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며칠 동안 온 마을이 태풍 대비로 분주했다. 그중에서도 집줄 정비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초가지붕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붙잡고 있는 줄이 바로 새끼를 꼬아 만든 집줄이었고, 집줄은 몇 해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낡고 썩기 마련이었다.
낡은 집줄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단단히 잘 묶어 놓아야 태풍 바람에 날아가지 않았다.
재료를 모으고 엮어 짜야 하므로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서로 도왔다.
목마장도 수시로 살펴야 했다.
말이야 노상 밖에서 지내는 법이지만, 망아지는 제법 신경을 써야 했다. 자칫 고삐가 풀리면 비바람에 이끌려 어디로 사라질지 몰랐다.
그래서 말이 구역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무너진 잣성을 쌓고 고삐를 단단히 묶었다.
시간이 갈수록 바람이 심상찮았다.
이번 태풍은 제법 거셀 것 같았다. 방문이 덜컹거리며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쾅 열렸다 다시 쾅 닫히기를 반복했다.
나는 방문을 억지로 잘 닫은 후 문고리에 줄을 단단히 묶어 열리지 않도록 고정했다.
그렇게 집을 돌면서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관아 사람들이 헐레벌떡 마을 곳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밖을 내다보았더니, 그들은 여기저기서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바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올레 밖으로 나가서야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토벌을 온답니다! 최영 장군이 온답니다!”
나는 놀라서 뛰쳐나갔다. 나와 보니 마을 삼촌들은 이미 다들 나와서 관아 사람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바람은 거세었고 마을 삼촌들은 다들 격앙되어서 소식을 전하러 온 관아 사람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때 초 삼촌이 나서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는, 대표로 물었다.
“토벌이라니, 무슨 소립니까?”
“최영 장군이 우릴 토벌하려고 온답니다!”
“대체 왜요? 차분히 말해 보세요.”
“최영 장군이 전함 삼백 척을 끌고 온답니다!”
“지난번 한방언 대감께서 말 삼백 필을 가지고 올라가셨소. 혹시 그 일과 관련이 있소?”
“그분께서는 유배를 가셨습니다.”
“이런, 말 공납을 핑계 삼았군.”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인데요?”
“너희들이 공납을 거부했다더라.”
“그런 적 없는데요?”
“사실이 무어 중요하냐. 조정에서 그리 생각하면 그런 것이지.”
“우리가 공납을 왜 거부해요?”
“너희들의 뿌리가 저 북방의 초원에 있지 않느냐? 원의 후손들이 대명(大明)에 말을 내어주길 꺼린다면 말이 된다.”
“그럴 것 같았으면 한 필의 말도 내어주지 않았을 거예요. 대체 원이든 명이든 무슨 상관이라고! 왜 우릴 못살게 구는 건데요?”
“마필의 수효가 명 황제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니, 조정에서 고육지책(苦肉之策)을 꺼낸 모양이다. 명나라에 이를 핑곗거리가 필요한 것이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초 삼촌은 급히 자리를 마련하여 석 삼촌과 관 삼촌을 비롯한 마을 삼촌들을 한자리에 불러들였다.
나도 초 삼촌 옆에 앉아 수를 고민하였지만 마땅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작정하고 트집을 잡겠다는데 무슨 대화가 통할 리 없었다.
초 삼촌은 조심스러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 이후 초 삼촌은 함부로 나서려 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구출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석 삼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관 삼촌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오히려 더욱 과격해졌다.
“전함이 삼백 척이 넘는답니다. 한 척당 팔십 명을 세면 병사가 이만 오천이오. 무슨 뜻이겠소? 목마장을 빼앗겠다는 심산이오!”
“음보야, 진정하거라. 싸움이 최선은 아니다. 결국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날 것이다.”
“쿠투부카 형님, 최영은 대화를 하려는 것이 아니오. 규모를 보시오. 일국을 능히 멸할 수 있는 병력입니다. 섬멸 작전이란 말이오! 당장 기병을 준비해야 합니다!”
“알았다, 알았어. 그러니 조금만 차분히 있거라. 데리비스, 자네가 얘기해 보게. 기병이 얼마나 모이겠나?”
“이리저리 끌어모으면 오륙백은 되오. 동아막까지 합세하면 일천 기병을 준비할 수 있소. 다만 군마로 쓸만한 말이 부족합니다. 동서를 모두 더해도 이천 필에 미치지 못하오. 일천 기병을 모은다면 병사 하나당 고작 두 필에 불과하여, 오래 싸우진 못합니다.”
“좋다. 그럼 이렇게 하세. 우선 나는 성주와 상의를 해봐야겠다. 다녀올 테니 그동안 음보 너는 사람들을 모아 준비시키거라. 데리비스, 자네는 동아막으로 가서 소식을 전하고 대책을 논의하게. 그리고……, 탐노야. 너는 마을 사람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산남(山南) 홍로현(洪爐縣)으로 가거라. 그곳 카치들이 도와줄 게다.”
“저도 싸울 수 있어요.”
“아직 싸움이 결정되지도 않았다. 고집부리지 마라. 그리고 만약에 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저승에서 만호 형님을 볼 낯이 없어. 그러니 삼촌 말을 들어 주렴, 알겠니?”
초 삼촌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장 떠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곧 태풍이 몰아쳤기 때문이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어머니 옆에 누워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밤새 덜컹거리며 심하게 흔들리는 문짝을 보고 있자니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어째서 매번 태풍을 맞아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피할 길도 없이 몰아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매를 맞으며 숨을 죽이거나, 칼을 휘두르며 저항하는 수밖에 없었다.
삶에 수많은 갈래가 있다지만 선택은 늘 두 가지뿐이었다.
아버지가 떠나기 전에 남기신 말이 떠올랐다. 사내란 무릇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셨다.
아픈 어머니를 책임지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