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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05. 2018

다윗과 밧세바

.마르크 샤갈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마르크 샤갈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장맛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미술관 나들이하기에 아주 좋은 날이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고 마음이 차분해지니까 작품의 언어가 섬세하게 다가온다. 미술관 안에서 넓은 유리창으로 바라보는 비 내리는 풍경은 덤이다.  유명한 화가의 거대한 작품전시회라는 광고에 이제는 속지 않는다. 작가의 대표작들은 거의 나들이를 즐겨 하질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작만 작품이 아니다. 작가의 순수한 시절이나 무명의 시절 고뇌어린 작품들이 오히려 작가를 더욱 깊이 알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이즈음 전시회를 가보면 작품들 못지않게 큐레이터의 역량이 점점 강화되어 가는 것 같다. 주제만이 아니라 작품의 모음과 나눔, 장소의 크기와 작품의 배열 등 작품들이 사람과 만나는 순간들은 순전히 큐레이터의 몫이다. 샤갈의 전시회 역시 단순한 작품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샤갈의 인생과 그중에서도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샤갈의 놀라운 색채가 엿보이는 작품들은 드물었다. 화려한 영상물에서는 가득했지만,  한가람을 가득 채운 작품들은 회화보다 판화가 많았다. 그리고 특이하게 성서 삽화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열두지파를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해놓은 작품도 있었고 상당히 큰 태피스트리 ‘탈출’도 있었다. 유심히 본 작품은 “다윗과 밧세바”였다.  생경하게도 이번 전시회에 샤갈이 먹을 사용해 그린 작품들이 많았다. 다윗과 밧세바에도 먹을 사용했다. 전통적 수작업으로 만든 일본 종이 와시에 수채물감과 과슈 그리고 먹을 사용해서 그린 그림.

 샤갈의 특징은 역시 공간적 설정이다. 무중력상태라고나 할까. 부유하는 듯 떠다니는 사람들과 동물들 그리고 건물들은 거의 공중에 존재하거나 반듯한 모습이 아닌 옆으로나 거꾸로 서있다. 샤갈에게 있어 장소는 단순한 지구나 땅이 아니라 공간 자체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에게 있어 모든 존재는 생각이라는 무형의 공간속에서 존재하기에 거기 어디든 자리할 수 있는지도,  도록에 실린 다윗과 밧세바를 손으로 나누어서 반쪽씩 봤다.  신기하게도  다윗의 눈은 크게 떠 있지만 시각장애인의 눈처럼도 보였다.  탐욕에 눈이 먼 눈은 결국 맹목盲目을 이야기하는 거겠지,.  밧세바의 눈은 슬퍼 보였다. 저항하기 힘든 일에 대한 체념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했다.  붉은색 천사는 혹시 샤갈이 장난꾸러기 큐핏을 의도해서 그린 걸까? 다윗의 욕망과 밧세바의 고뇌가 우습다는 듯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있다. 다윗과 밧세바는 작가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이다. 다윗은 밧세바를 탐낸 후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가있는 남편인 우리야를 죽게 하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다. 대개의 작가들이 밧세바의 목욕장면이나 그를 바라보는 다윗을 그리곤 하는데  샤갈은 매우 특이하게 한 얼굴에 다윗과 밧세바의 두 얼굴을 그려냈다. 단순히 샤갈과 교류하던 피카소의 입체적 화법이라고 여겨버리기에는 뭔가 선명치 않다. 제목은 다윗과 밧세바이지만 어쩌면 다윗의 신실함과는 별의된 그의 욕망을 보여주는 내속의 타인을, 인간이 지닌 이중성과 양면성을 샤갈은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샤갈은 러시아의 유대인 정착촌 비테프스크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파리로 가서 파리의 새로운 문물과 다양한 예술 사조를 접하기도 했으나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서 그의 뮤즈인 벨라와 결혼한다. 전쟁 후 러시아를 떠나 샤갈은 프랑스, 독일, 미국 등지를 유랑하며 디아스포라로 살게 된다. 그래선지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오직 그만의 독자적 화풍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시대를 뛰어넘어 자신이 추구하는 주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창조해내면서 인간의 본질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샤갈의 스승인 레온 바크스트는 ‘색채가 노래를 부른다’고 표현했고 1950년대 교분을 나눴던 피카소는 샤갈을 <마티스 이후 색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한 화가>라고 했다.   말년의 샤갈은 성서를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했고 1973년 프랑스 니스에 그의 성서 회화만을 모은 <국립 마르크 샤갈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앙드레 말로와 함께 개관식에 참석한 샤갈은 ‘성서는 모든 시대의 시와 예술의 가장 위대한 원천이라고 말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하여 도록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다윗과 밧세바‘를 자주 들여다봤다. 기이하게도 볼 때 마다 새로운 표정이, 새로운 사람이, 어느 순간은 그 사람이 나를 보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제야 그림 아래 손의 의미가 선연히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너를 안으리, 기다리리, 어서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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