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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07. 2018

첫걸음 First Steps

빈센트 반 고흐作 1890년.

 

                  

 작년 봄 딸아이 결혼식 순서지에 고흐의 ‘첫걸음 First Steps’을 넣었습니다.

혼자에서 둘의 삶이 시작되는 길목에 딱 어울리는 그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딸아이 ‘첫걸음’을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섬마섬마! 엄마아빠의 환성 속에서 무엇인가를 의지해 겨우겨우 서게 될 때,

차츰 섬마!가 안정되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데도 아이는 발걸음을 한발 앞으로 내밉니다.

(본능적인 전진 속에 이루어지는 성숙과 발전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든 아기들이 다하는 첫걸음인데도 저절로 탄성이 발해지는 경이로운 시간이었지요.

모든 ‘첫’은 싱싱한 삶의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습니다.

기이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실패를 품고 있음에도 말이지요.

아이의 첫걸음은 삶의 비의처럼 수많은 넘어짐의 시작이니까요.  

 고흐가 세상을 떠나던 해 완성한 작품으로 밀레의 첫걸음- 테오가 보내준 흑백사진-을 모사한 그림입니다.  

생레미에 있는 동안 그는 80여점의 작품을 그렸는데 그중에서 밀레의 모작 21점을 그렸습니다.

고흐는 램브란트와 밀레를 아주 좋아했거든요.

모든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는 평이한 문장을 기억하면서도

일견 밀레를 모작하는 고흐의 마음결에 시선이 머물기도 합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자신이 없지 않았을까,

자신이 그린 작품 속 시선이 맞나- 회의가 생기지 않았을까?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그림을 모사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제목과 모티브만 같을 뿐 그 둘은 전혀 다른 그림입니다.

평생 고흐의 힘이 되어주었던 동생 테오가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

고흐는 우리나라 벚꽃처럼 아련하게 피어나는 아몬드나무의 꽃을 그립니다.

그 후 이 ’첫걸음‘을 그리게 되죠.

그는 ’밤의 카페테라스‘를 그린 후  별을 그릴 때가 참 좋았다고 누이에게 썼습니다. 

’첫걸음‘을 그릴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평생 홀로 살아온 그의 가슴 속에는 테오의 아들, 자신의 이름을 딴 그 아이에 대한 사랑이 솟아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로  이 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외로운 삶이어서 더욱 아이에 대한 사랑이 불타올랐겠지요.

아이를 향해 팔을 벌렸지만 아직 채 아이를 안고 있지 않는 아빠를 자신으로 여겼을까요?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미래에 대한 어떤 불안도 모르는 아이를 그리며

자신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했을까요?

언제나 그의 편이었던 엄마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그린 수많은 자화상들 가운데 어머니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화상은

아주 순해 보이면서 털도 없는 미남 고흐였거든요. 


’첫걸음‘은 놀라울 만큼 따뜻한 그림입니다.

나무는 몽글거리며 신록의 세계를 지나가고 있고 밭의 작물들도 따스한 햇살아래 솟구치며 자라납니다.  

젊은 농부는 자신의 가족을 위해 애써서 일하다가 아이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이의 손을 잡고 대문을 나서고 있습니다.

아빠를 발견한 아이가 그 서툰 걸음으로 무작정 아빠를 향해 달려듭니다.

아빠는 일하던 농기구를 던져버린 채 아이를 향해 두 팔을 벌립니다.

아내는 아이가 넘어질까 봐  아이의 팔과 몸을  붙듭니다.

아빠는 달려오라고 하고 엄마는 천천히 가라고 잡습니다.

아빠는 팔을 힘껏 뻗고 기다리지만 엄마는 아이와 함께 걸어가 줄 것 같습니다.

부모는 똑같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거리가 조금 있는 아빠와 아이와 혼연일체가 되어있는 엄마....

사랑의 다른 모습을 슬며시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의 그림입니다.

작품 속 저 장면은 순간에 변화되겠지요.

아이는  아빠를 향해 걸어갈 것이고 아이는 넘어지거나 아빠 품에 안기겠지요.

그렇게 시간들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립니다.  

’첫걸음‘은 순간을 정지시켜 영원化 합니다.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도 명화입니다.

그분이 창조하신 이 세상 단하나의 명화!

고흐의 순간도 영원化 되는데 하물며 그분께서야,  


고봉으로 가득 담은 쌀밥처럼 이팝나무 꽃이 하얗게 피어납니다. 오월의 등롱입니다.  

(교계신문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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