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자신을 가치 있게 대하지 못할 때가 많은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개인적 경험도 관련이 있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외모지상주의의 사회문화적 기준을 내면화한 탓도 있을 것이다. 자신뿐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방의 얼굴을 평가하며 외모나 학벌, 재력, 사회적 지위, 평판 등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사회에서는 세월의 변화 앞에 자존감을 점점 지켜내기 어려워진다.
이를테면, 남들과 다른 외모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함으로 인식하면 어느새 수치심이 자랄 수 있다. 자라면서 있는 그대로 자신이 인정받지 못했거나, 외모로 인해 심한 놀림을 당했다거나 집단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반복적인 받았던 환경에서 수치심은 고통스러운 감정 기억이 되어 우리 몸에 각인된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억압된 기억은 비슷한 상황에서 재현되며,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큰 체구의 중학생이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와서 자신을 해칠 것 같은 생각에 자신이 ‘묻지 마 살인’의 피해자가 될 것 같다며 불안해하며 진료실을 찾았다. 평소 잘 가던 장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리며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한 생활이 계속되니 일상생활은 안되었고, 전교에서 상위권인 학교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심한 아토피를 겪었던 A. 음식 알레르기로 몸에 전신반응을 일으키며 자주 응급실에 실려가며 생사에 기로에 놓였던 A는 늘 긴장한 채로 지내며 불안에 쫓기는 삶을 살았다. 부모 역시 자신의 아들이 어떻게 잘못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차 조심, 음식조심 등 조심해야 할 것을 철저히 가르쳤다. 그러는 사이 A의 내면에는 세상은 안전한 곳이 아니라, 언제라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뼛속 깊이 형성되었다. A의 대인관계는 역시 상처 받기 쉬운 안전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또래관계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오로지 공부만 하며 살아온 아니 공부밖에 할 수 없는 A는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분노란 감정을 알지 못했던 사람처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으니 또래에게 괴롭힘을 반복적으로 당하더라도 대항하지 못했고, 또래에게 무시당하고, 놀림감이 되었던 상태에서 억압된 공격적인 욕구가 커지면서 급기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살인충동으로 커지게 된 것이다. 아이의 내면에는 억압된 공격성과 분노, 무력감과 의존성, 수치심이 있었다.
그런데 A는 누군가를 때리거나 죽인다는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불안하고 초조해했다. 이런 투사적 불안은 억압된 살인적, 공격적 욕구를 상대방에게 투사시켜서 만든 증상이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남에게 있다고 던져놓으니. 상대방이 나를 해칠 것 같아 무섭기는 해도, 내 마음의 공격적 욕구는 느끼지 않아 살인충동으로 인한 심리적 죄책감은 느끼지 않게 만드는 이득이 있다. 자신의 분노를 받아들이는 것도, 분노를 어떻게 적절히 다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 자신의 분노를 왜곡된 방식으로 부정하는 투사적 불안이 강박증상을 만들어 자신을 괴롭히며 부분적으로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었다고 보였다.
공감적인 대화를 통한 감정 읽기를 비롯해서 강박증에 대한 정신치료를 통해 환자의 내면에 있었던 무력감, 분노, 수치심과 같은 감정을 느껴보며, 양가적인 공격적인 충동을 이해하고, 거기에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대안적인 해석을 해나가면서, 있는 그대로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갔다. 공격적인 충동을 완벽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두려움에 직면하기 어려워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고 자신의 삶을 다스리는 자아의 힘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과 즐거운 경험에 주목하면서 자신을 괴롭혔던 증상은 점차 좋아졌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전보다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자존감이 생기니 자신의 외모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근사하게 더 가꾸어 가려는 마음도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가진 조건을 차이가 아닌 결함으로 받아들이면 자신을 좋아하기 어렵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게 되면, 자신을 돌보는 마음을 갖기 어려워, 자기 관리의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이뤄내거나 잘하고 싶은 동기부여가 쉽게 생기지 않고. 생기더라도 현실의 힘들고 어려운 부정적 경험에서 자신의 의지를 지켜내지 못한다. 내면에 쌓인 공격적인 충동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일상이 흐트러지게 된다. 무엇을 이루려면 힘들더라도 어느 정도는 끝까지 참고 계속해야 하는데, 자신에게 떠오르는 충동에 휩쓸려, 이것저것을 하느라 자신에게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늘어나는 ‘묻지 마 폭행’이나 ‘묻지 마 살인’과 같은 잔혹한 행동도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문제와 연관이 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안하무인 격 몰상식함에는 이 역시도 타인을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공감적 에너지가 바닥이 나 자신의 공격적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나?' '내가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나?' '내가 때리면 저 사람은 아플 텐데'란 남의 입장에 서서 감정적 고려를 하지 못한다. 이 역시 자신을 제대로 좋아하지 않는 마음을 반영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대인관계에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거나 거침없는 막말로 주목받는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불리한 외적 조건이 반드시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마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있는 불리한 조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내가 가진 조건이 초라해서 자신이 무가치하다거나 사랑받을 수 없다는 믿음이야말로 우리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외모의 차이를 그저 나는 남들과 다를 뿐이라고 인정하고 남들과 다른 외모를 수용할 수 있다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르게 살아갈 방법이 열린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외적 조건이 남다르거나, 외모가 매력적이면 살아가기가 좀 더 수월해 질지 모른다. 인간은 멋지고 예쁜 사람들을 보면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존재다. 인간이란 존재는 아름다움에 끌리고, 아름다운 제품을 사고 싶어 하며,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생후 3개월에서 6개월의 아기라도 어른들이 예쁘다고 평가한 여학생의 얼굴에 더 많은 시선을 준다고 한다. 칸트는 아름다움에는 객관적 원리가 없다고 했으나 평생 아름다운 얼굴을 연구한 어느 성형외과 의사는 아름다운 얼굴은 미간의 거리와 파이 공식 즉 황금비율(1:1.1.618)에 기초해서 수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신체적인 아름다움이 강조되고 아름다움을 권력으로 떠받드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아름다움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꽃이 선사하는 아름다움도 한철이듯이 모든 아름다움은 기본적으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흘러갈 뿐이다. 신체적 매력만 중시할 것이 아니라 마음매력을 통해 내 안의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이 외모에서부터 풍겨나갈 수 있는 전략이 있어야 할 것이다.
