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앞으로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참여는 전제 조건이 아니다. 성과와 정당성, 그리고 국민의 동의가 있을 때만 그 자리에 남겠다는 신호다. 습관 위에 세워진 다자질서는 쉽게 부서진다. 성과와 책임 위에 세워진 질서는 오래 간다. 미국은 지금, 그 계산서를 다시 쓰고 있다.
안녕하세요 UN과 중남미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유엔이방인 김상엽입니다. 1.7.(수) 세계 외교의 판도가 뒤흔들리는 결정이 내려졌는데, 백악관이 31개의 UN 기구를 포함해 총 66개의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겠다는 대통령 각서(Presidential Memorandum)를 발표했습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미국의 고립주의'라며 우려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이것은 충동적인 퇴보가 아니라, 1945년 전후 질서 이후 가장 치밀하게 계산된 '외교적 재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 미국은 그들의 참여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유엔은 그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했는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유엔(UN) 관련 기구 31개를 포함해 총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은 1945년 전후 질서 정착 이후 미국 다자 외교사에서 가장 급격한 재편을 의미한다. 2026.1.7.(수) 백악관은 그간 진행해 온 회원국 지위, 자금 흐름, 조약 참여에 대한 검토의 논리적 귀결로서 이번 탈퇴를 명령하는 대통령 각서를 발행했다. 의례적인 수사를 걷어낸 메시지는 명확하다. 즉, 국제기구 참여를 더 이상 ‘물려받은 의무’로 여기지 않으며, 스스로 그 가치를 증명해 내야 하는 ‘계약’으로 취급하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일시적인 감정적 대응도, 세계 무대에서의 퇴장도 아니다. 국제기구 회원국 지위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 아님을 천명한 것이다. 현 정부의 논거는 헌법적 주권, 재정적 책무, 그리고 현대 다자주의 생태계의 일부가 실질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관료적 자가증식의 늪에 빠졌다는 확신에 기반한다. 백악관의 시각에서 볼 때, 일부 포럼은 중복적이거나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선출된 정부의 국내적 권한과 충돌하는 의제들에 점령당해 있다. 특히 이번 ‘탈퇴’는 유엔 헌장이나 규칙 기반 질서 자체를 부인하기보다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참여와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실무적 차원의 조치로 기술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행보가 기후, 보건, 개발 분야의 글로벌 공조를 약화시킬 것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의석과 예산, 사무국을 포기하는 것이 워싱턴의 국제 규범 형성 능력을 저해할 것이라 경고한다. 이러한 우려도 경청할 가치가 있으나, 동시에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과연 미국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팽창하는 구조를 뒷받침함으로써 가장 잘 보존되는 것인가, 아니면 안보, 안정, 집행 가능한 규칙과 같은 실질적인 성과를 확보할 수 있는 곳에 자원과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보존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축소 과정 속에서도 워싱턴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지렛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의 상임이사국 지위와 유엔총회 제5위원회(행정예산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예산 기구에 대한 지속적인 관여다. 이러한 선택은 고립이 아닌 ‘선택적 집중’을 보여주며, 실질적인 결과로 치환될 수 있는 권력을 선호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1. 탈퇴의 논거 (관성에서 포트폴리오 규율로)
2026.1월의 탈퇴는 다자적 관여를 ‘습관’에서 ‘전략’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백악관은 대상이 된 기구들이 “더 이상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며”, 지속적인 참여가 국가의 번영, 주권, 안보와 배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념적 이동은 결정적이다. 국제기구를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취급하는 것이다. 어떤 자산은 안보적 수익(ROI, Return on Investment)을 창출하지만, 어떤 자산은 서류 뭉치와 회의, 그리고 명분뿐인 연극만을 양산한다. 기구가 고결한 목표를 표방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내의 민주적 동의와 일치하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지가 시험대가 된다.
"세계는 벼랑 끝에 서 있으나 트럼프의 미국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며, 판을 다시 짜고, 적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입장. 즉,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반응해야 하는 입장을 강요할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은 혼란 속에서 분개하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 트럼프는 실시간으로 세계 질서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갈 것이다." ㅡ [서평] 트럼프는 전쟁광이 아니다 (2025.5.1.)
워싱턴의 논리에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주권과 권한의 규율이다. 워싱턴은 국내의 민주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기대를 형성하고 압박으로 작용하는 ‘연성법(Soft Law)’과 규범 형성 과정에 대해 오랫동안 경계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문제는 협력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합의가 점진적으로 기술관료적 합의로 대체되는 현상이다. 국내적 쇄신을 약속하며 선출된 정부는 특정 포럼이 해결책을 촉진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제약사항을 수출하며 이를 ‘진보’라 부르고 있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다.
