을 찬바람이 마지막 잎새를 뜯어 달아나도, 나무는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감사한다고. 희미한 햇살에도 씩씩하게 상처를 널어 말리며, 형형한 눈빛으로 겨울을 맞이한다고 말입니다. 욕심없는 자연은 겨울을 불평하지도, 봄을 기다리지도 않고 주어진 계절을 묵묵히 살아간다는 의미겠지요. 그 때 엄마에게 찾아온 매서운 겨울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부질없는 두려움과 원망으로 몇 해를 흘려보냈습니다. 아직도 감사할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지요. 세상에 남겨진 자비를.


살다보면 생이 움트는 봄이 다시 돌아오겠지요. 그 또한 우주의 섭리니까요. 그 때까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눈서리가 내리면 또 그런대로, 그저 살아있다는 기쁨 하나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다음 봄에 틔워낼 새싹을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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