평범한 얼굴과 지극히 현실적인 몸뚱이를 갖고 있어도 우리는 내면과 조화된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자신의 외모에 상관없이 타고난 자신의 아름다움을 살려서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마음매력이다. 우리가 마음매력에 주목하는 이유는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그대로 나 자신을 가꾸며 성장시키는 정신적 태도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나를 소중하게 대하면서 내딛는 한걸음은 사랑스러운 아기가 내딛는 걸음마처럼 의미가 있다. 악조건 속에서도 숨겨진 정신적 가치를 찾아 삶을 의미 있게 만들 때, 그런 시련은 나를 가치 있게 만드는 자양분이며, 자신을 진정 매력적이며 아름다운 존재로 태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2021년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나이 한 살을 더 먹고, 여러 생각에 잠겨있는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쓴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자. 그래야 우리가 세운 목표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니까.
자신을 좋아하게 하는 마음매력은 외모뿐 아니라 삶의 태도를 개선시킨다
“스무 살 때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은 나의 공적이다”라고 코코 샤넬이 말했다. 링컨도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내역이 얼굴로 드러나는 데에도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링컨의 마흔은 자신의 얼굴 자체로 멋지거나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마흔 살이 한계치라는 것이 아닐까. 신체적인 아름다움의 효력은 링컨처럼, 험악한 세월을 살며, 외모를 가꾸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흔 살이 될 수도, 코코샤넬처럼 정성 들여 가꾼 사람들에게는 쉰 살 즈음에 효력을 다한다고 볼 수 있다.
신체적인 아름다움이 사그라지는 그 무렵에 진짜 아름다움의 승부가 시작될 수 있다. 당신이 만약 마흔을 넘었다면, 당신이 윤아나 아이린처럼 돋보이는 아름다움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계속 붙들어 맬 생각은 하지 말고, 이제 김희애처럼 품위 있게 늙어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자연이 여자에게 주는 최초의 선물이며, 또 자연이 여자에게서 빼앗는 최초의 선물’이라고 하지 않나? 나이가 들면서 사그라지는 아름다움에 아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서 중후해지고 더 매력적일 수 있는 방법을 현명하게 고민해야 하겠다.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소개하겠다. 미용성형 수술을 한 42∼73세에 이르는 남녀 49명의 성형 전·후 사진을 일반인 50명에게 보여준 뒤 이들의 연령, 호감·매력도 등을 측정했는데 결과는 어땠을까? 주름살 제거 등 미용성형 수술을 하면 실제 나이보다 3살 정도 젊어 보이긴 하지만 타인에게 주는 호감이나 매력도는 전혀 향상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겠지만, 조금 젊어 보여도 3살 정도이며, 일반인이 느끼기에 호감이나 매력도는 전혀 좋아진 것을 모르겠다면, 성형수술에 대한 가격대비 만족도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미용수술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하라는 것이 연구의 교훈일 것이다.
미용성형의 현명한 대안이 바로 마음 매력 강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가운데, 얼굴을 통해 ‘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의 역사를 가졌는가?’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표정,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도 나이 들면서 ‘얼굴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 그 얼굴 뒤에는 무엇이 숨어있을까?’라고 성찰했다고 하듯이 이제는 내 얼굴에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여성이 얼마나 평범하게 생겼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일에 진실과 정직이 그녀의 얼굴을 가로질러 쓰여 있다면, 그녀는 아름다운 것이다.’ 엘레아노르 루즈벨트의 말을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드는 내면적인 삶의 태도에 집중할 때, 자신의 존재를 더 멋지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해 나이 든 얼굴을 보며 더 이상 아쉬워하지 말자.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며 새롭게 결심해보자. 반복해서 말하지만, 내가 나를 좋아하고, 나를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을 때, 마음매력적 향기와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얼굴이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얼굴이 아닌 다른 매력도 있다고 격려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에 당당해질 때, 다른 곳에 내 삶의 에너지와 열정을 투입하면서 개성 있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운동이든 다이어트든 아니면 금연이든 다른 작은 소원도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실행될 때 성공하기 쉽다. 그리고 자신에게 마음에 드는 그런 자기다움의 뿌듯함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 얼굴과 내 몸뚱이와 내 단점까지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단점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왜곡되고 과장된 시선을 갖게 한다. 코끝이 오뚝하지 않고, 얼굴이 V라인이 아니어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든지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다. 도무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다고 해도 누구나 마음매력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연초에 어디에 나의 마음을 둘 것인가? 새해 아침에 이제는 자신을 품격 있게 만드는 마음매력을 생각하며 외적 미와 내적 미의 균형을 맞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