둘째, 재정적 책임성이다. 이번 각서에는 외교 정책에 적용된 ‘감사 본능’이 담겨 있다. 납세자가 국제적 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실증적인 결과물과 투명한 거버넌스, 그리고 기여금과 성과 사이의 명확한 연결고리를 보여줄 의무가 있다는 논리다. 이는 인도적 지원 원칙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나 관리 체계가 기본적인 비용 대비 가치(Value-for-money)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프로그램에 무기한 지출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셋째, 국내적 정치 정당성이다. 뉴욕이나 제네바에서는 일상적으로 보이는 다자적 약속들이 국내 정치에서는 생경하거나 오만하게 비칠 수 있다. 유권자들이 국제적 관여가 ‘자율 주행’ 모드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는다면, 거대 국가는 해외에서 지속 가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동맹과 기구에 대한 대중의 동의를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참여뿐만 아니라 때로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적 탈퇴는 책임지지 않는 부분들을 쳐냄으로써 전체 구조를 정치적으로 생존 가능하게 유지하려는 ‘국내적 유지 보수’ 작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
2. 안전보장이사회 (위신이 아닌 책임이 따르는 권력)
탈퇴가 주변부의 가지치기라면, 안보리는 몸통으로 남는다. 상임이사국으로서 미국은 실질적 결정에 대한 거부권(Veto)을 보유한다. 이 절차적 사실 하나만으로 안보리는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 안보리는 강제 조치를 승인하고, 평화유지군 수임 사항을 설정하며, 국제 위기관리의 법적·정치적 매개변수를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유엔 기관이다. 힘이 충돌하는 세계에서 안보리는 단순한 토론장이 아니다. 국제 시스템의 날카로운 모서리들이 협상되는 곳이다.
안보리는 제재 체제가 설계되고, 권한이 명문화되며, 라이벌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서사를 정당성으로 변환하려고 시도하는 장소다. 세계 강대국으로 남고자 하는 국가는 안보 결과가 공식화되고 분쟁의 비용을 분담하거나 전가, 혹은 거부할 수 있는 이 회의장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는다.
거부권은 흔히 시대착오적인 유물로 공격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강대국들이 규칙 기반의 틀 안에 머물도록 유도하는 몇 안 되는 제도적 장치 중 하나다. 이는 강대국들이 지키지 않을 결과에 복종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을 방지함으로써 유엔이 무력화되는 것을 막는 메커니즘이다. 미국이 빠진 안보리는 더 정당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의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벌어져 결국 무의미해질 뿐이다.
안보리에 남는다는 것은 워싱턴이 국제 질서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호다. 대신, 억제, 승인, 제약, 그리고 동맹 보호라는 책임과 권력이 교차하는 지점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보리에 대한 지속적인 관여는 이번 각서에서 가장 놀랍지 않은 부분이다. 이는 국가 안보, 동맹 보장, 그리고 전략적으로 유해한 결과를 차단할 수 있는 능력처럼 외주화 할 수 없는 가치들에 대한 냉철한 시각을 반영한다.
3. 제5위원회와 영향력의 대가 (수사 뒤에 숨겨진 장부)
유엔총회의 제5위원회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일이 드물지만, 유엔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곳이다. 예산, 인사표, 감시 체계, 그리고 정치적 약속을 청구서로 변환하는 분담금 산정 비율이 이곳에서 결정된다. 안보리가 권위의 극장이라면, 제5위원회는 이행의 기관실이다. 거창한 수임 사항들이 장부와 만나는 지점이다.
유엔 헌장에 기반한 재정 규칙은 매우 중요하다. 제17조는 총회의 예산 승인권을, 제18조와 19조는 투표권과 그 결과에 대해 규정한다. 특히 미납금이 직전 2개년도 분담금 합계에 도달할 경우 총회 투표권을 상실하게 되는 제19조의 제재 리스크는 회의적인 회원국들조차 핵심 계좌를 관리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 워싱턴은 이를 통해 핵심 분담금과 재량적 지출을 분리하는 실용적 전략을 취한다.
