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의 즐거움
그동안 정신없이 회사를 다니고 숨 돌릴 틈 없이 투자를 해왔었다.
어느 순간 느긋한 투자를 하고, 49세에 부자가 된다는 계획이 세워지니 딴짓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사의 매각과 철수로 인한 이직으로 회사에 대한 애정이 크진 않았지만 이제는 크지 않았던 애정도 거의 없어졌다. 회사는 내가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의 도구에 불과하고 그 종착지도 점점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회사가 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회사를 이용한다고 관점이 바뀌게 되면서 업무시간이 종료되면 노트북을 덮고 나를 위해 시간을 쏟는데 집중하였다.
처음 생각한 것은 바로 건강이다. 내가 49세에 부자가 된다 한들 건강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근 20년 동안 격렬하게 운동을 해본 기억이 없다. 장시간 책상에 않아 모니터를 바라보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나의 허리와 목은 디스크 직전의 상태까지 가 있었다. 정형외과 선생님의 말로는 운동하지 않으면 늙어서 디스크로 골골거리면 살 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마침 동네에 남성 전용 필라테스 강좌가 개설되었다. 필라테스가 힘들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나의 몸뚱이가 그렇게나 저질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그래도 꾸준히 다니다 보니 조금씩 발전은 하였다. 비록 동작을 따라 할 때 힘들기는 하지만 하고 나면 뼛조각이 하나하나 다시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수시 때때로 아팠던 허리와 목은 조금씩 아픈 주기가 줄어들었다. 다음으로 신경을 쓴 것은 건강검진 시 하나씩 늘어났던 이상 징후 개선이었다. 좋은 콜레스테롤은 낮고 나쁜 콜레스테롤은 높았다. 어느 순간부터 과체중과 함께 정상범위에서 벗어나는 항목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였다. 필라테스 운동과 함께 탄수화물을 줄였다. 나의 최애 음식이었던 떡볶이와 빵을 줄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정상범위를 벗어났던 항목들이 점차 정상 범위로 복귀하였다.
두 번째 딴짓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시험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딸 만한 금융 자격증을 알아보던 중 투자자산운용사가 눈에 들어왔다. 비 전공자도 두 달 정도 공부하면 취득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투자자산운용사 취득을 결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은 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자 하는 목적이었고 일명 펀드매니저 자격증이라고 불리는 투자자산운용사가 왠지 뽀대가 나보였다. 자격증 취득을 결정한 이후 퇴근 이후 도서관에서 공부가 2달 동안 이어졌다. 집 앞의 도서관에서 거의 매일 2-3시간을 공부했다. 가족들의 지원으로 주말에도 도서관에서 보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을 취득한다고 해서 나의 현재 투자 실력이 크게 늘거나 미래에 금융 쪽으로 뭔가 진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엇인가에 대한 도전으로 나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대학생 이후로 열람실에서 공부를 한 것도 내가 스스로 원해서 자격증을 도전한 것도 처음이었다. 나름 주식과 채권, 투자상품 등에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수많은 암기와 함께 나의 지식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공부하면서 느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공부하는 과정이 지루하거나 고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결정하고 내가 원해서 하는 공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드디어 시험 당일이 되었다. 첫 번째 문제부터 막혔다. 두 번째 문제도 헷갈렸다. 당황을 하였고, 계산기로 두드려 나온 답은 보기에 없었다. 다행히 뒷부분으로 갈수록 공부했던 문제들이 나와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합격 발표를 기다렸다.
이 자격증은 딴짓한 나에게 주는 상장과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 나의 계획상 회사생활은 4~5년, 그리고 은퇴 이후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질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딴짓을 할 차례이다. 그 수많은 도전 중 어떤 것은 결과물이 아무것도 없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누군가의 강요나 회사의 이익을 위한 시간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딴짓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도전을 하게 될지 아직 잘 모른다. 내 맘이 가는 곳으로 새로운 딴짓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