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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ug 18. 2017

모스크바 가는 길


“어느샌가 내 생애는  이상한 여행이 되어 있었다.” 

황동규의 시집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다. 

이상한 여행이라는 문장이 명료하게  생애를 품고 있다. 

그러게,

생각해 보건대 여행은, 

현재 내가 진행하고 있는 나의 여행을 

바라보기 좋은 건너편 자리에서 우연히 바라보는 것 아닌가,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여행은 결국 섬세해지는 시간이겠다.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볼 때처럼  가라앉고 부드러워져서 침착해지는 것,  

여행은 잠깐의 이별일 수도 있겠네.

이별이 지닌 아련한 슬픔을 체감한 뒤라면 

지리멸렬한 삶이 다시 싱그럽게 변할 수 있겠네. 

똑같은 푸르른 하늘인데도 전혀 다른 하늘처럼 바라보는 것, 

아이처럼

자 이제부터 놀라고 기뻐하고 환호하고 감동하자!

그래서 단단하기만 한 반복적인 삶에 섬세한 기운들을 가져오는 거야,.    

     

이번 러시아 여행길에는 책을 한 권도 안 가지고 갔다.  

기실은 가져가 볼까 하고 

책 속에서 만난 책 차학경.... 이란 작가 설치미술가.. 전위적 문학인의 <딕테> 

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긴 했다. 

쉽지 않은 책이 여행에서는 좋다. 

여행지에서 책을 손에 잡게 될 때는 정말 무료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중력 최고이고... 어려운 글... 이 좋다는 것, 

그런데 차학경의  책은 글이라기보다는 책 자체가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여겨졌다.  

전방위 예술가가 책으로 만든 오브제라고나 할까,

몇 군데 읽어 보았는데 무거울뿐더러 슬픔을 지나 고통의 강에서

유영하는 것처럼 여겨져 슬며시 빼고 말았다. 


그래 놓고 나중에는 정말 글자가 아쉬워서 

인터넷 되는 숙소에서  e북을 두 권 사서 읽곤 했다. 

이즈음 점점 갈해지는 정신이다.  

누군가의 부추김이 없으면 즉 누군가의 상상력이나 진득한 삶이거나 

깊은 사고력이 담긴 글 줄기를 읽지 못하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는 사막을 걷는 것 같다.  

설마 그게  정서적 메마름. 

오 혹시 늙음의 제 증상 일까?  


모스크바까지 약 9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계속 창밖은 환했다. 

6시간 차이가 난다고 하니까 겨우 세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른 셈이다. 

여섯 시간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아 저기 허공 속.... 날아가는 하늘 속에 풀어져 있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다시 들이차겠군. 

나는 이 계산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에로 플롯이란 러시아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아주 안 좋더라는 정보를 받아선지 의외로 괜찮았다. 

붉은 옷의 스튜어디스들... 은 

우리나라 스튜어디스들의 상냥함에 비하면 상대방이 열없어할 정도로 

무표정했지만 

사실 우리는 지나치게 과다한 친절 속에서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상대방을 소진시키는 서비스에 너무 익숙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조건 지어내야만 하는 미소라니... 

그녀들의 무표정함을 붉은색이 살짝 가려 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의 옷이 참으로 붉었다. 

러시아어로 붉음은 원래 러시아 고어에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그러니 붉은 광장도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뜻인데

감정 안 좋은 미국 사람들이 아름다운이란 단어를 

그냥 뜻대로 붉은 이라고 사용했을 거라고.... 했다.   

  

지루해서 영화를 한편 보려고 하는데 한국영화는커녕 

한국말로 번역된 영화도 거의 없어서 

난데없이 더빙된 만화영화 정글북을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딱 내 수준에 알맞은 유머와 스토리...

어느 때는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이봐요 당신도 모글리를 보세요. 

남편에게 말하려고 했더니 이미 쿨쿨 잠 속으로 들어가셨다.   

동물들의 대화.... 가  

실제 지금도 저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 아닌가, 

아니 아니, 아마도 그럴 거야, 라는 추론이 아니라 정말 그럴 거라는  생각.

그러니 나는 그 순간 정글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너를 사랑한다. 표트르의 창조물이여.

나는 사랑한다. 너의 엄숙하고 정연한 모습을.

네바 강의 힘찬 흐름을.

강변의 화강암 둑을.

고운 문양 새겨진 철책을.

생각에 잠긴 밤들의

투명한 어둠을. 

백야의 섬광을.

청동 기마상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의 시다.

러시아는 정말 푸시킨을 사랑하는 듯했다. 

푸시킨 박물관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푸시킨 문학관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저 시를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네바강도 보았고 

표트르 청동 기마상도 보았으며 강변의 화강암 둑을 거닐었으며

고운 문양 새겨진 철책들도 만져보았으니까,  

생각에 잠긴 밤들의 투명한 어둠과 백야의 섬광은,,,,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남겨두어야만 온전한 시일 것이다. 

시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알 수 없는 자리’ 

그것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아름답다  

‘생각에 잠긴 밤’이라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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