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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ug 29. 2017

늦은 오후 삼천계곡에서




오후 늦은 시간

혼자서는 갈 수 없지만 

둘이 서는 갈 수 있다.

북한산 삼천사에 다다른 것이 오후 다섯 시

산을 오르기보다는

물소리와 물 흐르는 것을 보고 싶었다.  

비가 많이 오면 북한산은  순식간에 물길이 많아진다. 

세차게 흐르는 계곡뿐 아니라 사람 발로 다져진 길목까지 

물은 여기저기서 솟아나 흐르기 시작한다.

비는 산의 몸을 열게 하는 키일까,

마치 마중물이라도 되듯 산에서 물이 흐른다.  

흐르는 물의 맑음을 언제나 형용키 어렵더라.

고여서 담아내고 비추어내며 흐르는 물 

그물들은 다 다른 색이지만 하나같이 맑다. 

수많은 맑음.....이다.  

세상에 너는 정말 어쩌면 그렇게 맑을 수가 있니.

물빛의 맑음을 나는 도무지 형용하기 어렵다.

과문해선지 몰라도 나는 아직 물의 형상에 대한 

적확한 표현... 마음에 와 닿는 상징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산의 북쪽이고

더군다나 골짜기라...

어두운 저녁 기운이 일찍부터 스멀거리는지

그늘이 짙다.   

그러고 보니 겨울 지나 봄부터 불어 닥친 커다란 일들 때문에

올해 들어 처음이다.

짝사랑에 애달파하던 소녀처럼 가슴 설레고

정분난 여인네처럼 숨차 하며 그에게 오르던 때가  언제인지...

잘 계셨소.

여전하시외다. 

잊지 않으셨겠지요. 

북한산과의 해후,

오랜만이라선지 

하도 공간 지각력이 결여된 사람이라선지 

그의 길이 낯설다.   

같이 간 사람과는 걸음속도가 맞질 않아

뒤 따르다가 결국은 혼자 걷게 되는데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위에 얹어 있는 작은 바위는...

동물이 입을 벌린 형상이고

저 몸통은 살짝 틀어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그 위의 커다란 돌은  아래 동물의 어미인가... 저윽이 나를 의미심장하게 지켜본다,

갑자기 등에 어리 우는 서늘한 기운.

그늘이 더 짙어졌다.  

제주도 쇠소깍 물 밑에 있던 바위와 눈이 마주친 뒤

그러니까 그 바위의 시선은 

오래된 세월이 부여해 준 존재의 기운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물속의 바위가 나를   

차가우면서도 무연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넌... 뭐니, 너니, 너구나....   

그 서늘한 기운을 감지한 뒤부터 바위에게 유심해지긴 했다. 

그러니 어제 

숲 그늘 저녁 기운과 합해지는 어둑해지는 시간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바위 앞에서

조금 무서웠다.  

너무 갑자기 어두워진다 싶어 사모바위까지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내려왔다. 

멀리 산봉우리를 물들이며 해가 저물어 가는 때

골짜기에는 어둠의 색이 입혀지기 시작한다.

나무도 바위도 작은 풀들조차 무겁고 진중해진다. 

밝고 환한 기운에 삶의 비의가  고이지 않듯이

어둠은 깊은 질문을 품고 있다.

같이 내려오는 동행에게 

아까 이 바위가 무서웠어... 하며  

그 자리에 서서 다시 바위를 바라보는데

그냥 바위였다. 

그러니 바위의 문제가 아니고 내 안의 허약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허약함은 또 얼마나 경이로운 경험인가, 

어쩌면 등산이나 여행 모든 자연을 접하는 놀이를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잠재되어 있는 

내 안의 것들을 그들만이 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 눌려서 숨도 못 쉰 채  생기를 잃어가는

나도 모르는 내 안의 것들을 

산이 숲이 나무가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알아야 안온함의 평안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두려움을 앞에 두고서야 내 안의 경건함이 고개를 들고 

두려움은 나를 신앙적으로 원숙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삼천사 절은 이미 문을 닫았다.

등산길을 가려면 절을 옆으로 지나가게 되는데

앞은 아무나 들어오게 터져 있는데

옆문은 엄숙할 정도로 굳게 잠겨있다.

저 잠근 문의 의미가 뭔가, 생각하며 내려오는데

약간 내리막길인 그곳에서

저 장면이 보였다. 


저물어 가는 붉은 해가

온 하늘을 붉게 물들여 가는데

지붕과 지붕 사이... 그

사이로 보이는 풍경風磬 

흔들리는 듯 흔들리지 않는 듯

자신의 색은 버리고

어둠의 색을 입은 채,

전혀 낯선 형상이 되어가는 풍경.


약간 줌을 빼어 찍은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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