이것은 역설이 아니라 거버넌스다. 대차대조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자는 이사회를 떠나지 않는다. 규칙이 적용되고, 조사와 조건부 지원, 절차적 압박을 통해 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자리에 머무는 법이다. 제5위원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여는 행정 공유라는 아이디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불분명한 모든 프로그램이 영구적으로 자금을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유엔 시스템을 향한 조용한 초대이기도 하다. 많은 회원국이 내심 원하면서도 차마 요구하지 못했던 것들, 즉 명확한 수임 사항, 엄격한 감시, 관료적 비대화 축소, 그리고 의도가 아닌 성과 측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이 단순히 싫어하는 기구를 벌주는 것을 넘어 이러한 개혁을 진전시키기 위해 예산 지렛대를 활용한다면, 그 결과는 체제의 붕괴가 아닌 제도적 쇄신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결단력 자체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는 미국의 강경함을 되살리고, 세계 질서에 새로운 기대치를 설정했다." ㅡ [글로벌 이슈] 선승이후구전(先勝而後求戰) (2025.5.7.)
4. 축소와 영향력의 균형 (규율로서의 선택적 관여)
전체적으로 볼 때, 2026.1월의 정책은 고립이라기보다는 ‘선택적 통합’에 가깝다. 규범만 무성하고 성과는 미미한 기구들로부터 물러나는 대신, 안보, 집행, 금융을 다루는 기관들에 집중함으로써 미국의 영향력을 더 잘 보존할 수 있다는 도박이다. 이러한 자세는 흔히 ‘미국 우선주의’로 희화화되지만, 다극화된 환경에서의 ‘전략적 민첩성’ 확보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하다.
물론 위험도 존재한다. 파트너 국가들은 유엔이 제공하는 소집 능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할 수 있고, 라이벌 국가들은 수사적 공간과 제도적 직위를 차지하려 들 것이다. 또한 기후나 보건처럼 광범위한 공조가 필요한 초국가적 과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자동 가입에 의존하지 않는 신뢰할 수 있는 협력 경로를 여전히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선택적 관여는 활동과 성취를 혼동하는 생태계에 기강을 잡을 수도 있다. 유엔이 유효하기 위해 모든 강대국이 모든 위원회에 앉아 있을 필요는 없다. 결정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지점, 즉 안보 수임 사항 제정, 집행 가능한 규칙, 예산 거버넌스에서 강대국들이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워싱턴의 이번 재편이 미국뿐만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책임성 강화와 우선순위 정립으로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 다자주의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기보다는 강화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결론이다. 유엔 관련 기구 31개를 포함한 66개 국제기구에서의 탈퇴가 국제 질서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재조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대통령 각서는 다자적 관여의 조건으로 ‘성과’를 내걸었다. 참여는 국가 이익에 부합해야 하며, 국내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고, 측정 가능한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성법이 기대치로 고착되고 관료주의가 목적보다 오래 살아남는 시대에, 모든 곳에 자금을 대기를 거부하는 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관리 책임(Stewardship)’의 발현일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은 유엔 시스템 내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정의하는 두 가지 도구를 보존했다. 거부권에 기반한 안보리 의석은 동맹을 보호하고, 제재를 설계하며, 수임 사항을 승인하고, 미국의 전략적 지위를 침해하는 결과를 차단하는 핵심 기제로 남는다. 한편 제5위원회는 유엔이 실체화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예산이 합의되고, 분담금이 의무로 변환되며, 감독이 실효성을 갖는다. 이곳에 계속 머무는 것은 절차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조직의 무게중심이 여전히 조사와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다.
이러한 접근법의 성패는 집행 능력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다. 만약 축소가 외교의 부재로 이어진다면 워싱턴은 장기적인 영향력을 잃고 타인이 규칙을 쓰도록 방치하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핵심 의무를 보호하고(Ring-fencing), 투명성을 요구하며, 유지된 지렛대를 사용해 제도의 성과를 개선한다면, 이번 정책은 퇴보가 아니라 경쟁 시대에 걸맞게 다자주의를 현대화하는 재설계 작업이 될 것이다.
복잡한 국제 시스템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미국이 모든 위원회에 앉아 있을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규칙을 집행하고, 예산의 기강을 잡으며, 안보 결과를 도출하는 리더십이다. 그리고 협력이 책임 있게 유지되도록 보장함으로써 그 신뢰성을 지켜내는 리더십이다.
"트럼프가 새로운 규칙을 협상하는 세계에서 다른 국가들은 생존을 위해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ㅡ [스페셜 에디션] 세상이 조용히 바뀌는 날 (2025.5.9.)
세계는 이제 새로운 메시지를 받았다.
"미국의 참여와 호의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자! 너의 가치를 증명하라."
(사진 출처: 미백악관, 미신문사 등)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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